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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전기세와 전기요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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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부 기자

조현숙 경제부 기자

한국전력공사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단번에 발끈하게 만들 수 있는 단어 하나가 있다. 바로 전기세다. 이 단어를 입 밖에 내는 순간 “전기세가 아니라 전기요금이다. 세금이 아니다”란 답이 돌아올 거다. 경험에서 나온 얘기다.

그렇다고 전기세란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당당히 등재된 정식 용어다. ‘전기료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뜻풀이와 함께다. 전기를 사용한 만큼 한전에 내는 요금일 뿐인데 나라에서 거두는 세금 비슷한 반열에 올랐다. 이유가 있다.

‘전력통계월보’를 보면 올 3월 기준 주택용 전기를 쓰는 곳은 1583만 호에 이른다. 상점이나 사무실, 공장에서 쓰는 일반용(350만 호)·산업용(44만 호)에 농사용·교육용·심야 전기까지 더하면 부과 대상은 전 국민이나 다름없다. 세목 중 납부 인원이 가장 많은 종합소득세(2021년 911만 명)도 못 따라갈 수준이다.

요금 산정 방식도 세금 못지않다. 생활과 산업 전반에 필수인 전기는 공기업인 한전이 독점해 공급한다. 이런 특징 탓에 요금을 바꾸려면 법에서 정한 원칙을 따라야 한다. 기획재정부와 논의해야 하고 산업부 인가도 필요하다. 법에도 없는 중요한 절차는 또 있다. 여당과의 협의다.

15일 한전과 산업부는 전기요금을 ㎾h당 8원 올린다고 의결했다. 그런데 하루 전인 14일 여당인 국민의힘 관계자의 입을 통해 이 사실이 먼저 공개됐다. 전기요금 ‘칼자루’가 누구 손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 정부나 현 정부 때나 정치권 행태는 크게 다를 게 없다. 원가(연료비)에 못 미치는 요금에 ‘묻지 마’식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으로 한전 적자는 수십조 단위로 불어났지만, 내년 총선 표를 의식해 찔끔 인상을 허락했을 뿐이다. 한전 적자를 불리는 데 큰 몫을 한 정부도 못 이긴 척 따라가는 중이다. 민간회사라면 이미 망하고도 남을 규모의 빚을 진 한전은 공기업이란 방패 뒤에 숨어 생색내기 자구책만 내고 있다.

한전 재무구조가 파탄 나면 결국 ‘진짜’ 세금을 내서 메워야 한다. 수십조 적자를 낸 한전이 멀쩡히 채권을 발행하고 있는 것도 국가가 보증한 덕이다. 전기세나 전기요금이나 다를 게 없는 국민만 여러모로 덤터기를 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