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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못되니 경찰 뽑아준다는데…"명예훼손" 버럭한 그들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 후 5년 동안 변호사 자격증을 따지 못해 더는 변호사시험을 볼 수 없는 이른바 ‘오탈자’들을 일반직 공무원 7급에 해당하는 계급으로 특별채용하는 방안이 경찰 내부에서 거론됐다. 그러자 오탈자 모임 등에선 “명예훼손”이라며 격한 반응이 나왔다. 경찰 입장에선 감소세인 변호사 특채 지원자 대신 일정한 법학 지식을 갖춘 이들을 수사 역량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고, 오탈자들에겐 일정한 ‘구제책’이 될 수도 있는 방안이지만 수혜 당사자들이 오히려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경찰청은 '오탈자'를 대상으로 국사수사본부 경사(7급) 특별채용 계획을 검토했다. 뉴스1

경찰청은 '오탈자'를 대상으로 국사수사본부 경사(7급) 특별채용 계획을 검토했다. 뉴스1

국가수사본부는 최근 변호사 자격이 없는 로스쿨 졸업생들을 현장 팀장급에 해당하는 경사직(7급)으로 특별채용하는 안을 내부적으로 논의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늘어난 수사 범위와 업무에 수사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투입하는 방안으로 거론된 아이디어였다.

경찰은 이미 국가수사본부가 출범한 2021년부터 변호사 특채 인원을 기존의 2배인 40명으로 늘렸지만 지원자 수가 줄어들고 경쟁률도 급감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청이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변호사 특채 지원자는 2018년 227명에서 지난해 70명으로 줄었고 경쟁률은 11.3대 1에서 1.8대 1까지 내려왔다. 이런 상황에 대한 여러 대안 중 하나로 오탈자 특채 카드가 제출된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변호사들 사이에선 로펌 등과 업무량은 비슷한데 월급은 적은 경찰직에 대한 선호가 낮아지고 있다”며 “이들의 관심을 높일 방법도 생각해야 하지만 대안도 있어야 한다. 오탈자들도 법 공부를 오래 했기 때문에 시험은 통과하지 않았어도 법적 전문성은 어느 정도 갖춘 인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탈자들은 오히려 반발하고 있다. 선택지가 늘어난 게 아니라, 로스쿨의 근본적 문제를 외면하게 하는 미봉책이 될 거라는 게 이들의 걱정이다. 지난해 마지막 변호사시험에서 떨어진 김모(36)씨는 “경찰 특채 계획은 오탈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외면한 채 로스쿨의 위상을 되레 깎아내리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로스쿨 4기생이자 오탈자인 최모(41)씨도 “변호사 시험 응시제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회유책이 아닌지 의심된다. 일부를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로스쿨 졸업 후 5년 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더는 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한 현행 제도하에선 오탈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1·2회 변호사시험을 제외한 나머지 회차 시험의 합격률은 50%~60%대였고, 올해 실시한 12차 변호사 시험 합격률은 52.99%였다. 비싼 학비를 감당하느라 시험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졸업 후 임신·출산을 하거나 중병에 걸려도 최대 5년 내 5회만 응시할 수 있는 규정에서 예외로 인정받을 순 없다. 올해 기준 누적 오탈자 수는 15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변호사 시험 응시 횟수를 제한한 변호사시험법이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며 7차례 헌법소원을 청구했지만, 기각 또는 합헌 취지의 판단만 나왔다.

로스쿨생들은 오탈자 방지를 위해 변호사 시험 자격시험화, 응시 제한 철폐 등을 주장한다. 사진은 2021년 4월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연 로스쿨 원우회와 수험생들. 연합뉴스

로스쿨생들은 오탈자 방지를 위해 변호사 시험 자격시험화, 응시 제한 철폐 등을 주장한다. 사진은 2021년 4월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연 로스쿨 원우회와 수험생들. 연합뉴스

 오탈자 모임 등의 반응은 더 강경하다. 지난 2일 오탈자 특채 반대 성명을 낸 평생응시금지철폐연대 이석원 회장은 “경찰은 경찰대, 간부후보생 등 출신을 중시하는 조직”이라며 “오탈자 특채는 사실상 처음부터 탈락자라는 낙인을 찍은 상태로 일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탈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지며 경찰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경찰 때문에 오탈자들이 부정적 존재로 인식되고, 비판의 대상이 됐다는 이유다. 철폐연대 측은 “실제 고소가 이뤄진 건 아니지만,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는 논의까지 있었던 건 맞다. 그만큼 격앙됐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경찰 내부에서도 정반대 이유로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서울의 한 일선서 과장은 “특채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자를 뽑기 위한 것”이라며 “오탈자가 특채할 만큼의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파출소에 근무하는 한 순경도 “로스쿨 입학을 위해 쓴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시험을 통해 자격을 획득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특혜를 주려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조직 내·외부 반발이 일자 경찰은 난감해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철회도 확정도 아니다. 말 그대로 아이디어 차원에서 언급된 것일 뿐인데 이렇게 반발이 나오니 오히려 논의 자체가 잘 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윤희근 경찰청장 역시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역량 있는 사람을 외부에서 채용하는 것도 수사 역량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다. 다만 아이디어 차원일 뿐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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