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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민감(敏感) 중국어] 공을기의 두루마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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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31면

민감중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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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기(孔乙己)의 두루마기(長衫·장삼)’는 올해 중국을 달구는 유행어다.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 선생이 1919년에 지은 2600여 자 짧은 소설의 주인공에 젊은 청년들이 빠져들고 있다.

루쉰은 과거(科擧)에 실패하고 술집을 전전하는 공을기를 정성 들여 묘사했다. “입은 옷이 두루마기이긴 하지만 더럽고 너덜너덜했다. 십 수년 꿰매지도 않았고 빨래조차 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모두 지식인이 문어체에 쓰는 ‘지호자야(之乎者也)’로 가득했다. 알듯 모를듯했다. 성이 공(孔)이어서 남들은 글씨 연습 종이에 적힌 ‘상대인공을기(上大人孔乙己)’라는 알쏭달쏭 문구에서 별명을 따 공을기라 불렀다.” 루쉰의 펜 끝에서 태어난 공을기는 마음이 따뜻했다. 아이들에게 회향(茴香) 콩을 나눠주고 한자 회(回)를 쓰는 네 가지 필법을 가르쳐주는 순진하고 선량한 구석이 있다.

2023년 중국에서 공을기는 대학을 졸업한 청년 실업자를 상징한다. 최근 상하이해양대학의 졸업생 취업 현황을 찍은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회자했다. 상하이해양대는 중국 교육부가 지정한 세계 일류대학·일류학과 건설 프로그램에 선정된 전국 상위 137개 대학에 속하는 명문이다. 4월 11일 기준 본과 졸업생 취업률은 13.64%, 대학원생 취업률 17.27%이라는 낮은 수치에 온 중국이 놀랐다.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월부터 4월까지 18.1%→19.6%→20.4%로 증가 추세다. 놀란 당국은 공산주의청년단을 앞세워 “공을기의 두루마기에 갇히지 말라”며 취업 눈높이를 낮추라 한다. 1158만 대졸자에게 공을기의 두루마기조차 사치라고 말한다. 당국이 최근 내놓은 해법은 노점상이다. 길거리 난전을 뜻하는 이른바 바이탄(擺攤·파탄) 경제다. 최근 베이징에는 사람이 모이는 쇼핑몰 빈터마다 노점 장터가 부쩍 늘었다.

두루마기를 벗은 젊은 공을기들은 울분을 쏟아낸다. 지난 4월 초 한 SNS에 아이디 녠녠(輦輦)이 공을기와 함께 안데르센의 동화를 소환했다. “모두가 공을기의 두루마기를 말하지만 나는 ‘임금님의 새 옷’이 떠오른다. 어리석은 거짓말에 임금은 벌거벗은 채 새 옷을 입은 척했고, 관료와 백성은 찬양했다. 한 어린아이가 허상을 폭로하자 그제야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임금의 난처함과 백성의 각성만 남았다. 공을기에게 두루마기를 벗으라 하기 전에 임금이 새 옷부터 벗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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