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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소주 한 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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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소주 한 잔’은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폭락 사태에 연루된 임창정의 대표곡이다. 임창정 10집 ‘바이’의 타이틀 곡으로 지난 20년간 사랑받아왔다.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라는 애절한 가사를 그가 썼다. 임창정은 걸그룹 제작 등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서라면서 2018년 이 곡의 권리 일부를 저작권 거래 플랫폼 뮤직카우에 넘겼다. 뮤직카우에 따르면 이 노래의 저작권 한 조각(총 5100조각 발행)을 갖고 있으면, 연간 2599원(지난 1년 기준)을 받을 수 있다. 단순 계산하면, 이 한 곡이 지난 12개월 뮤직카우를 통해 거둬들인 저작권료는 약 1325만원에 이른다.

SG사태에서 임창정의 진짜 역할이 의심받는 만큼  ‘소주 한 잔’이 계속 사랑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저작권료가 연금처럼 꾸준히 입금될 것이라고 믿고 투자했던 이들에겐 비보다. 불미스러운 사건 공개 전 좋은 가격(정확한 액수는 비공개)에 저작권을 처분한 임창정은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다양하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창작물 무단 이용을 막는 것은 창작 동기를 부여하고, 예술을 발달시키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임창정처럼 창작물을 통째로 넘겨 목돈을 확보하는 사례가 흔하다. 음악 산업이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저작권 활용 방법이 많아진 덕이다. 올 초에도 미국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음악 저작권 290개 이상을 음악 판권 업체에 무려 2억 달러(약 2467억원)에 넘겨 화제가 됐다.

저작권의 가치 상승은 창작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옥죄기도 한다. 최근 영국 가수 에드 시런은 히트곡 ‘싱킹 아웃 라우드’(2014)가 미국 소울 가수 마빈 게이의  ‘렛츠 겟 잇 온’(1973)을 베끼지 않았다는 판결을 6년 만에 받아냈다. 이 소송은 게이와 곡을 공동 제작한 에드 타운젠드의 저작권 상속자인 딸 등이 시런에게 수익 분배를 요구하면 시작됐다.

천문학적 저작권료가 걸린 팝 업계에서 이런 다툼은 자주 발생한다. 진짜 음악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표절 시비도 태반이라 창작자들 사이 우려도 나오지만, 큰돈이 걸려 있으니 소송이 줄어들 가능성은 적다. 음악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한국도, 곧 경험할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