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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봄에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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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성지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성지원 정치부 기자

성지원 정치부 기자

얼마 전 친구가 밝힌 출산 포기 이유가 참신했다. “이런 지구에서 살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단다.

봄바람에 친구 말이 떠올랐다. 중국발 황사에 미세먼지까지 겹치면서 숨이 턱 막히는 봄이다.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올해 들어 세 차례나 국내 대기환경기준(24시간 평균 100㎍/㎥)을 초과했다. 지난 12일에는 일평균 미세먼지 농도 최고치가 대기환경기준을 2.5배 이상 넘어섰다. 이날, 결국 신나게 벗었던 마스크를 다시 썼다.

환경부에 따르면 연간 대기오염도는 해마다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대신 해로운 물질이 압축적으로 떠도는 ‘고농도’ 오염이 늘었다. 지구온난화로 대기 정체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립기상과학원이 지난해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2081년쯤 고농도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대기정체 발생일이 현재보다 최대 58%까지 증가할 거라고 한다. 1995~2014년과 비교해 2081~2100년에 대기 정체가 약 40일 더 발생한다는 얘기다.

전국 일평균 미세먼지 농도 최고치가 대기환경기준을 2.5배 넘게 상승한 지난 12일 서울의 하늘. [뉴시스]

전국 일평균 미세먼지 농도 최고치가 대기환경기준을 2.5배 넘게 상승한 지난 12일 서울의 하늘. [뉴시스]

무려 40일씩이나. 출산을 고민할 만한 숫자다. 싱그런 봄철, 밖에서 뛰어놀고 싶은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문을 걸어 닫느라 아이 있는 집은 한바탕 전쟁이다. 어제는 빨래를, 오늘은 외출을, 내일은 또 뭔가를 모두 포기하고 있다.

한때는 대기질에 진심인 것 같던 정치권은 최근 부쩍 태도가 미지근해졌다. 20대 국회에 설치됐던 미세먼지대책특위는 21대 국회에선 사라졌고, 21대 국회에선 기후위기특위 회의가 딱 두 차례 열렸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막겠다며 무작정 후쿠시마까지 찾아가 ‘빈손 회군’한 야당은 중국발 황사에는 약속한 듯 말을 아끼고 있다.

미세먼지 30% 저감을 공약했던 정부도 주의보 발령 외엔 특단의 대책은 없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문세먼지(문재인+미세먼지)’라는 조어까지 만들며 정부를 탓했던 여당도 잠잠하다. 2019년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은 “이 정권은 북한 때문인지 중국 눈치만 살피면서 미세먼지에 강력한 항의 한 번 못한다”(황교안 대표)고 했지만, 정권을 잡은 후에도 용기를 내거나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어쩌면 이런 봄이 정치권엔 더이상 유난할 이유가 없는 ‘뉴노멀’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60년 뒤 잃어버릴 봄볕·봄바람이 총선이란 불씨가 발등에 떨어진 정치권엔 절절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 막말로 저출산 문제가 해결이 안 되더라도 일단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라고 저는 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첫 회의에서 한 말에 본질이 담겨 있다.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기대가 출산을 결심하는 이유다. 포기하는 게 늘어나는 이 봄엔 썩 와 닿지 않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