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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의료인 면허 취소법’ 재고해야 하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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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진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

한진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

일명 ‘의료인면허취소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인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지위의 특성상 높은 수준의 직업적 윤리와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직역’이라는 점, ‘변호사 등 다른 전문 직종은 현재 범죄에 구분 없이 금고의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를 자격 박탈 사유로 정하고 있다는 점’을 입법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위 입법 근거부터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적절하지 않다.

우선 의료인면허취소법은 자신의 직무와 전혀 관련이 없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처벌을 받으면 그 면허를 무조건 박탈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에서 부여하는 면허의 성격 내지 존재 이유를 간과한 것이다.

의료인 면허는 장시간 의료 지식을 공부하고, 의료 기술을 연마하며, 관련 시험과 실습과정까지 통과하여, 인체에 대해 침습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자에게 부여된다. 다시 말하면, 면허취득 과정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관련 지식과 기술을 요구할 뿐이지, 높은 준법정신이나 윤리 의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의료인면허취소법이 최종적으로 입법화되면 그때부터 의료인은 원하지 않아도 의료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높은 준법 의식과 윤리성까지 갖춘 특별한 집단이 된다. 법률가의 관점에서 이는 일반 국민과 분리된 일종의 특별한 ‘계급’이라고 볼 수 있고, 헌법에서 금지하는 사회적 특수계급의 출현이라는 해석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위 문제는 변호사 등 다른 자격사법 역시 동일하게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인에게 의료 관련 법령 위반의 결격 사유만을 인정하는 현행 의료법이 면허 내지 자격 제도의 기본 취지에 부합하고, 오히려 다른 자격사법이 현행 의료법 규정을 표준 삼아 개정될 필요가 있다. 합당한 이유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데, 특별한 계급을 생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의료인에 대해 높은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에 따르더라도, 의료인면허취소법 내용은 너무 과도하다. 가령 의료인면허취소법의 배경이 된 ‘의료인 성범죄 사건’의 경우를 살펴보자. 성범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게 될 경우, 굳이 의료인면허취소법이 없어도 해당 의료인들은 일명 ‘아청법’에 의해 최대 10년의 취업제한명령을 법원으로부터 선고받게 된다. 이 경우 취업제한 기간 의료인들은 취업, 개업 등 경제활동이 사실상 모두 봉쇄되게 되므로, 면허취소보다 더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처럼 과도하고, 이중적이며, 불필요한 제재를 두려는 이유가 정치적인 목적 외에 무엇이 있는지 의문이다.

한진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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