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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 공자학원 94%가 문을 닫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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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학원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공자라는 미명하에’의 한 장면

공자학원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공자라는 미명하에’의 한 장면

2004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공자학원’이라는 간판을 단 기관이 개소식을 가졌다. 설립처는 중국 교육부 산하 ‘중국국가한어국제보급영도소조판공실,’ 이른바 ‘국가한판(國家漢辦).’ 프랑스가 해외 각국에 프랑스어와 자국 문화 보급을 위해 설립한 ‘알리앙스 프랑세즈,’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 같은 기관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공자학원은 중국 소프트 파워 보급의 상징처럼 퍼져나갔다. 2005년엔 유럽 최초로 스웨덴 스톡홀름대에 공자학원이 개설됐고 이후 미국에도 100군데가 넘게 설립됐다. 2020년 기준 세계 162개 국가 및 지역에 541개의 공자학원과 1170개의 공자학당이 운영됐다.

공자학원이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리면서 잡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만 문제,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 파룬궁(法輪功), 중국의 정치적 자유 등에 대한 토론이 허용되지 않는 것에 대한 반발이 많았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교육기관에서 중국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에 대해 서구인들의 불만이 커져 갔다.

최근 미국 내 공자학원의 94%가 문을 닫았다는 발표가 나왔다. 미국 의회 조사국(CRS)이 5월 펴낸 현안 보고서 ‘미국의 공자학원(Confucius Institutes in the United States)’에 따르면 2005년 메릴랜드대에 처음 설치된 미국 내 공자학원은 점차 늘어나 2017년 118곳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2022년 12월 기준 7곳으로 대폭 감소했다. 5년 사이 약 94%가 문을 닫은 것이다.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 대학들은 그간 계약을 해지하거나 연장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교내에 개설됐던 공자학원들을 퇴출시켰다.

보고서는 “일부 연구에 따르면 공자학원 및 중국 공산당 관계자들이 미국 대학의 교직원 등에게 중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여기는 주제에 대해 공개 발언이나 행사를 하지 않도록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가했다는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달라이 라마 관련 행사, 중국 공산당 관련 언급 등을 들었다.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원(NASEM)은 미국 대학들이 ▶학문의 자유에 대한 우려 ▶미국 안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잠재적인 영향력과 위험성 ▶중국어 프로그램 유지를 제한하는 법적 규제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이유로 공자학원 계약을 해지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공자학원이 스파이 활동이나 지적재산권 탈취 등과 관련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공자학원 규제는 대(對)중 무역 전쟁을 벌인 트럼프 행정부에서 본격화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공자학원과 공자학당은 미국 대학, 초·중·고등학교에서 중국 공산당을 선전하고 악의적인 영향력 행사하는 단체”라면서 공자학원을 ‘외국 대행기관’으로 지정하고 활동 내역을 국무부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공자학원에 대한 서구의 의구심은 2013년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출범한 이후 증폭됐다. 

공자학원에서 공자는 안 가르치고 마오쩌둥(毛澤東)만 가르친다는 불만이었다. 공자학원 교재로 쓰이는 『중국 이해하기(解讀中國)』는 공자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중국의 가장 유명한 사상가 공자는 농민을 매우 경시했다. 그의 학생이 공자에게 농사짓는 법과 채소 재배술을 배우려 하자 공자가 코웃음을 치고 비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늙은 농민만 못하니 그들에게 배우거라.’ 공자는 스스로 ‘정당하지 않은 수법을 써서 돈 벌기가 나에게 하늘의 뜬구름처럼 멀고도 불가사의하다’며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공자는 돈에 대한 갈망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공자는 ‘부(富)가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고 수레를 모는 천한 일이라도 하겠다’고 했다.”

공자의 석상. 사진 셔터스톡

공자의 석상. 사진 셔터스톡

한마디로 공자가 농민을 천시하고 부를 탐하는 ‘속물’이었다는 의미다. 교재는 “고대 중국 노동자들은 공자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는 사지가 부지런하지 않고 오곡을 분간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논어(論語)』의 〈자로(子路)〉편과 〈술이(述而)〉편을 왜곡 인용한 것이다. 원문은 ‘사람은 각자 할 일이 따로 있다’ ‘부는 구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벼슬을 제외한) 나머지 일은 모두 질이 낮은 것이며 오로지 독서만이 고상하다(萬般皆下品, 唯有讀書高)”는 말을 공자가 했다며 그가 벼슬과 출세를 위해 공부를 장려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또한 북송(北宋) 시대 왕수(汪洙)의 ‘신동시(神童詩)’에 나오는 구절로, 공자는 이런 말을 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공자는 평소 자기 수양을 목적으로 독서와 공부를 강조했다.

공자 비판과 함께 중국 공산당 찬양도 넘쳐난다. 『중국역사상식(中國歷史常識)』 교재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공산당은 엄청난 재난을 겪고 있는 중국인에게 광명과 희망을 가져왔다.”(1927년 중국 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개최를 언급하며)

“그는 뛰어난 외교술과 매력적인 인품을 갖춘 사람이다. 그는 참석한 외교 장마다 성공과 승리를 거둬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상징이 됐다.”(저우언라이 초대 총리 겸 외교부장에 대해)

어린이용 교재 『나와 함께 중국어를 배워요(根我學漢語)』에는 “중국 공산당의 은혜가 동해바다보다 깊다”는 구절이 담긴 노래 가사가 실려 있다. 혁명가극 〈홍호적위대(洪湖赤衛隊)〉의 수록곡이다. 이 혁명가극은 노골적인 중국 공산당 찬양 때문에 호주에서 상연이 불허됐다. “나는 천안문을 사랑해. 천안문에는 태양이 뜨네. 위대한 지도자 마오 주석. 우리를 이끄시네”라는 가사, “‘쩌둥(澤東)’은 동양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뜻”이라는 내용도 공자학원 교재 중에 실려 있다.

“마르크스를 만나러 가는 것은 하느님(上帝)을 만나러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당대중국(當代中國)』), “오늘날 사람의 수명이 점점 길어져 정년퇴직에서 마르크스를 만나러 가는 때까지 이삼십 년의 시간이 있다”(『나와 함께 중국어를 배워요』)처럼 마르크스를 신격화하는 내용들도 수록돼 있다. 『민주적 역량(民主的力量)』이란 교재는 ▶중국 공산당은 민주주의를 숭상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하는 정당이다 ▶중국 공산당은 민주주의를 무기로 국민당을 이겼다 ▶민주협상은 신중국의 기초를 다졌다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구현했다 ▶인민정치협상제도는 중국식 민주주의의 매력을 과시했다 ▶민주주의는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다 등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와 과거 티베트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현재가 티베트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임을 티베트인 스스로 인정한다는 내용도 있다.

세계 최초로 공자학원이 개설된 한국에는 현재 23곳의 공자학원 및 학당이 있다.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서방 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공자학원에 대한 경계심은 덜한 편이다. 중국 유학생 유입을 통해 재정을 충당하고 있는 상당수 한국 대학들은 중국과의 교류 확대가 절실한 상황인 데다 시중 학원의 절반 수준으로 저렴한 중국어 교육, 장학금과 중국 초청 등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인센티브를 마다하기 어렵다.

이충형 차이나랩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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