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집권 31년만에 총리사임… 싱가포르 정국 전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광요 대통령 노린 「잠정퇴진」/집권당수에 무임소장관으로 “힘”행사/각료인 장남에 차기 권력세습 의혹도
싱가포르의 리광야오(이광요·67) 총리가 26일 31년간의 장기집권 권좌에서 물러남에 따라 「이 없는 싱가포르」의 정치가 과연 얼마만큼 변화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세계 최장수로 총리직을 맡아온 이총리의 뒤를 이어 대권을 물려받는 인물은 예상했던 대로 고촉동(오작동·49) 제1부총리겸 국방장관.
오신임총리 내정자는 28일 지난 59년 이총리의 초대 총리 취임 장소이기도 한 시청 청사에서 정식 취임식을 갖고 「포스트 이광요시대」를 열게 된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싱가포르 정치에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행사해온 이총리가 총리직에서 사임했다해서 이의 영향력이 쇠퇴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치분석가들은 거의 없다.
총리직을 물러난 후에도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총리직보다 더 권력의 핵심이라 할 만한 집권인민행동당(PAP)의 서기장과 함께 내각의 무임소장관직도 겸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이와 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13년간 이총리의 각료로 일해온 오 신임총리 내정자마저 대권 인수 훨씬전부터 『그의 완전한 정계은퇴는 싱가포르의 손실이다. 나는 그에게 PAP서 기장직에 유임하도록 건의해 왔으며 이는 이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하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을 정도다.
이총리 자신도 『내가 무덤에 묻혀 있더라도 만약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면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 말한바 있어 언제라도 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싱가포르정치에 간여할 뜻이 있음을 분명히 해왔던 것이다.
이와 관련,이총리가 스스로 총리직을 사임한 것은 앞으로 신설될 직선 대통령직을 노린 「2보 전진을 위한 1보후퇴」가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들리고 있다.
싱가포르는 지난 8월 의회 간선이며 명목상의 국가원수에 지나지 않는 기존의 대통령직을 직선으로 선출,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개헌안을 의회에 상정,현재 통과 절차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이 개헌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은 대법원장·대법원판사·검찰총장 등 정부내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임명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행정권에 있어서도 총리에 못지 않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같은 직선대통령제는 이총리가 지난 84년께부터 구상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총리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통령직에 출마할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은 분석가들의 지적이다.
이총리의 진퇴여부와 관련해 또 한가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의 장남 리셴룽(이현룡·38) 상공장관의 정치적 위상문제다.
싱가포르 정계 일각에서는 이총리의 차기구상이 부자세습을 위해 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끈질기게 일고 있는 것이다.
이현용 장관은 이총리 자신의 모교인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나온데다 이미 참모총장·국방장관을 30대 초반에 역임했을 뿐 아니라 오 신임총리 내정자의 이전 직책인 제1부총리 내정설까지 돌고 있어 강력한 차기 후계자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9년 집권이래 31년 6개월여간을 가부장적 통치 스타일을 통해 「싱가포르의 현재」를 일궈 놓은 이광요 총리.
이총리의 통치력이 세계 금융·무역중심지로서의 싱가포르를 축조해온 만큼 향후 싱가포르 정치의 장래는 오총리 내정자의 국정운영 방향과 함께 사임한 이총리의 운신에 의해서도 상당부분 좌우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박영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