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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尹정부 해법 '3자 변제'...징용 피해 15명중 10명 신청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8년 3건의 대법원 확정판결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자 15명 중 10명이 제3자 변제를 통한 배상금 수령에 동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제3자 변제의 주체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사장 심규선, 이하 지원재단)은 최근 징용 피해자 2명의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배상금을 신청한 나머지 피해자 8명에 대해선 서류 검토 및 지원재단 이사회 의결을 거쳐 14일 지급이 완료될 예정이다.

외교 소식통은 “지원재단에서 배상금 지급을 위한 필요 서류를 제출한 순서대로 검토해 강제징용 피해자 2명에 대해선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며 “배상금 지급을 신청한 또 다른 피해자 8명의 유족에 대해선 유족 자격 확인 등 서류 검토와 지급 금액 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15명 중 10명 '제3자 변제' 동의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6일 2018년 대법원 판결 미이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공식 발표했다. 중앙포토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6일 2018년 대법원 판결 미이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공식 발표했다. 중앙포토

정부는 지난달 6일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피고 기업(미쓰비시중공업·일본제철)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금을 제3자인 지원재단이 대신 지급하는 내용의 ‘제3자 변제안’을 공식 발표했다. 재원은 한·일 기업 등의 자발적 기부금을 활용한다. 서울대 총동창회와 포스코·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의 기부로 피해자 15명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한 재원은 마련된 상태다.

외교부와 지원재단은 제3자 변제안 발표 이후 지난 한 달간 징용 피해자와 유족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유족들은 “정부가 와서 설명해주는게 처음이라 고맙다”“피고 기업의 배상도 좋지만 청구권협정자금으로 경제개발에 나선 정부와 기업들이 나서야 한다” 등의 의견을 표명했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강제징용 문제 해결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고 (제3자 변제에) 완강한 반대 의사 밝히는 분들도 있다는 점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며 “지금은 (정부와의) 만남을 거부하는 분들 계시지만 진정성있게 요청드리고 설명하는 절차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주,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 등 강제징용 피해자 3명은 법률대리인단과 지원단을 통해 제3자 변제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전달했다. 뉴스1

김성주,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 등 강제징용 피해자 3명은 법률대리인단과 지원단을 통해 제3자 변제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전달했다. 뉴스1

정부의 해법 발표 이후 김성주·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 등 생존 피해자 3명은 일제히 제3자 변제에 반대한다는 뜻을 담은 내용증명을 지원재단에 전달했다. 피해자 사망 후 배상금과 관련한 재산권을 승계받은 유족 중에선 2명이 제3자 변제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 역시 내용증명 형태로 일본 피고 기업이 아닌 지원재단이 지급하는 배상금은 수령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한 상태다.

지원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금은 1인당 2억~2억8000만원 규모다. 대법원은 일본 피고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1인당 1억원 안팎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는데, 이후 일본 측이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는 동안 지연이자가 불어났다.  

대표지급·분산지급 방식도 다양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배상금 지급을 신청한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해 관련 서류를 검토한 이후 배상금을 지급한다. 최근 2명의 피해자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했고, 또 다른 8명의 유족에 대해서도 배상금 지급을 위한 서류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배상금 지급을 신청한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해 관련 서류를 검토한 이후 배상금을 지급한다. 최근 2명의 피해자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했고, 또 다른 8명의 유족에 대해서도 배상금 지급을 위한 서류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상금 지급과 관련 생존 피해자는 제3자 변제에 동의할 경우 배상금 전액을 본인이 수령한다. 문제는 피해자 사망 후 유족이 재산권을 승계받은 경우다. 정부는 제3자 변제안 공식 발표 이후 피해자 1명의 유족이 다수인 경우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할지 고심해 왔다.

지난 한 달간 유족들을 면담한 결과 배상금 지급과 관련한 요구사항이 다양한 점을 감안해 지원재단은 ▶유족 대표 1인에게 지급 ▶유족 모두에게 배상금을 분산 지급 ▶법률대리인단에게 지급 중 유족이 원하는 방식으로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월 강제징용 유족들과의 집단 면담을 통해 의견을 청취했다. 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월 강제징용 유족들과의 집단 면담을 통해 의견을 청취했다. 연합뉴스

우선 유족 간 논의를 통해 대표를 정한 경우 한 명에게 배상금을 일괄 지급하고, 유족이 여러 명인 경우 원하는 방식에 맞춰 배상금을 각각 지급한다. 유족 4명이 배상금 2억원을 동일하게 나눠 지급받길 원하는 경우 1인당 5000만원씩 지급하는 식이다. 이외에 변호사 보수와 인지대·송달료 등 그간 소송에 들어간 비용을 제외하고 수령하길 원하는 유족의 경우 우선 법률대리인단에게 배상금이 지급된다.

정부 소식통은 “지난달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한 이후 많은 유족 분들이 배상금 지급을 요청했고, 현재 실지급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관련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며 “배상금 지급 원칙과 방법, 과정 등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는 한편 피해자 및 유족과의 소통도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징용 피해자, 추가 소송 가능성은

정부는 15명의 강제징용 피해자 이외에 현재 소송이 계류중인 피해자 역시 대법원 판결을 통해 최종 승소할 경우 동일한 방식으로 제3자 변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6일 제3자 변제안 발표 브리핑에서 “현재 계류 중인 강제징용 관련 여타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 동 판결금 및 지연이자 역시 원고분들께 지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중 9건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1·2심에 계류중인 소송 역시 6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계류중인 소송이 모두 원고(징용 피해자) 승소로 이어질 경우 약 100여명이 제3자 변제를 통한 배상금 지급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제3자 변제의 주체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사장 심규선)은 한·일 기업 등의 자발적 기부로 약 40억원의 재원을 마련한 상태다. 2018년 대법원 판결로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자 15명에게 1인당 2억~2억8000만원을 지급할 경우 사실상 재원이 바닥난다. 재원 마련을 위한 자발적 기부의 주축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수혜 기업 역시 이미 40억원을 기여한 포스코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현재 계류중인 소송 이외에 새롭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피해자들은 없을 전망이다. 손해배상 청구의 경우 피해자가 손해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을 기준으로 3년이 지나면 시효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소멸시효란 권리자가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일정기간 계속된 경우 그 권리의 소멸을 인정하는 제도다.

실제 지난 2월 1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부장 이기선)는 2019년 일본 기업 니시마쓰건설을 상대로 고(故) 김모씨의 유족 5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앞서 대법원이 하급심 판단을 뒤집고 신일본제철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며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한 2012년 5월을 소멸시효 기산 시점으로 본 것이다.

다른 하급심에선 소멸시효 기산 시점을 2018년 10월로 보고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2018년 10월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라고 판단한 시점이다. 그러나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이를 기준으로 해도 현재 5년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실익이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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