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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진청, ‘나무에이즈’ 과수화상병 방제제 개발

중앙일보

입력

2015년 안성의 과수원에서 처음 발견된 과수화상병은 이후 강원, 충북, 충남 등으로 확산되면서 전국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 2020년 충주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19개 시군의 744개 농가 394.4ha의 면적에 대발생한 이후 2022년에는 245개 농가 108.2ha로 확산세가 줄었지만, 기상 상황 등에 따라 언제든지 재발생할 수 있어 정부와 농업인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1780년 미국의 뉴욕주에서 처음 발견된 화상병은 1950년대 영국으로 전파되면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간 화상병은 현재 55개국에서 보고가 되었으며 사과·배나무의 에이즈로 불릴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 화상병은 세균에 의한 병으로 적절한 치료제가 많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지만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확산 억제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과수화상병 확산 억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방제 적기를 예측해서 적절한 시기에 방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2021년 농촌진흥청은 선문대학교, 에피넷과 함께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메리블라이트(Maryblyt)’ 예측모형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개선한 ‘과수화상병 방제 적기 예측 시스템’을 개발했다.

‘과수화상병 방제 적기 예측 시스템’은 사과·배의 발아, 개화, 낙화 등 생육단계와 온도, 강우 등 기상정보를 이용해 개화기 중 꽃에 병원균이 감염되는 시기를 예측해서 방제 적기를 제공하며, 꽃과 가지에서 과수화상병 증상이 나타나는 날을 예측할 수 있다.

기상정보를 활용한 이 시스템에 따르면 예년에 화상병이 많이 발생했던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지점의 사과 과수원에서는 4월 14일에 궤양 활성, 19일에 꽃 감염이 일어나 5월 1일에 꽃마름 병징이 나오고, 5월 9일에 신초에 병징이 나타나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에 따라 꽃 감염 위험이 4단계(매우 위험)였던 4월 19일 전후로 항생제를 살포할 수 있도록 문자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와는 달리 강원도 양구의 경우에는 5월 4일에 궤양 활성이 예측되고 꽃 감염 위험이 3단계(위험) 경보에 따라 5월 4일 전후에 적용약제를 살포할 수 있도록 문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과수화상병은 병원균의 월동장소인 궤양에서 병원균이 꽃가루를 옮기는 꿀벌 등의 곤충에 의해 사과, 배 개화기에 꽃으로 옮겨져 발병이 시작되므로 이 시기에 방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존의 과수화상병 개화기 방제는 꽃이 활짝 핀 5일 후, 15일 후 2회 이뤄지고 있지만, 이는 관행에 의존한 것으로 방제 효과는 76.5%에 불과하다.

‘과수화상병 예측 시스템’에 의해 병 발생이 예측된 시기에 맞춰 2회 방제약제를 살포한 결과 방제 효과는 16% 높아진 92.7%였다. 또한, 농가에서 처음 꽃이 마른 증상을 눈으로 발견한 날짜와 ‘과수화상병 방제 적기 예측 시스템’이 예측한 증상 꽃마름 발현 날짜를 비교한 결과, 농가가 발견하기 최소 3일 전에 꽃마름 증상을 찾아낼 수 있었으며, 3일 먼저 증상을 확인함으로써 조기 방제가 가능해졌다.

2022년에는 36개 시군 382개 지점에서 이 시스템을 운영하였으며, 방제 적기 정보를 사과 4만6882개 농가, 배 1만5267개 농가를 대상으로 농가별로 2회씩 제공하였다. 또, 기상청의 예보자료를 활용한 예방적 방제 적기의 정확도를 분석한 결과 오늘 예보 값은 90.0%, 내일 예보 값은 85.2%의 정확도로 방제 적기를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하였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기상청 예보 값을 활용한 개화기 방제체계를 개선할 수 있었다. 기존에는 항생제를 약효와 관계없이 2회 이상 처리했지만 이젠 약효에 따라 발생위험 경보 1일 전에서 당일까지는 옥시테트라싸이클린이나 옥솔린산이 포함된 적용 약제를, 1일 후에는 스트렙토마이신이 포함된 적용 약제를 살포함으로 방제 효과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병의 발생 예측과 함께 발생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사전 예방조치도 중요하다. 농촌진흥청은 2021년 겨울철부터 전국 사과·배 농가 대상으로 겨울철 농작업 기간 궤양, 의심 증상 등 전염원 제거를 통한 과수화상병 사전 예방 및 지역간 확산 차단에 주력하고 있다.

2022년 12월 22일부터 2023년 2월에 걸쳐 전국 사과와 배 과수원을 대상으로 나무줄기나 굵은 가지에 생긴 궤양을 집중적으로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또, 3~4월에는 각 지역에서 과수화상병 발생이 우려되는 과수원을 대상으로 정밀예찰을 실시했다. 예찰 과정에서 발견된 과수화상병 감염이 의심되는 나무는 시료를 채취해 실시간 유전자진단 분석(RT-PCR)으로 정밀 진단하고, 양성으로 확인됐을 경우 제거하는 전염원 사전 제거 조치를 했다.

2021년 겨울철에 위와 같이 사전 예방조치를 실시한 결과 2022년에는 2021년과 비교해 병 발생 면적은 37.4%, 농가 수는 39.6% 수준으로 줄어들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5월로 접어들면서 과수화상병의 발생이 시작될 시기이다. 기상 상황 등에 따라 화상병이 어떤 양상으로 발생할지는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사전 예방조치가 화상병 확산 저지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방제 기술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화상병 방제용으로 등록된 약제는 외국에서 수입한 제품으로 새로운 국산 약제 개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또 많이 사용하고 있는 항생제는 같은 약제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약제 내성 발현으로 효과가 떨어지므로 대체 약제의 개발이 절실하다.

지난 2020년부터 농촌진흥청이 서울대학교와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 과수화상병에 효과적인 박테리오파지 6종을 선발하였다.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로 외국에서는 의료 분야, 식중독균 제어 등의 식품 안전, 농축산업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친환경적인 장점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있지 않다.

화상병 방제의 시급성을 감안해 2022년에 미국에서 시판되는 제품을 국내에 등록한 바 있다. 이번에 국내에서 선발한 파지는 단일 종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여러 종을 혼합하는 칵테일 방식의 처리를 했을 때 등록된 외국 제품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효과를 확인하면서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특허 출원된 박테리오파지는 효과의 안정성 검정 등을 거쳐 2025년 시제품이 개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규로 선발된 합성 물질 2종은 개화기 방제제로서 가능성을 가지며 기존의 항생제인 스트렙토마이신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현재 등록된 미생물제와 비슷한 효과를 가지는 신규 미생물 2종도 현장 실증 시험을 거쳐 2024년 제형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이승돈 원장은 “과수화상병은 작년에 예년 대비 발생이 다소 줄기는 했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라면서 “과수화상병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관계 기관이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전 예방조치와 예찰, 방제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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