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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지배자도 기생충에겐 숙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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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호 21면

미래의 자연사

미래의 자연사

미래의 자연사
롭 던 지음
장혜인 옮김
까치

80억 명을 넘어선 인류의 몸무게를 다 더하면 육상 척추동물 전체 무게의 32%를 차지한다. 여기에 가축 무게까지 더하면 90%가 넘는다. 인간 활동이 지구 생태계를 좌지우지해 ‘인류세’라는 지질시대가 열렸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인류도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종 가운데 하나일 뿐이란 시각도 있다. 인류는 그저 단세포 종의 세계에 얹혀사는 다세포 종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어윈(Erwin)의 법칙’이다.

곤충학자 테리 어윈이 1970년대 파나마 열대우림의 나무 한 그루에 살충제를 뿌렸더니, 한 그루에서 떨어진 딱정벌레가 무려 950종이 넘었다. 어윈은 열대 절지동물이 3000만 종이 넘는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의 연구는 우리의 시각이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게 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브라질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벌채되고 불에 탄 모습. 지난해 촬영된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브라질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벌채되고 불에 탄 모습. 지난해 촬영된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생태학자인 지은이가 인류의 과거·현재·미래를 다양한 생물 법칙에 빗대 서술한 이 책(원제 A Natural History of the Future)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을 추적한 생태 연구 보고서와도 같다. 지은이는 먼저 인류 서식지 범위가 과거 수렵채집 시대보다 줄었다고 지적한다. 농사를 지으며 작물 재배 조건에 맞춘 결과다. 인류의 대표적 서식지인 농장에는 작물과 가축이 살고, 작물·가축에는 병원균·기생충 등 기생생물, 기생종(種)이 붙어산다. 도시에서는 집쥐·집비둘기·모기·바퀴벌레가 사람과 공생한다. 집쥐나 집비둘기는 도시의 모양에 따라 그 안에서만 서로 교배한다.

사람 자체도 실은 큰 숙주다. 흰개미가 목재 셀룰로스를 소화하기 위해 장(腸) 미생물에 의존하는 것처럼, 사람도 미생물에 의존한다. 기생종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서로 뒤섞이는데, 남북한이 단절되면서 북한에서는 독특한 기생종으로 진화했을 수도 있단다. 오래전 얼어붙은 바다 위를 건너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간 인류는 기생종의 위협에서도 벗어났는데, 유럽인들이 기생종을 끌고 오는 바람에 남미 원주민들이 대재앙을 맞기도 했다.

종 다양성 법칙은 인류의 농사에도 적용된다. 다양한 생물종으로 구성된 생태계가 가뭄 등 재앙에 잘 견디는 것처럼,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해야 식량 위기를 피할 수 있다.

지은이는 미시시피 강의 대홍수를 겪은 할아버지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스스로 환경을 변화시키는 인류의 능력이 ‘양날의 칼’과 같다고 지적한다. 제방이 터진 것은 자연의 영역에 있던 강을 사람이 억지로 흐름을 바꾸고 통제하려다 실패한 결과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류의 자만심은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상수원을 맑게 지키는 대신 염소 소독으로 수돗물을 생산하려 하지만, 내성을 지닌 비결핵성 마이코박테리움(세균)만 좋아진다. 항생제를 남용하면 대장균 등이 내성을 갖는다. 우리가 가진 무기를 함부로 사용하면 ‘불멸의 적’이 탄생할 수도 있다.

벌이 사라지면 꽃가루받이용 미니 로봇을 도입해 해결하겠다지만 그게 옳은 일일까. 자연을 망가뜨린 다음 고치려 하면 예상하지 못한 재앙이 닥칠 수 있다.

지은이는 기후 위기를 걱정한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르면 2080년 아시아 열대지역이나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는 인류가 살기 어려운 조건이 될 수 있다. 다른 동·식물처럼 그곳 주민도 적당한 ‘서식지’로 이동해야만 한다. 수많은 사람이 ‘환경 난민’이 돼 떠돌 수 있다.

인류도 언젠가 멸망할 수 있단 경고도 잊지 않는다. 인류가 사라지면 가축도 사라지고, 곤충도 멸종하고, 마지막에는 미생물만 남을 수도 있다. 인류는 지구 없이 살 수 없지만, 지구는 인류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1년에 하루라도 지구와 인류의 공존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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