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에 헬기 못떠 발만 동동…"비 와야 끝나는 산불, 대책 필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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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강원도 강릉시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으로 확산하면서 이륙하지 못했던 소방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강원도 강릉시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으로 확산하면서 이륙하지 못했던 소방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릉 민가를 덮친 산불이 해안가로 번지던 11일 오후 2시 40분, 산림청 산불진화 헬기 4대가 드디어 이륙했다. 강풍으로 아침부터 땅에 묶여있던 헬기는 산불이 시작된 지 6시간 만에 주불을 잡으러 출동할 수 있었다. 순간 풍속은 초당 22m로 대형·초대형 헬기가 뜰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10분 평균 풍속이 초당 11.9m로 낮아지면서 헬기가 뜰 수 있게 된 것이다.

3시 30분경,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헬기 4대가 복귀했다. 헬기 진화에 이어 1시간 가량 집중적으로 내린 비에 주불이 잦아들었다. 4시 30분,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주불 진화를 선언했다. 산림청 공중진화 대원들은 주차장에서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헬기 기장 "강풍에 속수무책…비 안 왔으면 큰 일날 뻔"

11일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확산되는 가운데 저동 일대 투입된 군인들이 비가 내리자 철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확산되는 가운데 저동 일대 투입된 군인들이 비가 내리자 철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출동한 최근홍 산림항공본부 강릉 헬기 기장은 "아침부터 눈앞에서 불이 번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어 안타까웠다"며 "바람도 강했지만, 돌풍이 불어 위험했다"고 했다. 그는 "산불 신고 접수된 뒤 불이 다 번질 때까지 헬기가 땅에 묶여 있던 건 처음"이라며 "비가 오지 않았다면 고성 산불 때처럼 끔찍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헬기 기장들은 전국에서 산불이 발생한 지난 주에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큰일이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산불에 특화된 산림청 헬기는 48대 뿐인데, 지난 2일 하루 전국 34곳에서 산불이 났다. 2~3일 사이에 발생한 '3단계 대응' 수준의 대형 산불(홍성·금산·영주·함평·순천)을 동시에 대응한 것도 산림청 역사상 처음이었다. 소방과 군에서도 헬기를 지원했지만 한번에 수천 리터를 실을 수 있는 산림청 헬기와는 달랐다.

"재난 현장 실시간 기상 관측 중요"

강원지방기상청이 사용 중인 관측 차량. 2012년부터 연구용으로 쓰던 차량으로, 올해 말 강원지방기상청도 전문적으로 제작된 관측 차량을 쓸 수 있게 된다. 정은혜 기자

강원지방기상청이 사용 중인 관측 차량. 2012년부터 연구용으로 쓰던 차량으로, 올해 말 강원지방기상청도 전문적으로 제작된 관측 차량을 쓸 수 있게 된다. 정은혜 기자

서재철 녹색연합 연구위원은 "인간이 대응 가능한 수준을 뛰어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게 기후변화의 특징"이라며 "강릉 산불, 지난주 전국 산불이 대표적인 사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난 지역의 실시간 관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기상관측시스템(AWS)는 기상청·산림청 등에서만 사용하지만, 지역자치단체에서도 활용하고 산불 초기 단계부터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기상청은 전국에 637개의 AWS를 보유하고 있어 전국 상황을 파악할 수 있지만, 기상 전문가가 아닌 민간인도 쓸 수 있는 AWS의 보급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산림청장 "헬기 못 떠도 전국 산불 진화 가능 시스템 구축해야"

전문가들은 민가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강릉 산불 피해 현장을 답사한 김성용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원은 "펜션 등 민가에 불에 잘 타는 샌드위치 패널로 된 가건물이 많았는데, 그것도 민가 피해를 키운 요인"이라며 "건축법은 산림청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산불 대비 차원에서 기상청 외에도 전 부처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1월~4월 11일 산불 발생 건수는 297건이다. 같은 기간 올해 산불 발생 건수는 443건으로 49% 증가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기후변화 시대에 국토 60%가 산림인 우리나라의 산불은 안보 문제"라며 "기상 상황이나 야간 등 헬기가 작전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산림청 소속 지상 대응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이들이 전국 산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진화 차량용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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