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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마디면 충분했다…3살 딸도 이용, 지옥문 연 코인술사 수법 [코인지옥③]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코인지옥에 빠진 대한민국

코인 광풍의 미몽(迷夢)에 한국 사회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국가적 재난에 가깝습니다. 가상자산 불법행위 피해액은 수사당국이 지난 6년간 파악한 것만 5조 7000억원, 사기에 속아 목숨을 잃은 이도 부지기수입니다. 태풍 매미(피해액 4조원), 조희팔 다단계 사기(피해액 5조원)를 능가하는 피해 규모입니다. 지난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남 납치·살인사건 역시 코인 사기 의혹이 발단이 됐습니다. 2020년을 전후해 불었던 코인 광풍,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얘기를 취재했습니다.

남모(64)씨가 우연히 방문한 충남 천안의 한 카페에서 봤던 케이라인글로벌 홍보 팸플릿. 600만원을 투자하면 1년에 걸쳐 총 2400만원을 돌려준다고 홍보했다. '방탄소년단 디스커버패스'·'뽀로로 콘텐트 비즈니스' 등 사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기업 컨설팅을 한다며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법무법인 대건

남모(64)씨가 우연히 방문한 충남 천안의 한 카페에서 봤던 케이라인글로벌 홍보 팸플릿. 600만원을 투자하면 1년에 걸쳐 총 2400만원을 돌려준다고 홍보했다. '방탄소년단 디스커버패스'·'뽀로로 콘텐트 비즈니스' 등 사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기업 컨설팅을 한다며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법무법인 대건

 2021년 5월 일거리를 찾아 충남 천안에 자리를 잡은 일용직 노동자 남모(64)씨는 한 카페 사장으로부터 ‘케이라인글로벌’에 투자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가 내민 전단지에는 뽀로로 캐릭터와 BTS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카페 사장은 “뽀로로나 BTS와 관련된 연예사업이다. 600만원을 투자하면 1년 안에 2400만원으로 돌려받는다고 해서 한달 전 투자했다”고 말했다. 남씨는 속는 셈 치고 저축해둔 600만원을 송금했고, 매달 십수만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괜찮은 투자라 판단한 남씨는 국민연금까지 해약해 총 4000여만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3개월쯤 지나자 배당금 지급이 돌연 중단됐고 업체 측은 대신 ‘케이페어코인’을 지급한다고 했다. 결국 남씨에겐 상장도 되지 못한 코인만 남았다.

그 무렵 케이라인글로벌 투자자 모임에서 만난 지인들은 남씨에게 “좋은 거 있으니까 한번 와보라”며 또 다른 코인 투자 설명회에 초대했다. 트론 코인을 구입해 회사 지갑에 넣으면 매일 5%의 배당금에 더해 ‘트론TXT’라는 유망한 코인을 준다는 설명에 남씨는 손실을 메꾸기 위한 거금 투자를 결심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이브 이벤트로 배당금을 10%로 올려 지급한다며 2000만원을 받아간 뒤 업체 측과의 연락은 끊겼다. 케이라인과 트론TXT 등으로 총 2억여원이 공중분해되자 상심한 남씨는 지난해 1월 집을 나와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남씨는 “한동안 방 밖에서 나오지 않고 혹시나 배당금이 나오지 않을까 휴대전화만 쳐다봤다”며 “어디다 하소연도 못 하고 비참한 마음 때문에 아직도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부경찰서는 케이라인글로벌 관계자 5명을 검거해 지난해 6월 송치했다. 트론TXT 피해자들은 단체 고소를 준비 중에 있다.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 가장자산과 관련한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액은 약 5조7615억원이다. 6년간 총 2261명이 유사수신 등 혐의로 검거돼 재판에 넘겨졌다. 2020년 2136억원이었던 피해 금액은 2021년 3조1282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 1조192억원으로 줄었다. 피해 규모는 코인 시장의 흥망과 궤를 같이했다. 유지훈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장은 “가상자산 시장이 호황일 때 그 틈을 노리는 사기꾼들도 벌떼같이 몰려든다”며 “우리나라 코인 범죄는 전형적인 유사수신 다단계 사기의 특징을 보인다. 그 아이템이 코인이 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코인을 포장하는 내용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늘 4가지 각본이 작동한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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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①“우리 이상한 사람 아냐”…3살 딸까지 동원해

 사기는 늘 “나 이상한 사람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됐다. 자영업자인 김모(60)씨가 투자했던 파퀴아오 코인도 그랬다. 학교 후배의 손에 이끌려 설명회에 가면서도 “‘사짜’같다. 완전 사기꾼 관상”이라며 후배를 만류했던 김씨였다. 그런 김씨에게 ‘파퀴아오 코인 한국 에이전시’라는 이모씨는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소개하며 아내는 물론 장인·장모까지 데려왔다.

김씨는 “한번은 집에 초대해 3살배기 딸을 보여주면서 인사시켰다. 딸내미를 거의 마스코트처럼 데리고 다녔다”며 “어찌나 귀여운지, 설마 딸을 데리고 사기를 치겠나 생각했다”고 했다. 조금씩 넣은 돈이 약 3억원까지 늘었지만 이씨는 “본사에서 코인을 안 준다”며 지급을 미뤘고 코인은 몇 개월만에 300원대에서 1원대로 폭락하며 휴지조각이 됐다.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특가법상 사기, 유사수신 등 혐의로 파퀴아오 코인 에이전시 이모씨를 수사하고 있다.

판도코인 측은 "암세포를 죽이는 NK세포를 한국에 들여오는데 판도코인으로만 결제해야 한다"거나 "천안에 영화세트장을 짓는데 디즈니와도 계약을 마쳤다"며 거짓 호재를 발표했다. 고대안암병원과 천안시 측은 이와 관련해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독자 제공

판도코인 측은 "암세포를 죽이는 NK세포를 한국에 들여오는데 판도코인으로만 결제해야 한다"거나 "천안에 영화세트장을 짓는데 디즈니와도 계약을 마쳤다"며 거짓 호재를 발표했다. 고대안암병원과 천안시 측은 이와 관련해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독자 제공

②“상장되면 대박”…디즈니·서울대 가리지 않고 씌운 ‘껍데기’

 ‘껍데기’도 항상 번지르르했다. 발행사들은 자신들의 코인이 획기적인 고수익 사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사업 분야는 문화산업과 생명공학을 넘나들었다. 서울대·성균관대·디즈니·KT 등 유명 기관들을 나열하면서 바이낸스·빗썸·코인원과 같은 대형 거래소 상장을 약속했다. 판도코인 측은 “암세포를 죽이는 세포인 NK세포를 한국에 들여오는데, 그 결제를 판도코인으로만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홍보했다. 고려대안암병원과의 가짜 독점 계약서도 보여줬다.

천안에 초대형 영화 세트장을 짓고 디즈니와 계약을 마쳤다며, 세트장 대금 결제를 판도코인으로만 한다고도 했다. 주부 서모(68)씨는 “대표에게 전화해 항의할 때마다 ‘지금 팔면 후회한다’, ‘다음 달에 호재가 발표된다’고 말하며 매도하지 말라고 했다”며 “그 영화 세트장은 아직도 안 지어졌다. 거짓말을 계속하며 희망 고문을 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발단이 된 퓨리에버 역시 해외 거래소 상장이 예정되어 있다고 장담했다. 정모(36)씨는 “가격이 폭락해 항의할 때마다 “KT하고 빅 이벤트가 있다”거나 서울대와 협업한다는 자료들을 계속 보내며 ‘기다리라’는 이야기만 거듭했다”고 했다. 퓨리에버 중간 모집책은 투자자들을 일대일로 관리하며 “지금은 매도를 하지 말고, 계속 모으고 있으면 매도 시점을 하루 전에 알려주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뽀로로와 BTS의 사진을 전단지에 실으며 400% 수익을 약속했던 케이라인은 이들 제작사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난 2019년 9월 필리핀에서 열린 파퀴아오 코인 투자자 행사에서 필리핀 권투 선수 매니 파퀴아오가 등장해 참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독자 제공

지난 2019년 9월 필리핀에서 열린 파퀴아오 코인 투자자 행사에서 필리핀 권투 선수 매니 파퀴아오가 등장해 참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독자 제공

③“이 사람 알죠?”…유명 배우에 해외 복서까지

 초호화 캐스팅도 활용했다. 파퀴아오 코인 행사장에는 필리핀의 전설적인 권투선수 매니 파퀴아오가 등장했다. 투자자 이모(52)씨는 “필리핀에 투자자들을 데려가서 호텔에서 기자들이며 TV방송국을 불러서 행사를 했다. 그걸 보면서 안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대전경찰청이 수사중인 워너비그룹은 배우 소지섭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TV CF, 옥외간판과 각종 홍보물에 비췄다. 아버지가 워너비에 속아 2365만원을 투자한 김우찬(37)씨는 “아버지가 신뢰했던 정보들 중에 대표적인 게 소지섭의 광고였다. ‘이렇게 유명한 연예인이 광고를 하는데 이게 어떻게 문제가 있느냐. 사기집단에서 어떻게 이런 연예인을 쓰겠냐’고 했다”고 말했다.

퓨리에버는 유명 정치인들을 단상에 세웠다. 지난 2020년 11월 19일에는 ‘미세먼지 생활안전포럼’이라는 행사를 열어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호영·김윤덕·진성준 의원과 국민의힘 소속 정운천 의원을 한 자리에 세웠다. 공동주최자 명단은 코인원에 뒷돈을 주고 상장한 코인의 시세를 부양하는 강력한 호재로 작용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④“도와줄게요”…‘회복 지원’ 명목으로 2중·3중 사기

 코인꾼들은 피해자들에게 “도와주겠다”고 접근해 썩은 동아줄을 내밀었다. 직장인 조모(52)씨에게 주식 투자를 소개해준 사람들은 조씨가 손해를 보자 코인을 권해왔다. 이들은 “주식으로 본 손실을 코인으로 회복하게 해주겠다”며 투자를 권유했다. 이씨는 “나에게 접근했던 네 사람이 한통속이었다. 서로 돌아가면서 천막 치고 계속 나를 벗겨 먹은 것”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이탈자들의 의심이 확산하지 않도록 투자자 커뮤니티 내부 여론을 철저히 단속했다. 판도코인에 투자했던 전모(45)씨는 “이들은 ‘찬티방’을 운영하면서 판도에 대해 부정적인 걸 말하면 바로 퇴장을 시켜버렸다”며 “고소를 예고했더니 총책이 남자 5~6명을 데려와서 눈을 부라리며 협박과 욕설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손해를 복구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말은 파퀴아오→퓨리에버, 파일→판도→신드롬과 같은 불운의 순환고리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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