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여의도 톺아보기
정상 외교 때마다 출렁였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이번엔 과연 어떻게 바뀔까.
‘순방 외교’는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에 늘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역대 대통령들도 국내 정치적 논란에 지지율이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해외 순방을 통해 정국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곤 했다. 북한의 끊임없는 위협과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 대통령이 ‘국가대표’ 자격으로 미국 등 주요국 정상들과 만나 국익을 챙기는 데 앞장서는 모습은 대통령 지지 여부를 떠나 범국민적 호응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반면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지지율과의 함수관계라는 측면에서 이전 대통령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왔다. 취임 후 지난 1년간 미·일 정상들과의 회동을 전후로 각종 논란과 구설에 휩싸이면서 지지율이 오히려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지난해 9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뉴욕 회동을 비롯해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의 한·미 정상회담, 그리고 지난 3월 한·일 도쿄 정상회담까지 주요 순방 때마다 플러스 효과는커녕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만 초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21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과 만났을 때는 비속어 논란이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쳤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9월 27~29일 조사해 3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24%로 집계됐다. 2주 전 33%였던 지지율이 1주 전 28%에 이어 또다시 4%포인트 낮아지면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주목할 부분은 자신의 정치 성향이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의 긍정 평가가 2주 전 57%에서 49%로 8%포인트 떨어진 것과 함께 자신을 중도로 규정한 응답자의 긍정 평가도 2주 새 27%에서 18%로 9%포인트 급락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중도층과 보수층 민심이 동시에 동요하기 시작하면서 전체 부정 평가도 2주 전 59%에서 65%로 뛰었다. 윤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 중 1위로 ‘외교’가 꼽힌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난해 11월 13일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가 열린 프놈펜에서 한·미 정상이 50분간 마주 앉았을 때도, 회담 결과보다는 회담 외적인 논란이 지지율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11월 셋째 주(15~17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29%였다. 전주(30%)에 비해 1%포인트만 떨어져 겉으로는 선방한 것으로 보였지만 9월 말 최저치 이후 30%로 반등하고 있는 시점에 다시 지지율이 꺾이며 회복세가 주춤하게 됐다는 점에서 여권 내에서도 아쉽다는 목소리가 적잖았다.
이 조사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보수층의 긍정 평가가 55%로 전주와 동일했던 데 비해 중도층의 긍정 평가는 29%에서 20%로 뚝 떨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정치권과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층이 결집한 것과는 달리 중도층의 경우 대통령 동행 기자단 중 일부가 대통령 전용기 탑승 명단에서 배제되고 윤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몇몇 기자와 따로 대화하는 모습 등이 윤석열 정부의 공정 기조와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지난달 16일 한·일 정상회담의 후폭풍도 이에 못지않았다. 지난달 6일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로 촉발된 논란은 정상회담 이후 일본의 비호응까지 겹치면서 갈수록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1일 공개한 3월 다섯 째주 여론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긍정 평가는 30%로 전주보다 4%포인트 떨어진 반면 부정 평가는 2%포인트 오른 60%를 기록했다.
부정 평가 이유 중에서도 ‘외교’와는 별도로 ‘일본 관계/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꼽는 응답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들 2개 항목이 3월 둘째 주부터 다섯 째주까지 4주 연속 부정 평가 이유 1·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특히 3월 넷째 주엔 두 항목을 부정 평가 1순위로 꼽은 응답자가 48%로 절반에 육박해 ‘일본’이 3월 한 달을 뒤흔든 최대 핫이슈였음을 보여줬다.
이제 정치권의 시선은 오는 26일 백악관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 쏠리고 있다. 당장 여권에선 한국 대통령으로는 12년 만의 국빈 방문에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열리는 회담인 만큼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대통령실 주변에서도 한·일 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이번엔 미국 측도 동맹국에 나름의 ‘성의’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지도부 인사는 “한·미동맹 강화라는 상징적 의미의 합의만 나와도 국내 지지율에 긍정적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며 “이번이야말로 순방 외교 후폭풍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반면 회담 성과가 국민적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거나 회담 후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질 경우 오히려 파장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국빈 방문과 미 의회 연설 등 형식적인 대접만 받고 정작 경제적 실리는 챙기지 못하면 자칫 두 차례 만찬 예우에 가시적 호응 조치는 전무했던 한·일 정상회담 사례만 오버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미 기밀문서 누출과 한국 정부 도·감청 논란이란 예기치 않은 돌발 변수에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문제와 대만 이슈라는 민감한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가변성은 한층 더 커진 모양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지난 전당대회를 통해 대통령과 당 지지율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연동시켜 놓은 만큼 윤 대통령 지지율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최근엔 잇단 당내 갈등과 설화에 최대 텃밭인 대구·경북(TK) 지지층마저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 4월 첫째 주 37%였던 TK 지역의 윤 대통령 부정 평가 비율이 둘째 주엔 53%로 한 주 만에 16%포인트나 급증하기도 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을 찾는 등 여권이 보수층 결집에 집중하는 가운데 나온 결과라는 점에서 위기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무난하게 마무리될 것이냐, 아니면 또다시 악재로 작용할 것이냐는 여권은 물론 전체 총선 구도에도 중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곧장 5월부터는 총선 정국에 본격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4월 말~5월 초 지지율 추이에 따라 여야 어느 쪽이 첫 주도권을 쥐고 총선 레이스를 시작하게 될지 가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물론 회담 이후 여론이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에 용산과 여의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신홍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