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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박은빈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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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심새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심새롬 중앙홀딩스 커뮤니케이션팀 기자

심새롬 중앙홀딩스 커뮤니케이션팀 기자

“여러분의 사랑이 없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이런 순간이 올 줄 몰랐는데… 흐흑….”

지난달 28일 59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이날 하이라이트인 TV대상을 받은 박은빈(31)은 수상 소감을 말한 12분 내내 울었다. 그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천재 변호사를 연기해 주목을 받았다. 1996년 아동복 모델로 데뷔한 지 27년 만이다. 그는 호명 순간부터 눈물을 터뜨렸다. “어린 시절, 배우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대상을 받을 수도 있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대목에서 거의 오열했다. 긴 터널 끝에서 맞은 그의 ‘별의 순간’에 박수가 터졌다.

사흘 뒤 ‘여배우의 품격’ 논란이 일었다. 문화평론가 김갑수(67)씨가 유튜브 방송에서 “울고불고 코 흘리면서”라며 “시상식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타인 앞에서 감정을 격발해서는 안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씨는 박씨를 두고 “품격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며 “심지어 30살이나 먹었으면 송혜교씨한테 배워라. 가장 우아한 모습이 송혜교였다”라고도 했다.

‘공인이라면 감정을 절제·관리하는 게 성숙한 자세’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연예인보다 훨씬 더 높은 기준의 감정 자제를 강요받는 공직자·정치인조차 솔직한 감정 표현이 종종 도움된다. 2020년 남편의 미국 호화 요트 구매 여행으로 궁지에 몰렸던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은 국정감사장에서 “남편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다. 송구스럽다”고 당혹감을 그대로 드러내 상황을 반전시켰다.

김씨의 평가에 대해서도 ‘개인의 감정 관리를 타인이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 자체가 무례한 월권’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우느라 말을 전혀 못 한 것도 아니고, 10분 넘게 스피치를 했는데 무엇이 문제냐”며 “반대로 안 울면 분명 ‘건방지다’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 했다. 재밌는 건 관련 논란 덕에 백상예술대상 유튜브의 피날레 영상 조회 수가 닷새간 555만회를 돌파했다는 점이다. 댓글 대부분이 “진정성이 느껴지는 수상 소감이었다”고 박씨를 옹호했다. 이번에도 역시, 솔직함의 승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