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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곧 상장" 이 말부터 던진다…검사가 캐낸 코인사기 법칙 [코인지옥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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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검찰이 최근 코인 발행과 다단계식 투자자 모집을 통한 자금 조달, 상장피(fee·수수료) 등 뒷돈을 통한 암호화폐거래소 상장, 자전거래 등 조직적 시세조종을 통한 대규모 이익 편취 등 코인 거래 전(全) 과정에 걸친 유착 비리에 칼을 빼 들었다. 지난 10여년간 정부와 국회가 방치하는 사이 무방비 상태에 놓인 코인판의 병폐를 도려내기 위해서다.

가상자산 비리 수사를 이끌고 있는 이승형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장은 지난 25일 본지 인터뷰에서 "가상자산 거래시장의 공정한 경쟁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조속히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가상자산 비리 수사를 이끌고 있는 이승형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장은 지난 25일 본지 인터뷰에서 "가상자산 거래시장의 공정한 경쟁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조속히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 가상자산 비리 수사팀은 최근 집중 수사로 그간 베일에 가려졌던 ‘코인 상장 브로커’의 존재를 수면 위로 드러내 법정에 세웠다. 지난달 7일 코인 상장의 대가로 코인원 상장 담당 임직원에 약 9억3000만원을 전달한 혐의(배임증재)로 브로커 고모씨를, 지난 7일 브로커들로부터 약 20억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전직 코인원 상장 담당 이사 전모씨를 구속기소했다. 27일엔 코인원 상장 담당 임직원에 약 20억3000만원을 전달한 브로커 황모씨(배임증재), 브로커들로부터 약 10억4000만원을 받은 전직 코인원 상장팀장 김모씨(배임수재)를 구속기소했다.

이승형(51·사법연수원 34기) 부장검사는 지난 25일 서울남부지검에서 중앙일보와 만나 “누구나 휴대전화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코인 투자를 미끼로 한 사기 범죄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인 사기꾼들의 단골 수법은
“먼저 코인 상장을 확정적으로 언급한다. 이후 이른바 ‘프라이빗세일’을 명목으로 상장 전 투자를 적극 권유한다. 실제 상장이 되면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락업(Lock-up)을 건다는 이유로 원금 회수를 막는다. 투자 과정에선 사업 성과를 부풀리거나 허위로 홍보한다. 동시에 ‘MM’(Market Making·시장조성)을 통해 목표 가격까지 끌어올려 시장에 물량을 떠넘긴다. 이걸 ‘펌프 앤 덤프’(Pump and Dump)라고 한다. 물량을 털면서도 그래프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도록 매수세 유지를 위한 MM작업을 벌인다.”
왜 투자자들이 코인 사기에 취약한가
“극단적인 정보의 비대칭과 일반 투자자들의 투기 심리를 불법적으로 이용한 다단계 방식으로 범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단기 시세차익을 얻을 목적으로 참여하는 투자자로선 코인 발행·유통 세력의 일방적 홍보에 넘어가기 쉬운 구조다.”
이승형 부장검사는 "가상자산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면 현행법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호 기자

이승형 부장검사는 "가상자산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면 현행법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호 기자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나
“사기죄의 구성요건은 까다롭다. 속인 사실(기망행위)뿐 아니라 속아서 산 것(처분행위)이라는 사실(인과관계) 모두를 입증해야 한다. 자전거래·리딩방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시세를 조작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거래소에 대한 업무방해로 의율하지만, 가상자산과 연계된 사업 성과를 허위 홍보하거나 유통량을 조정해 ‘펌프 앤 덤프’ 형태로 물량을 떠넘겨 이익을 취득한 경우 사기죄로 의율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 연방검찰도 지난해부터 증권사기로 의율하기 곤란한 가상자산의 투자금 편취(rug pull)나 미공개 정보 이용 사건을 전신 사기(wire fraud)로 기소하는 추세다.”
거래소는 코인 사기의 피해자일 뿐인가
“자본시장법엔 상장 관련 뒷돈을 받은 임직원이 기소돼 처벌되면 그에 관한 관리·감독 책임을 거래소에도 부과하는 양벌규정이 있다. 하지만 현재 가상자산 및 가상자산 거래소는 자본시장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유럽연합(EU) 의회를 통과한 MICA(Markets in Crypto-Assets) 법안은 거래소의 의무와 관리·감독 방안을 담고 있다. 가상자산 관련 입법 과정에서 참고할 만하다.”(※지난 25일 국회 정무위 소위를 통과한 가상자산법안엔 MICA 법안과 유사한 내용이 일부 포함됐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규제가 기술 발전을 저해한다는 의견도 있다
“코인은 이미 주식과 마찬가지로 금융투자상품처럼 인식되고 있다. 가상자산은 거래 시간, 거래량, 상한가 제한 등 규제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주식보다 가격 변동성이 크다. 그만큼 투자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더 크다는 의미다.”
코인 투자자들이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코인 백서는 법제화된 공시제도나 공신력 있는 평가기관이 없어 법적 효과가 불분명하다. 불량 코인의 경우 일부러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담기도 한다. 게다가 가상자산은 블록체인 기반이라는 속성 탓에 사용자·귀속자 추적이 어렵고, 금융기관과 같은 운영 주체가 존재하지 않아 불법수익 환수가 더욱 힘들다. 법의 보호를 받기 힘들다는 점을 인식하고 투자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 부장검사는 인터뷰 말미에 “사기 코인일수록 상장 직후 급등했다가 추락하는 구조가 뚜렷하다”며 “가상자산에 투자하려 한다면 투자 전에 반드시 해당 코인의 그래프라도 확인해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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