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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조국이 저를 불러요" 총탄에 쓰러졌다…尹 참배한 5·18열사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18 당시 숨진 전영진 열사의 영정사진(왼쪽)과 그의 묘지에 적힌 '어머니, 조국이 나를 부릅니다' 라는 비문. 사진 국립5·18민주묘지, 황희규 기자

5·18 당시 숨진 전영진 열사의 영정사진(왼쪽)과 그의 묘지에 적힌 '어머니, 조국이 나를 부릅니다' 라는 비문. 사진 국립5·18민주묘지, 황희규 기자

“엄마, 조국이 나를 불러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숨진 고(故) 전영진 열사가 어머니에게 한 말이다. 그는 80년 5월 당시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에게 이 말을 남기고 금남로로 향했다. 당시 전 열사는 광주대동고 3학년 재학 중 5·18에 참여했다 계엄군이 쏜 총탄에 숨졌다.

영화 ‘화려한 휴가’ 속 주인공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제43주년 5·18 기념식 후 참배한 열사 사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전영진·김재영·정윤식 열사 묘소를 참배했다.

이중 전영진 열사는 고교 재학 중 5·18과 마주했다. 5월 20일 참고서를 사러 책방에 가다가 계엄군에게 곤봉 구타를 당한 게 발단이다. 이튿날 만류하는 어머니를 뒤로한 채 금남로로 향한 그는 옛 전남도청 옥상에서 날아온 총탄에 머리를 맞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참고서 사러 가다 구타…이튿날 총 맞고 숨져 

전 열사가 숨진 5월 21일 오후 2시에는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한 때다. 이 내용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주인공 강진우(이준기 역) 사연으로 재조명되기도 했다. 지금도 전 열사 묘비에는 “어머니, 조국이 나를 부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5·18민주묘역에서 전 열사 사연을 들은 뒤 “젊은 학생 시절에 이렇게 돼 안타깝다”며 유족을 위로했다. 앞서 그는 5·18 기념식에서도 “오월 정신으로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됐다”며 “민주 영령 안식을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5·18 당시 계엄군에게 구타 당하는 시민(왼쪽)과 5·18 당시 옛 전남도청 앞 시위대 모습. 중앙포토

5·18 당시 계엄군에게 구타 당하는 시민(왼쪽)과 5·18 당시 옛 전남도청 앞 시위대 모습. 중앙포토

구두 닦다 집단 발포 때 숨진 17세 소년

김재영 열사는 금남로에서 구두를 닦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다 5·18 때 숨졌다. 당시 나이 17세였다. 42년간을 무명열사 묘역에 묻혀 있다가 지난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신원이 확인된 인물이다.
김 열사는 80년 5월 당시 생계 터전이던 금남로에서 5·18과 맞닥뜨렸다. 그는 연일 모여드는 시민들과 함께 시위에 휘말렸다가 계엄군 집단 발포 때 총에 맞았다. 지난해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무명열사 유해 5기를 다시 유전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친동생을 찾아내면서 신원이 확인됐다.

5·18 당시 숨진 전영진 열사 묘비. 황희규 기자

5·18 당시 숨진 전영진 열사 묘비. 황희규 기자

최후항전 때 체포…고문 후유증 사망

정윤식 열사는 광주공원 주변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중 5·18을 겪게 됐다. 20세 나이로 광주공원에서 총기 교육을 받고 시민군으로 활동했다. 그는 계엄군에 맞서 최후항전이 벌어진 5월 27일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게 체포됐다.

체포 당시 등에 ‘폭도’라고 적힌 채 상무대로 끌려간 그는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후 옥고를 치른 뒤 그해 9월 5일 풀려났지만, 고문 후유증을 겪었다. 그는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던 끝에 1982년 2월 28일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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