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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로 1066세대 경매”…정부, 경매절차 일단 스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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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 전세 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전세 사기 매물의 경매 절차를 중단 또는 연기하라고 18일 지시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전세 사기 피해 관련 경매 일정 중단, 유예 방안을 보고받고 이를 재가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윤 대통령은 지시한 뒤 “민사 절차상의 피해 구제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인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피해 구제 방법이나 지원 정책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찾아가는 지원 서비스 시스템을 잘 구축해 달라”고 원 장관에게 당부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회의 모두발언에서도 전세 사기를 “전형적인 약자 상대 범죄”라며 “이 비극적 사건의 희생자 역시 청년 미래 세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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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그동안 사기 피해 매물의 경매 중단을 촉구해 왔다. 매물이 경매로 넘어가 저가에 낙찰되면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한 푼도 되돌려받지 못하거나 일부 소액만 되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으로 인천 피해자 모임에서만 경매·공매에 넘어간 세대가 1066세대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투자자들의 경매 입찰을 최대한 막아보기 위해 피해 주택 문에 ‘침 바르는 이곳은 우리들의 피와 땀’ ‘너희는 재산증식 우리는 보금자리’ 등의 문구를 붙여놓기도 했다.

윤 대통령 “전세사기, 전형적 약자 상대 범죄…희생자도 청년”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전세사기로 20~30대 피해자 3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부동산의 경매 일정을 중단하는 방안을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전세사기로 20~30대 피해자 3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부동산의 경매 일정을 중단하는 방안을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토부와 금융위원회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보유하고 있는 피해 주택 채권에 대해선 즉각 경매 보류 조치를 한다. 은행이 보유 중인 채권도 경매를 연기하도록 협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은행에 대해선 경매 연기를 이행하게 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문제다. 각 금융사가 법상 보장된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을 정부가 나서서 막을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은행업계와 소통을 강화하는 등 방법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18일 오후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5대 시중은행 주요 임원이 전세사기 피해 예방을 위해 비공개회의를 가진 것도 이런 배경이다. 약 1시간가량 진행된 회의에서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아이디어가 있는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짓지는 못했다. 19일에도 실무진 회의를 별도 소집해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피해자가 거주 중인 전세사기 주택의 선순위 채권자인 은행에 경매 처분을 연기해 달라고 직접 요청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매 처분 연기를 당장 요청한 사실도 없고, 그렇게 할 권한도 없다”면서 “피해자들이 좀 더 실질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은행 등 금융업계가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주택 가운데 국세 회수를 위해 국세청 등이 공매를 신청한 경우에도 1년간 공매 절차를 중단하는 조처를 추진 중이다. 다만 이 경우 경매 입찰만 뒤로 연기되는 것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어디까지를 전세사기로 볼 것인지, 구제 방안은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지 등 세부적인 방안이 정해져야 협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해 어느 정도 재량을 행사할 의사는 있지만, 자체적으로 할 순 없고 전체 업계와 금융당국의 기준이 우선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미래세대를 일곱 번 언급하며, 전세사기(주거)뿐 아니라 국가채무 증가(빚), 고용 세습(일자리), 마약(건강)을 청년의 삶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국가채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전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정부 수립 이후 70년간 쌓인 채무가 약 600조원이었는데 지난 정권에서 무려 400조원이 추가로 늘어났다. 무분별한 현금 살포와 선심성 포퓰리즘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무회의엔 마약류 관리 대책이 안건으로 상정돼 보고됐는데, 윤 대통령은 “가장 충격적인 것은 마약이 미래세대인 청소년에게 널리 유포돼 있다는 사실”이라며 “수사 사법당국과 함께 정부의 총체적 대응이 강력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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