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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핵협의그룹이 핵 억제·보장의 견인차 역할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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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윤병세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윤병세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는 신냉전 길목에서 70주년을 맞는 한미동맹이 향후 “지속 가능하고 회복력 있는” 동맹으로 나아가는 미래 청사진과 전략적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미동맹이 이룬 성취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21세기 난제들을 정면 대응해 나가겠다는 ‘GCSV’ 동맹(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과 가치 동맹)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점을 공동성명과 워싱턴 선언, 의회 연설 및 국빈 만찬 등 풍성한 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로는 양국 지도자 간 친근감과 상호 신뢰가 이번 방미 계기에 확고해지고 미 의회와 여론 주도층의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높아진 점이다.

방미 결과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70주년 정상 공동성명과 별도로 정상 차원에서 ‘워싱턴 선언’을 채택한 점이다. 그 중 핵협의그룹(NCG) 창설 및 전략 핵잠수함(SSBN) 정례 전개 등 관련 조치들은 다양한 함의를 갖는다.

NCG, 한·미 핵정책 결정의 핵심
나토식 핵동맹으로 발전할 수도
한·미·일 확장억제로 확대 가능
핵추진잠수함 도입 계속 검토를

NCG, ‘한미동맹 맞춤형’ 핵 협의 장치

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첫째, NCG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전술핵을 한국에 배치하지는 않지만 미국 핵 자산과 전략에 대한 정보 공유, 공동 기획과 공동 연습 등 우리의 관여도를 상당히 높인다는 점에서 나토의 핵기획그룹(NPG)에 못지않다. 한·미 공동문서 사상 최초로 “협력적인 정책 결정에 관여”한다는 표현이 이를 함축한다. 신정부 출범 후 정보 공유, 공동 기획, 위기 협의, 연합 연습, 전략자산 전개 등에 역점을 둔 협의 결과가 상당히 반영된 것이다. 향후 NCG의 활동이 강화되면 약 30개국이 참가하는 나토의 NPG 보다 더 효율적인 ‘한미동맹 맞춤형’ 핵 협의 장치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는 1978년 최초로 핵우산 공약을 도입한 이래 핵우산보다 넓은 개념의 확장억제 전략을 발전시켜 왔지만, 확장억제와 관련한 체계적 논의는 북한의 2차 핵실험(2009년)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확장억제 정책위원회’(2010년), ‘억제 전략위원회’(2015년), 억제와 압박 및 제재를 포함한 포괄적 대북 억제 장치인 ‘확장억제 전략협의체’(EDSCG, 2016년)로 진화해 왔다. 이번에 핵 공동 기획과 실행을 위한 수시 협의체로 더욱 구체화했다.

둘째, 북핵 위기 상시화에 대응하는 특별 협의 장치가 이례적으로 정상 차원의 합의로 마련된 것은 전략적 우선순위가 높아지고 나토 같은 ‘핵 동맹’으로 진화해 나가는 이정표라고 볼 수 있다. NCG는 선언에 규정된 활동 지침(TOR)에 비추어 확장억제 중 핵 운용과 핵전략 문제에 보다 특화된 그룹으로 보인다. “핵 억제”, “핵 작전”, “핵 유사시 공동 기획”, “핵 사용에 대한 방어” 등 핵 사용과 유사시에 초점을 맞춘 표현들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2009년 한·미 정상 비전 성명에 우리 측의 강한 요청으로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 공약을 명기한 이래 확장억제 역량(핵우산, 재래식 대응, 미사일 방어) 중 “핵 억제, 핵우산”을 중시해 온 우리 측 입장과도 궤를 같이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상 간 선언으로 창설된 NCG가 양국 최고 지도부를 포함하는 핵 정책 결정 체계에서 핵심축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미동맹의 중추인 한미연합사령부가 국방장관 간 합의로, EDSCG가 2+2 외교국방장관회의에서 창설된 것과 비교하더라도 NCG는 정상 합의에 따른 창설에 걸맞은 ‘협력적 관여’가 구체화되어야 한다.

핵보장, 단계적으로 계속 확대해야

셋째, 상당 기간 한미 NCG를 공고히 해 나가는 것에 역점을 두되, 이에 추가해 향후 한·미·일 3자 간 확장억제 협의로 확대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2022년 미국 3대 보고서(국방 전략, 핵 태세, 인·태 전략)는 한·일·호주 등과의 확장억제 협의 강화, 한·미·일 3자 또는 호주 포함 4자 간 정보 공유 강화 등을 상정하고 있다. 작년 11월 한·미·일 정상 공동성명과 이번 한·미 공동성명도 북핵 억제 강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러한 소(小) 다자적 확장억제 장치의 장점은 참가국들의 정권 변화에 영향을 덜 받고 역할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6년 EDSCG는 어렵게 얻어낸 성과물인데, 박근혜 정부 이후에는 2017년 1회 개최 후 5년 만에야 재개되었다. 국가의 생존이 걸린 안보 장치는 45년이 된 한미연합사처럼 정권 변화에 무관하게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넷째, 이번 선언으로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내에서 확장억제를 최대한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이에 따른 다양한 국내외 시각에 대한 입장을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우선 전술핵 한국 재배치에 대한 미국의 신중한 입장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군사적 효용성 논란뿐 아니라 핵 사용 문턱을 낮출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건의처럼, 최종 결정은 나중에 하더라도 장래 배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연습을 하는 것은 나토 모델(5개국에 전술핵 배치)에 더 근접하고 북한에 대한 경고라는 장점이 있다. 40년만의 전략 핵잠수함(SSBN)의 한반도 정기 전개 결정도 핵우산의 실효성을 보다 강화해 준다.

다음으로 호주 모델(핵 추진 잠수함 도입)을 계속 검토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 한번 시도했다가 무산되었지만, 미국의 신뢰가 높은 현 정부에서 전략적 복안을 갖고 타당성 여부를 신중히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일본 모델(농축과 재처리를 위한 완전한 핵연료 주기 확보)로 가는 중간 과정이기도 하다. 핵 자강 차원에서 제기되어 온 독자 핵무장 주장은 일단 윤 대통령이 하버드대 연설 후 질의응답에서 설득력 있게 답변한 것으로 본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한 번에 최대치를 얻어 내라는 무리한 주장보다 단계별로라도 할 수 있는 붙박이 구조물들을 집요하게 만들고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나토, 일본, 인도, 호주의 사례에서 배울 게 많다.

윤병세 전 외교통상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