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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러나 멀리 바라보는 양현종, 그리고 '직체'

중앙일보

입력

KIA 타이거즈 투수 양현종. 연합뉴스

KIA 타이거즈 투수 양현종. 연합뉴스

천천히 나아간다. 대신 멀리 바라본다. 통산 다승 2위에 오른 KIA 타이거즈 양현종(35) 이야기다.

양현종은 9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8이닝 6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KIA가 3-0으로 이기면서, 양현종은 16시즌 만에 통산 161승째를 쌓았다. 이로써 정민철 해설위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KBO리그 역대 다승 공동 2위가 됐다.

경기 뒤 만난 양현종은 "정민철 위원님을 미국(전지훈련)에서 만나 4월에 기록을 깨겠다고 했는데, 조금 늦어졌다"고 웃으며 "대단하고, 존경하는 선배님과 함께 해 영광"이라고 했다.

대기록을 달성한 양현종의 눈은 벌써 다음을 바라본다. 양현종은 선발승 5개를 추가하면 송진우(163선발승)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더 먼 곳엔 통산 최다승이 있다. 역시 송진우가 갖고 있는 210승이다. 양현종은 "(최다승이라는)그런 목표는 너무 멀리 있어서 게으르지 않게 운동하면서 준비하려고 한다. 너무 먼 앞날이고, 몸은 예전 같지 않아도 항상 자신 있게 잘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KIA 타이거즈 투수 양현종. 연합뉴스

KIA 타이거즈 투수 양현종. 연합뉴스

앞으로 4~5년 꾸준히 두자릿수 승리를 챙겨야만 가능한 넘어설 수 있다. 하지만 올 시즌 양현종의 투구를 보면 불가능하지 않다. 다섯 번의 등판 중 3경기에서 7이닝 이상을 투구했다. 3점 이상 내준 경기는 없다. 꾸준히, 긴 이닝을 소화한다. 시즌 평균자책점은 1점대(1.97)로 전체 5위, 국내 선수 중에선 키움 히어로즈 안우진(1.23)에 이은 2위다.

양현종은 시속 150㎞를 가볍게 찍는 파이어볼러였다. 20대 초반엔 구속을 끌어올리느라 제구가 흔들리기도 했다. 만 35세 양현종은 예전과 같은 스피드로 던지지 않는다. 9일 SSG전에서도 최고 시속 146㎞였다. 꾸준히 빠른 공을 던지기도 어렵다. 양현종의 올해 직구 평균 구속(스탯티즈 기준)은 141.8㎞로 데뷔 이후 가장 낮다. 미국 진출 이전인 2020년(144.2㎞), 그리고 지난해(142.4㎞)와 비교하면 조금씩 느려지고 있다.

하지만 평균 구속 감소는 의도된 결과다. '느린 직구'를 섞었기 때문이다. 9일 경기에서 양현종은 박성한을 상대로 시속 129㎞ 공을 던졌다. 하지만 체인지업이나 슬라이더가 아닌, 똑바로 날아간 공이었다. 이후엔 140㎞대 공을 뿌렸다. 공을 쥐는 법을 달리 하거나 스윙을 조절해 느리게 던지는 공이다.

야구계에선 '직체(직구 체인지업)'이란 표현을 쓴다. 똑같은 구종이지만 상대 타자 타이밍을 빼앗는 용도로 느리게 던지는 변칙 투구다. 장타를 맞을 수 있는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자신과 배짱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양현종이 '직체'를 던지는 이유는 체력을 아끼기 위해서다. 양현종은 "나도 예전 같지 않다. 강하게 윽박지르면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던진 것"이라고 했다. 양현종은 "이번 스프링캠프부터 꾸준히 연습했다. 선발 투수를 오래 하다 보니 상대가 휘두르지 않을 것 같을 때를 알게 된다. 그때 던진다"고 설명했다. '속도'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양현종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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