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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행 항공기 명단에 대통령 사위…이스타 수뇌부 경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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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하나 PD 중앙일보 PD
이세영
이세영 PD 중앙일보 PD

드러나는 타이이스타젯 비리 의혹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 사위 특혜 취업 의혹과 관련된 ‘타이이스타젯’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전주지검 형사3부(권찬혁 부장검사)는 지난달 17일 배임 혐의로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타이이스타젯 박석호 대표를 기소했다.

두 사람은 2017년 이스타항공 자금 71억원을 타이이스타젯 설립 자금으로 쓰고 2019년 8월 타이이스타젯 항공기 리스비 369억원을 이스타항공이 지급 보증하도록 해 이스타항공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타이이스타젯은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이스타항공의 ‘위장 계열사’였다는 것이 검찰 입장이다. 국민의힘 최고위원인 조수진 의원(비례, 초선)이 확보한 두 사람의 검찰 공소장을 통해 의혹의 전말을 들여다본다.

조수진 의원, 이상직 공소장 입수
회삿돈 빼돌려 태국 자회사 설립
이상직, 대통령 사위 취업 비밀로
회사 수뇌부도 뒤늦게 알고 충격

순식간에 까먹은 71억원

2021년 4월 이스타항공에 430억여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횡령배임)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전주지방법원에 출두했던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 그는 지난달 이 혐의로 6년 형이 확정됐다. 그는 이스타항공 채용 비리와 타이이스타젯 관련 배임 혐의로도 각각 기소된 상태다. [연합뉴스]

2021년 4월 이스타항공에 430억여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횡령배임)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전주지방법원에 출두했던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 그는 지난달 이 혐의로 6년 형이 확정됐다. 그는 이스타항공 채용 비리와 타이이스타젯 관련 배임 혐의로도 각각 기소된 상태다. [연합뉴스]

박석호씨는 태국에서 이스타 항공 티켓 판매를 대행하는 업체 ‘이스타에어서비스’를 운영했다. 그러다 자신의 돈을 들이지 않고 이스타항공 자금으로 태국 항공사를 세울 생각으로 2016년 7~9월 이상직 전 의원에게 “이스타항공 자회사를 태국에 설립하면 동아시아 노선을 열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서울 강서구의 이스타 항공 사무실에서 프리젠테이션도 했다. 이 전 의원은 2017년 1월 이에 동의했다. ‘타이이스타젯’의 출범이 개시된 것이다.

두 사람은 타이이스타젯 설립 비용을 이스타항공 돈을 빼돌려 쓰는 계획을 짰다. 태국 법령상 외국인 지분이 49%를 초과하지 못하게 되어있자 이스타항공의 직접 투자 대신 박 대표의 이스타에어서비스를 통해 우회 투자하는 꼼수를 썼다. 투자금은 박 대표가 태국에서 이스타항공 티켓을 팔고 받은 대금 71억원이 동원됐다.

먼저 박 대표는 2017년 2월 20일 태국에서 팔린 이스타항공 항공권 대금 500만 바트(약 1억7700만원)의 송금을 지연하고 타이이스타젯 설립 대금으로 썼다. 이어 그해 7월 항공권 대금 1억9500만 바트(약 69억2300만원)의 송금도 지연시킨 뒤 타이이스타젯 자본금 증자에 썼다. 이 전 의원의 승인에 따른 것이었다. 이스타항공 대표이사와 재무실장 등 임원들은 불법 소지가 다분한 타이이스타젯 설립을 반대했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이들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이사회 결의도 없이 타이이스타젯 우회 설립을 강행했다고 검찰은 적시했다.

이렇게 세워진 타이이스타젯 지분은 49%가 이 전 의원이 지정한 3자(태국인)에게 주어지고 51%는 이스타에어서비스에게 주어졌다. 이를 통해 이 전 의원은 타이이스타젯을 지배하게 됐다. 명목상 대표일 뿐인 박석호씨는 타이이스타젯 업무 전반을 이 전 의원에게 보고하고 그의 승인에 따라 회사를 운영했다. 이 전 의원은 2018~20년 벤처진흥공단이사장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전주을)을 지내며, 이스타 항공을 떠나있던 시절에도 이스타항공과 타이이스타젯 경영에 관여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그러나 타이이스타젯은 항공사 운영에 필수적인 항공운항증명(AOC)을 2년 7개월 뒤인 2020년 1월에야 취득했다. 3년 가까이 항공기를 띄우지 못한 데다 때마침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사태로 항공업계 전반의 발이 묶이면서 자금이 바닥났다. 2020년 7월경엔 자본금 잔고가 3885만원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스타항공 돈 71억원을 빼돌려 쓰다가 전부 날린 셈이다. 그 손해는 고스란히 이스타항공으로 돌아갔다.

항공기 리스비 300억도 이스타 ‘독박’

이뿐만 아니다. 타이이스타젯은 2018년 12월 항공기를 마련하려고 리스업체들을 접촉했으나 “매출이 전무한 신생기업”이란 이유로 거절당했다. 당시 타이이스타젯은 자본금이 71억원에서 52억원으로 줄고 월 7억원 이상 드는 리스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안 돼 자력으로 항공기 리스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러자 이 전 의원은 이스타항공이 타이이스타젯의 항공기 리스 보증을 서게 하는 무리수를 뒀다.

당시는 이스타항공도 자본 잠식률이 230%에 이르는 등 경영이 열악했는데도 이 전 의원은 이사회 결의도 거치지 않고 대표이사와 재무팀장에게 타이이스타젯의 리스 비용 등을 지급 보증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 전 의원은 배임 처벌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타이이스타젯이 이스타항공에 보증 수수료를 내는 계약을 체결토록 했다.

이 덕분에 타이이스타젯은 2019년 9월 B737-800 항공기 1대를 매달 39만 5000달러에 72개월간(총 지출액 약 338억원) 임대하는 계약에 성공했다. 매달 4억원 넘는 리스비에 대해 이스타항공이 타이이스타젯에 받는 수수료는 매달 1325만원에 불과했다. 과대평가된 타이이스타젯 신용등급에 바탕해 특혜를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이이스타젯은 경영난에 시달린 끝에 이스타항공에 단 한 차례만 수수료를 지급했고, 리스업체에도 7개월분 리스비(약 34억원)만 지급했다. 결국 나머지 리스비 300억원은 지급보증을 선 이스타항공이 떠안게 됐다. 한때 나름 잘나가던 저비용 항공사가 창업주의 ‘태국 자회사’ 설립 꼼수 때문에 거액을 떼이고 경영난에 빠진 끝에 회생을 신청하고, 두 차례나 오너가 바뀌는 비극을 맞은 셈이다.

“태국 자회사? 절대 거론 말라”

당시 이스타항공은 타이이스타젯 설립 과정이 떳떳하지 않다고 판단한 탓인지 회사 내부에서도 관련 정보를 철저히 숨겼다. 이스타항공 전직 노조 관계자의 전언이다.

“2017년 초 회사가 실력과 품행에 문제가 있는 정년 퇴직자를 운항본부장에 기용한다길래 극력 반대하면서 노조 설립에 동의해달라고 요구했으나 회사는 마이동풍이었다. 그런데 당시 ‘회사가 태국에 자회사를 만든다’는 소문이 사내에 돌았다. 그래서 고위 임원에게 그 소문의 진위를 묻자 얼굴이 새파래지더니 ‘노조 설립에 동의해주고 운항 본부장도 노조 원하는 사람으로 시켜줄 테니 제발 태국 자회사는 거론하지 말아 달라’고 애걸하며 우리 요구를 다 들어주더라. 그 이후 타이이스타젯은 회사 동료들 사이에 ‘이상직의 비자금 도피처’란 소문이 파다했다.”

이상직, ‘대통령 사위’ 철벽 보안

검찰은 이번 수사 과정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인 서 모씨가 타이이스타젯에 전무이사로 재직한 것과 관련, 취업 특혜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다.

2018년 3월 이 전 의원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 임명과 그해 이뤄진 서씨의 취업 사이에 대가성이 있는지 검토에 착수한 것이다. 항공업 종사 경력이 전무한 서씨가 타이이스타젯 고위직에 채용된 건 이 전 의원의 중진공 이사장 자리를 얻기 위한 뇌물로 볼 수 있다는 의혹이다.

의혹은 2019년 1월 곽상도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문 대통령의 딸과 사위·손자가 아세안 지역의 한 국가(태국)로 이주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폭로하면서 개시됐다. 이에 대해 이스타항공 측은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이스타항공 채용 비리 관련 검찰 수사가 개시되자 당시 회사 수뇌부가 서씨의 타이이스타 재직 사실을 인정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관련 소식통 전언이다.

“곽 의원의 폭로 당시 서씨는 타이이스타젯에 반년 가까이 근무한 상태였으나 이상직 전 의원은 이 사실을 이스타항공 수뇌부에게조차 숨겼다. 곽 의원의 폭로에 놀란 이스타 수뇌부가 뒤늦게 서씨가 이스타항공 서울발 방콕행에 탑승한 사실을 파악하고 경악했다고 한다. 박석호 대표도 이 전 의원의 지시로 2018년 7월 서씨를 타이이스타젯에 채용하면서도 처음엔 정체를 몰라 방콕 공항에서 자신의 주요 고객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겼을 정도였다. 그러다 뒤늦게 ‘대통령 사위’란 말을 이 전 의원에게 듣고 타이이스타젯 본사로 이동시켜 고위직에 앉혔다고 한다. 이 전 의원은 다혜씨 부부가 방콕에 가기 전 그들이 살 집을 미리 알아보라고 박석호 대표에게 주문하면서도 ‘중요한 사람이 살 집을 알아봐 달라’고 할 정도로 보안에 철저했다. 지금까지도 이스타항공에는 서씨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이 기사는 3일 오후5시 중앙일보 유튜브 '강찬호의 투머치토커'에 상세보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