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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 논설위원이 간다

인원 제한 없는 7찬 학식 vs 하루 70명 편의점 컵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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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부익부 빈익빈 ‘천원의 아침밥’

윤석만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여야 정치권 모두 치적으로 내세우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 최근 김기현·이재명 등 여야 대표가 경쟁적으로 대학식당을 찾아가며 원조 경쟁을 벌였다. 사업이 인기를 끌자 7일 정부도 혜택 인원과 대학 수를 대폭 늘린다고 발표했다. 2022년 69만 명에서 지난 3월 150만 명으로 확대했는데, 이번에 다시 234만 명으로 증원했다.

참여 대학이 41곳에서 145곳으로 늘긴 했지만, 여전히 전국 380여개 대학 중 상당수는 참여를 꺼린다. 한끼 식사비용(4000~5000원) 중 1000원을 정부가 지원해도 나머지는 결국 대학의 몫이기 때문이다. 학교 재정이 튼튼하거나 기부금이 많지 않은 곳은 ‘천원의 아침밥’ 사업 참여가 힘들다.

이미 실시 중인 대학도 ‘울며 겨자 먹기’식인 곳이 많다. 정부·정치권의 호언으로 기대감이 높아지자 일단 시작은 했지만, 부실한 식단과 적은 인원 혜택으로 흉내만 내는 곳이 다수다. 정치권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너도나도 ‘천원의 아침밥’을 공언하며 생색을 내고 있지만, 학생들은 정작 ‘아침밥 디바이드’로 위화감을 느낀다.

대학 재정 여건 따라 천차만별
아침마다 식권 확보 전쟁 일어

학교 부담 커 지속가능성 의문
10분여 만에 마감되는 곳 많아

“총선 앞두고 정치권 생색내기”
정부는 대학 수 늘리기에 급급

‘천원의 아침밥’도 양극화 뚜렷

3일 아침 고려대 학생식당을 가득 메운 학생들. 윤석만 기자

3일 아침 고려대 학생식당을 가득 메운 학생들. 윤석만 기자

지난 3일 오전 8시 30분쯤 서울 고려대 학생식당은 100여 명의 학생으로 붐볐다. 학생들은 1000원을 내고 원하는 만큼 밥과 반찬을 담았다. 식당 한쪽에서 계란프라이를 굽고 있던 강탁균(22·경영학과)씨는 “밑반찬 4개에 국까지 무제한이고 계란프라이와 토스트, 탄산음료도 공짜”라며 “값은 천원인데 가치는 만원어치”라고 했다.

천원에 국과 반찬 4개, 직접 조리하는 계란프라이와 토스트, 탄산음료가 제공된다. 윤석만 기자

천원에 국과 반찬 4개, 직접 조리하는 계란프라이와 토스트, 탄산음료가 제공된다. 윤석만 기자

충북 청주에서 올라와 자취 중인 김현성(22·미디어학부)씨는 “오늘처럼 수업이 없는 날도 아침밥 먹으러 등교해 공부한다”며 “하루를 일찍 시작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했다. 같은 학과 조민욱(22)씨도 “원래는 어머니께서 차려주셨는데 지금은 학교에서 주로 먹는다”며 “마감 10분 전에 와도 편안히 먹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고려대의 ‘천원의 아침밥’ 이용자는 하루 800~900명 선. 인원제한이 없어 1000명을 넘길 때도 있다. 임춘택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정부 지원금 5635만원에 교우·학부모 등이 낸 기부금 5억원을 보탠다”고 했다. 대학알리미(2022년)에 따르면 고려대는 국내 사립대 중 기부금 1위(582억원)다. 2위(461억원), 3위(380억원)와 격차가 크다.

반면 대부분 대학은 아침 식권을 놓고 매일 전쟁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는 식사 인원이 130명으로 한정돼 있다. 이 대학 관계자는 “정부 지원금이 적어 혜택 인원을 늘리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수의 지방 사립대는 학교식당을 외주로 하거나 수익사업으로 운영해 ‘천원의 아침밥’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경남의 4년제 A대는 계속 눈치를 보다 뒤늦게 ‘천원의 아침밥’ 사업에 동참했다. 이 대학의 한 교수는 “운영비가 모자를 만큼 재정이 빠듯해 참여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다른 대학들도 홍보 목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우리만 소외되면 안 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컵라면에 삼각김밥’ 오픈런

2일 전북의 한 대학 편의점에서 ‘천원의 아침밥’을 제공하는 모습. 윤석만 기자

2일 전북의 한 대학 편의점에서 ‘천원의 아침밥’을 제공하는 모습. 윤석만 기자

전북의 한 대학에서 제공하는 ‘천원의 아침밥’ 간편식. 하루 70명만 이용할 수 있어 빨리 마감된다. 윤석만 기자

전북의 한 대학에서 제공하는 ‘천원의 아침밥’ 간편식. 하루 70명만 이용할 수 있어 빨리 마감된다. 윤석만 기자

‘천원의 아침밥’을 시행 중이지만 혜택 인원이 적어 불만인 곳도 많다. 전북의 4년제 B대는 매일 아침 100명에게 ‘천원의 아침밥’을 제공한다. 아침 일찍 줄을 섰다 허탕 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플로 예약받고 있지만, 이 또한 경쟁이 치열하다. 평일 자정 식권 예약 창이 열리면 10여분 만에 매진되기 일쑤다.

보통 컵라면에 삼각김밥이 나오지만 이날은 컵덮밥이 나왔다. 윤석만 기자

보통 컵라면에 삼각김밥이 나오지만 이날은 컵덮밥이 나왔다. 윤석만 기자

전북의 또 다른 4년제 C대는 혜택 인원이 70명으로 더욱 적다. 심지어 이 대학은 학생식당이 아닌 편의점에서 아침밥을 제공한다. 메뉴는 매일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컵라면에 삼각김밥이다. 인원이 한정돼 있어 학생들은 매일 아침 ‘오픈런’을 해야 한다.

지난 2일 오전 9시쯤 편의점에는 여러 명의 학생이 줄을 서 있었다. 하민승(24·전자공학과)씨는 “주 3~4회 정도 이용하는데 9시 10분이면 거의 동난다”며 “밖에서 먹으면 8000~9000원은 줘야 해 부담이 크다”고 했다. 강민주(19·사회복지학과)씨는 “천원에 아침식사를 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의 메뉴는 컵덮밥. 전자레인지로 햇반을 데워 소스를 뿌려 먹는 간편식이다. 김승민(21·회계학과)씨는 “컵덮밥을 주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며 “보통은 컵라면에 삼각김밥”이라고 했다. 건축학과 1학년 이한진(19)·황지민(19)씨도 “컵덮밥은 오늘 처음 본다”며 “매진이 너무 빨라 인원을 좀 더 늘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C대가 편의점 간편식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학생식당이 아침에 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관계자는 “식당 운영을 위탁업체에 맡겼는데 늘어난 인건비와 식자재 비용 등으로 단가를 맞추기 어렵다”고 했다. 정부가 C대에 지원하는 예산은 연간 1250만원. 대학 측이 추가로 부담하는 예산 또한 1250만원이다. 이 돈으로는 “아침식사 운영 시 위탁업체가 밑진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주요 관심은 질보다 양

‘천원의 아침밥’ 사업이 인기를 끌자 정부는 참여 대학을 대폭 늘렸다. 지난 3월 15억8800만원이었던 사업 예산도 20억원 이상으로 늘려 혜택 인원을 234만 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234만 명의 학생이 꾸준하게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정확히 말하면 234만 회분의 식사란 의미”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은 100명 안팎으로 인원을 제한한다. 당장의 이슈화로 참여 대학이 늘긴 했지만 내실을 다지기 어려운 구조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등록금은 15년째 동결 중인데 고정비용이 계속 늘어 모든 대학이 재정적으로 어렵다”며 “‘천원의 아침밥’은 지속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천원의 아침밥’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만큼 값싸고 효율적인 홍보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급증한 20대 무당층을 잡기 위해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누릴 수 있는 대책”이라고 말했다.

박영호 창원대 기획처장은 “정치권에서 학생들의 끼니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거라면 학생들의 이용률이 높은 점심식사를 지원해주는 게 맞지 않느냐”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지방 국립대 교직원은 “혜택 학생 수를 늘리고 싶지만, 정부는 기존 대학의 인원을 확대하기보다 학교 숫자를 늘리는 데 집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3월 정부가 올해 사업 명단을 발표했을 때는 각 대학이 신청한 인원에서 30%씩 삭감했었다. 앞서 전북의 C대가 지난해 혜택 인원을 90명으로 운영하다가 올해 70명으로 줄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예산이 한정돼 있어 (3월엔) 30%씩 삭감했던 건데, 이번에 다시 100% 지원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쌀 소비 촉진이 목적…대학 무상학식 주장도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소비 확대를 목적으로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시작했다. 최근 1~2년 사이 물가가 크게 오르며 학생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지난해 대학생 5437명을 조사해보니 사업 지속을 바라는 응답이 98.7%나 됐다. 정부가 ‘천원의 아침밥’을 적극 홍보하고 여야 정치권까지 가담하며 이슈가 커졌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4일 “‘천원의 아침밥’을 전국 대학에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며칠 후(10일)에는 “‘천원의 아침밥’은 민주당의 청년정책 1호”라고 홍보했다. 지난 3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정부) 지원이 늘어나야 한다”며 “품질도 높여 점심, 저녁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무상학식’ 주장도 나왔다. 최근 경상남도는 도내 23개 대학 재학생 6만여 명에게 ‘무상학식’ 제공 방안을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총예산은 360억원이다. 경남도청 관계자는 “도민들의 제안으로 사업을 논의했던 것”이라며 “의회의 반대로 재검토 중인 사안이라 확정된 것은 없다”고 했다.

대학 자율일 때는 상관없지만, 정부 재정 투자가 많아질수록 공정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초·중·고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정부 예산으로 무상급식이 가능하지만, 대학교육은 선택이기 때문에 ‘천원의 아침밥’을 보편적 복지로 접근하는 게 옳은지는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