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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좀 휘두르라" 이재명 위기에…야당서 꺼낸 7년전 文 위기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이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김남국 코인 논란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성토도 커지고 있다. 사태가 악화되는 과정에서 이 대표의 리더십 부족이 드러났다는 이유에서다. 소속 의원 비위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당사자 부인→지도부 늑장 대처→여론 악화→자진 탈당의 수순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국회 최고위에서 박광온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국회 최고위에서 박광온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이 대표는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지난달 17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검찰이 윤관석·이성만 의원을 압수수색을 한 지 닷새만이었다. 이 대표는 박광온 원내대표 취임 후 첫 의원총회(3일)가 열리기 전날인 지난 2일 저녁 윤관석 의원을 직접 만나 간곡히 탈당을 설득했고, 두 의원은 의원총회 당일 오전 탈당계를 제출했다.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논란과 관련해선 논란이 불거진 지 9일 만에 사과했다. 김 의원은 20대 대선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이 대표의 수행실장을 맡는 등 최측근이다. 이 대표는 14일 의총 시작에 앞서 “국민께 실망을 드린 점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사과했다. 김 의원도 의총 당일 오전에 탈당 의사를 밝혔다.

연이은 뒷북 대처에 14일 의총에선 이 대표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재신임을 받으셔야 한다”(양기대 의원)는 주장도 나왔지만, 대다수는 “다 죽게 생겼으니 이 대표가 쇄신의 칼을 들고 휘두르라”(박용진 의원)며 이 대표에게 강력한 리더십을 주문했다.

당내에선 이 대표가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데엔 ‘사법리스크 딜레마’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검찰의 ‘쌍·대·성(쌍방울·대장동·성남FC)’ 수사를 정치 탄압으로 규정해 반발해온 이 대표가 다른 의원의 비위에 엄정하게 대응하면 ‘이중 잣대’로 비판받기 때문이다.

가상자산(암호화폐) 이상 거래 의혹 논란에 자진탈당을 선언한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로 출근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저는 오늘 사랑하는 민주당을 잠시 떠난다″고 밝혔다. 뉴스1

가상자산(암호화폐) 이상 거래 의혹 논란에 자진탈당을 선언한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로 출근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저는 오늘 사랑하는 민주당을 잠시 떠난다″고 밝혔다. 뉴스1

실제 이 대표는 자신을 겨냥한 검찰 수사에는 기민하게 대응했다. 검찰에 두 차례 출석해 조사를 받은 직후인 지난 2월 4일엔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었다. 민주당은 지난 3월 22일 검찰이 이 대표를 기소했을 때도 곧바로 당무위원회를 소집해 이 대표 기소가 ‘정치 탄압’이라는 예외 사유에 인정된다고 의결했다. 반면에 돈 봉투, 코인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의 반응은 느린 편이다. 이런 탓에 14일 의총에선 “이 대표의 검찰 소환이나 기소 땐 바로 규탄대회를 하고 당무위를 열더니, 왜 다른 의원 일에 대해선 자진탈당할 때까지 기다리느냐”는 불만도 나왔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총선까지 검찰 수사가 추가로 펼쳐질 게 자명하다”며 “윤석열 정부의 검찰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이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 역시 “결국 당원·지지층이 이 대표에 당권을 쥐어준 건 ‘이재명은 합니다’로 상징되는 리더십 때문”이라며 “취임 9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는 존재 증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015년 8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신공안탄압저지대책위원회'에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함께 참석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015년 8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신공안탄압저지대책위원회'에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함께 참석하고 있다. 중앙포토

일각에선 이 대표를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문재인 전 대통령과도 비교한다. ▶총선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 ▶대선 낙선자 신분 ▶야당 대표라는 지위가 같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문 전 대통령 역시 그해 4월 재·보궐선거에서 0대 4 참패를 당해 위기를 맞았다. 문 대표는 비문계의 퇴진 요구가 거세지자,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을 영입해 혁신위원회를 띄웠다.

같은해 12월 안철수 당시 공동대표와 분당 위기로 치닫자 측근을 정리했다. 친노(親盧) 인사로 수감 중이던 한명숙 전 총리에게 당적 정리를 요청한 데 이어, 당시 ‘이호철·양정철·윤건영’ 측근 3인방의 총선 불출마 방침을 확인했다. 2016년 1월엔 문 대표가 공식 사퇴하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결국 민주당은 2016년 총선에서 123석을 챙기며 승리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본인이 수사·재판을 받는 상황이 2016년과는 다르지만, 당시 문 전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14일 민주당 의총 결의문에 담긴 당 혁신기구와 윤리기구 강화 등이 과제로 거론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아무리 윤리기구를 강화하더라도 잣대가 공정하지 못하면 힘을 잃는다”며 “이재명 대표 본인이나 가까운 사람이 희생하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카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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