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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GPS론, 미 인·태 전략과 공동전선 여부 주목…시험대 오른 70년 동맹 [한·미 정상회담 D-4]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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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호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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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통상 국빈 방문, 공식 방문, 실무 방문, 사적 방문 등 네 가지로 구분된다. 여기에 경우에 따라 공식 실무 방문이 추가되기도 한다. 정상들 만남에 내실이 중요하지 격식이 뭐가 중요하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지만 외교에서 격식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른바 ‘의전(儀典)’은 외교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자리매김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24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미 백악관은 1년에 두 차례 정도로 국빈 방문을 제한할 만큼 정상 간 만남에서 의전을 특히 중요시하고 있다. 예포를 쏘느냐 마느냐, 쏘면 몇 발이나 쏘느냐, 만찬 주최자의 격은 어느 수준이냐 등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재차 물을 수 있겠지만 대답은 역시 ‘중요하다’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만사 ‘외통(外通)’이고 만사 ‘의통(儀通)’인 게 엄연한 현실이다.

북 도발에 대한 대응이 최대 현안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1965년 5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한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은 1991년 7월 노태우 전 대통령 때 이뤄졌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맞이한 부시 H W 전 대통령은 한국을 ‘민주 대국’이라 부르며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경의를 표했다. 두 대통령의 국빈 방문 사이에 존재한 26년이란 세월은 어찌 보면 세계 최강인 미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고 기다린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 사이에 아시아 스스로 안보를 챙기라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주문도 있었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인권 외교도 있었지만 한국은 그에 굴하지 않고 전진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뤄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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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특히 ‘격랑의 세계 질서’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어느새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했지만 그중 인구 이외의 부존자원이 사실상 전무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이는 국제안보와 국제경제 측면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변수들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할 경우, 또 그와 관련된 전략을 정교하게 개발하지 못할 경우, 한국의 위상이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다음주 백악관 회동도 최근 급변하는 지구촌 정세 속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만 강경 노선, 북핵 현안과 한반도 정세, 역사 속 기억을 소환하는 독일과 프랑스의 새로운 유럽 주도권 경쟁, 사우디와 브라질로 대표되는 준강대국들의 독자 노선 추구, 여기에 포스트 코로나 질서와 글로벌 공급망의 대대적인 재편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이슈와 사건들 한가운데서 이번 회담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이뤄지는 한·미 정상의 국빈 만남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차원의 맥락이 필요해 보인다. 첫째는 북핵 위협이고, 둘째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상징되는 경제 관계며, 셋째는 글로벌 협력이다. 좀 더 상세하게 풀어보면 첫째는 바이든 정부가 자체 핵 개발을 주장하는 한국 국민을 어떻게 안심시키느냐의 문제고, 둘째는 주요 그룹 총수 등 122개 기업·단체가 포함된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동행하는 가운데 경제적으로 어떤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또 셋째는 윤석열 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GPS)’론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속에서 어떻게 공동전선을 형성하느냐의 문제다.

무엇보다 나날이 수위를 높여가는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이 최대 현안 중 하나다. 북한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지만 단기간에 그렇게 다양한 무기 체계를 개발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속내를 우리 일반 국민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제시하는 ‘확장억제력’이 결국엔 레토릭 차원에 그칠 수 있다는 대중의 우려를 한·미 양국이 어떤 형태로든 헤아려야 하는데 이게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이는 게 현실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한국의 자체 핵무기 보유 필요성에 대한 일반 대중의 찬성은 60%를 넘나들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자포자기를 각오하지 않는 한 한국을 향한 핵 공격은 불가능하고 한반도의 좁은 지형에서는 갈수록 기술이 향상되는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는 설명만으론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현재 북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내부 문제에 직면해 있고, 무력시위는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거나 이와 연동된 국제사회의 ‘관심 끌기’ 전략이란 시각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방미에서 이에 대한 종합적 진단과 함께 어떤 형태로든 우리 국민을 안심시킬 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한·미 간 경제 동맹을 어떻게 순조롭게 안착시키느냐도 만만찮은 과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경제안보’를 중점 전략으로 내세운 상황에서 미국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경제적 이익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그런데 원래 경제안보는 경제적 협력과 공생이 안보 영역의 위협을 제거한다는 선순환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경제 영역’을 생존과 위협의 관점에서 접근한 현 정부의 문제의식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는 평가도 적잖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윤 대통령과 외교안보 핵심 라인이 경제적 현안을 안보 이슈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고 우리의 국익을 확실히 지켜내겠다는 차원에서 경제와 안보를 연결시킨 것으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이런 기조라면 이번 방미를 통해 세계 유일의 안보 동맹국인 미국을 상대로 우리 산업계의 이익을 최대한 지켜내야 하는데,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더욱이 윤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미 국세청은 지난 17일 미국 내 생산 기지를 둔 한국 자동차 기업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과연 미국 정부와 산업계를 상대로 경제 동맹을 어떻게 공고히 하고 경제안보를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지난 12일 시 주석이 중국 광저우에 있는 LG 디스플레이 공장을 깜짝 방문한 데는 윤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에 일종의 ‘메시지’를 던지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일각의 분석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미 양국이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글로벌 협력 분야 또한 어렵고 복잡한 상황이긴 마찬가지다. 미 전문가들이 우리 정부 관료들을 만날 때마다 ‘작명’이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윤석열 정부의 ‘GPS’는 현재 한·미 양국의 거의 모든 현안에 깊숙이 관여돼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한국 버전의 인·태 전략을 발표하며 미국의 인·태 전략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향후 한·중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강대국들의 블록화 현상이 한층 심화되면서 북한 문제를 다루는 게 더욱 어려워지는 건 아닌지 등의 숙제가 남겨진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여기에 한·미·일 3국의 공조 강화를 위해 정부가 제시한 외교 로드맵도 아직 우리 국민의 마음에 와닿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과 4월 한·미 정상회담,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으로 이어지도록 한·미·일 정상 회동 시간표를 짜놓은 우리 정부의 구상이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이를 통해 여론을 최대한 설득할 수 있으려면 이번 국빈 방미에서 좀 더 진전된 결과물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한·중 관계 재설정 여부도 숙제

북한이 지난 13일 고체연료 기반 대륙간탄도미사일‘화성-18형’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이 지난 13일 고체연료 기반 대륙간탄도미사일‘화성-18형’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뉴시스]

장면을 잠시 바꿔보자. 지난 18일(현지시간) 미 싱크탱크들이 운집한 워싱턴DC 펜실베이니아 거리 한가운데 위치한 우드로 윌슨 센터에는 한·미 관계를 연구하는 양국 조야의 전문가들이 오랜만에 한데 모였다. 한·미동맹 70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국제정치학회와 우드로 윌슨 센터가 공동 주최한 한·미 정책포럼에서다. 한국국제정치학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필자가 보기에 한국 국민과 공유할 만한 의미심장한 두 개의 장면이 눈에 띄었다.

첫째는 현재 백악관 내 실력자로 알려진 에드워드 케이건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이 예정된 발언 시간을 훨씬 넘기면서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한·미동맹 관계를 특히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이 이룩한 경제성장과 글로벌 지위를 매우 높게 평가한 뒤 한·미 양국이 함께 나아가야 할 앞으로의 70년에는 첨단산업 분야의 협력이 자리 잡게 될 것이란 점을 반복적으로 설명했다. IRA는 일시적 현안일 뿐 양국의 경제 동맹은 계속 강화될 것임을 강조한 발언으로 읽혔다.

둘째는 이날 포럼은 물론 전날인 지난 17일 허드슨 연구소와의 비공개회의에 참석한 미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과거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속내를 가감 없이 털어놨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들은 만에 하나 대만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지, 미국 편을 들 것인지 중국 편을 들 것인지를 직접적으로 묻기도 했다.

예전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의 입장을 조심스레 물었다면 이젠 한·미가 함께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적극 협조해야 할 때라는 미국적 시각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위상이 격상된 한국을 진정 국제정치의 동반자로 여기게 된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국익을 위해 한국의 국력 신장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지에만 관심이 있는 것인지 좀 더 냉철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이뤄진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은 축하의 자리인 동시에 격랑에 휩싸인 세계질서와 맞물린 매우 어려운 시험대이기도 하다. 우리 속담에 ‘그 사람이 누군지 알려거든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듯이 미국을 보면 한국이 보이고 한국을 보면 미국이 보이는 지금의 한·미동맹 관계를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더욱 공고히 다지기 위해서라도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 국민의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성과를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동맹’이란 명분과 ‘국익’이란 실리를 동시에 챙기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장.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청와대 안보실 자문위원과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국제정치학회장과 최근 발족한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탈냉전사의 인식』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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