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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정보유출 비 온 뒤 정보동맹 더 굳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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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4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정상회담은 윤 대통령의 첫 방미 회담이란 점에서 국내의 기대치가 매우 높다. 그런데 미국 정보 당국의 기밀문건 유출이란 ‘돌발 악재’가 터진 후 정부의 소극적인 대처로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정상회담에 대한 국내 여론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이로 인해 양국 정부의 부담감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언에서도 느껴진다. 김 차장은 15일 정상회담 협의를 위해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공항에서 “양국이 (문건 유출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 신뢰관계를 갖고 더욱 내실 있고 성과 있는 정상회담을 만드는 데 대해 지금 의기투합이 돼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 차장은 또 “추가 상황이 나올 때마다 긴밀하게 소통하기로 확답을 줬다” “미 측이 만날 때마다 유감 표명을 했다” “어떤 경우에도 양국 신뢰를 굳건히 하는 계기로 삼자는 인식이 확고하게 일치한다”고 연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미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안보(북핵 억제 등), 경제안보, 사회문화 등 3대 핵심 의제 외에 포괄적인 사이버 안보협력 강화를 위한 별도의 문서를 채택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앞서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13일 “양국 정부가 보다 믿을 수 있는 정보를 공유·생산·활용하는 데 있어서 신뢰를 재구축할 조치를 담는 포괄적 내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괄적 사이버 안보협력’은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한 정상회담에서 이미 합의된 사안이다. 주 내용은 북한 핵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최근 사용되는 암호화폐 탈취 등 북한의 사이버 공간에서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보 공유 및 차단을 강화하는 것이다. 또 다른 고위 당국자는 “그간 동맹에 포함되지 않았던 우주·사이버를 포함하는 논의를 하고 있다”며 “공동성명 등에 보다 진전된 합의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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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정보 공유 동맹)’ 국가가 전 세계를 상대로 각종 방식으로 획득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번에 유출된 미국의 기밀문건 대부분에는 ‘REL TO USA, FVEY’ 혹은 ‘REL FVEY’ 등 ‘파이브 아이즈와만 공유한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지금이라도 이번 워싱턴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기밀문건 유출 사태는 정공법으로 대처하고, 정상회담은 정상회담대로 성과 도출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밀정보 공유, 양국 사전 신뢰 구축이 우선”

김태효

김태효

북핵 확장억제 강화, 한국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미국 수출 이슈, 한국 원전 수출을 위한 한·미 원자력 협력 등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뤄야 할 사안들이 워낙 국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사안이어서다.

한 전직 외교관은 “도·감청을 의미하는 ‘신호정보(SIGINT·시긴트)’ 표시가 문건에 적시돼 있는 만큼 과거 프랑스나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미 측에 한국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경위 설명 요구 및 재발 방지 요청을 해야 한다”며 “짚을 것은 분명히 짚어야 정상회담 성과를 국민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다 근원적으로 이번 기밀문건 유출 사태를 기회로 한국도 ‘파이브 아이즈’ 수준의 정보 공유를 위해 미 측과 협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뿐 아니라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취득한 정보 중 한국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정보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차장도 이날 한·미 정보 공유를 ‘파이브 아이즈’ 수준으로 올리는 방안에 관해 묻자 “영어를 사용하는 영어권 국가의 정보 동맹이 있고, 우리는 그것보다 어쩌면 더 깊은 한·미 정보 동맹이 있기 때문에 이 정보 동맹을 더 굳건히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은 현재 ‘파이브 아이즈’ 회원 5개국과는 모두 양자 차원에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및 약정을 맺고 있다. 다만 지소미아는 2급 이하의 군사 기밀을 공유할 때 제3국 유출 방지 등 보안을 지키기 위한 내용이 골자며, 사후에 선별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개념에 가깝다. 지소미아만으로는 ‘파이브 아이즈’끼리 공유하는 민감한 정보에 접근하는 게 쉽지 않은 이유다.

이와 관련, 한국이 최근 ‘파이브 아이즈’ 국가 중 하나인 캐나다와 비밀정보공유협정을 추진 중인 것은 좋은 사례다. 양국은 지난 15일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관련 논의의 첫발을 뗐다. 주한 캐나다대사관은 이와 관련해 중앙일보의 질의에 “해당 ‘안보 협정’(security agreement)이 바로 양국 간 ‘정보 공유’를 촉진하기 위한 협력 강화의 사례”라고 답했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중요한 건 공유되는 정보의 퀄리티인데, 기밀정보 공유의 특성상 사전 신뢰 구축 조치 없이 양국 간 문호를 일시에 전면 개방하기는 쉽지 않다”며 “향후 더욱 높은 수준의 정보 공유 체제 가입을 장기 목표로 두고 단계적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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