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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가 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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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형수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형수 국제부 기자

박형수 국제부 기자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최근 이 질문이 10대들 사이에 대유행 중이다. 느닷없이 부모에게 “내가 자고 일어났더니 1m 넘는 바퀴벌레가 됐어. 근데 영혼은 나야. 엄마(아빠)의 반응은?”이란 기습 카톡을 보내고 답을 채근한다. “왜 그러냐”는 반문에도 “그냥”이라며 막무가내로 대답을 보채고, 답변을 받아내면 온라인에 공유해 또래들과 함께 ‘부모의 정체’를 분석한다.

“파리채부터 찾겠다” “세스코에 문의한다” 등 ‘농담을 다큐’로 받아친 부모는 ‘서운함 유발자’로, “예쁜 케이지에 넣고 애지중지 키우겠다”는 ‘감동 선사형’으로 분류한다. “일단 징그러우니 방에 가두겠다”는 감금형, “어떻게든 사람으로 되돌리겠다”는 복원형 등은 현실파 부모로 나눈다. 부모의 답변을 ‘아무 말 대잔치’ 유희 거리로도 소비하지만, 이를 통해 ‘부모에게 난 어떤 존재인가’를 진지하게 확인하고자 한다.

이 질문의 원조는 체코 작가 프란츠 카프카다. 소설 『변신』에는 자고 나니 커다랗고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등장한다. 영업사원으로 뛰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벌레가 됐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도 출근부터 걱정하는 고달픈 인생이다. 하지만 가족은 그를 벌레로 취급하며 감금한다. 소설 말미, 그레고르가 죽음을 선택하자 가족들이 홀가분하게 피크닉을 떠나는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다.

한국 10대의 삶 역시 고달프다.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꼴찌(2021년, 한국방정환재단)고, 자살률(통계청)은 전 연령대 중 유일하게 증가세다. 음주와 우울감, 스트레스 지수도 매년 높아진다. 고 이어령 박사는 『변신』을 “지극한 리얼리즘”이라 표현하며 “누구나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 즉 버러지로 여기는 순간을 경험하며, 이때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잃어버린 가치를 복원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부모를 향해 ‘카프카적 질문’을 던지는 10대들은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있을까. 한 맘카페에선 “엄마가 벌레가 되면”이란 질문에, 8살 아이가 “나도 벌레가 될래”라 답했단 내용이 회자했다. 어떤 상황에도 같은 모습이 돼 곁에 있겠단 의미다. 그레고르의 부모가 이런 마음이었다면 소설의 결말도 상당히 달라졌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