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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전세사기당할까 봐” MZ 세입자, 돈 더 내도 월세 택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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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개설한 임대인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나쁜집주인’ 사이트. [사이트 캡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개설한 임대인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나쁜집주인’ 사이트. [사이트 캡처]

최근 이른바 ‘깡통 전세’ 피해자가 많은 서울 화곡동으로 이사한 오모(27)씨는 “잇따라 터진 전세사기에 공포를 느꼈다”며 “전세는 아무리 거르고 걸러도 피해를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기 사건이 계속되고 주변에서도 피해자가 나와 보증금 4000만원, 월세 25만원에 계약했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이 ‘전세 포비아(공포증)’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터진 이른바 ‘빌라왕’ ‘빌라의 신’ 사기 사건에 이어, 최근 전국적으로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하면서 제도 자체에 대한 집단 공포심리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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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청년 전·월세 보증금 대출제도를 이용해 경기도 화성시의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전세사기를 당한 김모(21)씨는 “예상 못 한 9000만원 빚이 생긴다는 생각에 인생이 절망적으로 느껴진다. 한강에 가야 하나 고민했다”고 말했다. 인천시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보고 극단적 선택을 한 임차인 3명도 20·30대였다.

전세 기피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임대차계약 269만8922건 중 전세는 129만9500건(48.1%)으로 월세 139만9422건(51.9%)보다 적었다. 전세와 월세의 비율이 역전된 건 법원이 해당 통계를 공개한 2010년 이후 처음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권리는 직접 지키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이들도 있다. 임차인들이 ‘나쁜 집주인’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며 사실상 사적 제재에 나선 것이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아빠를 공개했던 ‘배드파더스’ 사례를 차용했다. 현재 ‘나쁜 집주인’ 홈페이지에는 숨진 ‘빌라왕’ 김모(43)씨와 공범, 빌라 3493채로 임대사업을 한 ‘빌라의 신’ 권모(51)씨 등 7명의 사진과 주소지, 생년월일 등이 공개돼 있다.

나쁜 임대인 신상을 공개하는 법이 마련돼 향후 합법적인 공개가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 2월 27일 나쁜 임대인 명단을 공개할 수 있는 주택도시기금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세보증금 등을 반환하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채무를 이행한 사실이 있고, 보증금 미반환으로 강제집행·보전 조치 등을 2회 이상 받은 사실이 있는 집주인의 인적 사항을 공개해 추가 피해를 막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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