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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까지 덮친 '초속 30m' 산불…폭격 맞은듯 마을 사라졌다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치 폭격 맞은 듯 모두 불타 

11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안현동 한 펜션 마을. 2층 성 모양으로 된 펜션이 모두 불에 타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강한 바람이 불자 지붕 위에 있던 철판이 그대로 떨어져 나가 주차된 자동차를 덮쳤다. 내부 집기류는 흔적도 없이 모두 불에 탄 상황이었다. 50m가량 떨어진 목조 펜션은 아예 지붕이 주저앉았다. 펜션 뒤쪽 한옥도 모두 불에 타 마을 전체가 마치 폭격을 맞은 듯했다.

현장에서 만난 최호영(75)씨는 “아침에 산불 났다는 말을 듣고 맨몸으로 대피했다가 다시 집에 와보니 집이 다 탄 상태였다”며 “40년 넘게 살아온 한옥인데 추억이 담긴 사진 한장도 못 건졌다”고 했다. 옆에 있던 최씨의 부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곳 마을에서 700m 떨어진 강릉시 저동또 다른펜션촌도 산불을 피해 가지 못했다. 김영삼(52)씨 펜션 역시 이번 산불에 전소했다. 김씨는 “오전 8시30분쯤 근처 리조트 인근에서 연기가 보여 설마 여기까지 올까 싶었는데 9시쯤 집 근처까지 불길이 번졌다”며 “위험한 상황이라 곧바로 가족만 데리고 대피했다. 펜션 3채가 타고 주택도 1채가 타는 등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11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안현동의 한 펜션 마을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불에 탄 모습. 박진호 기자

11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안현동의 한 펜션 마을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불에 탄 모습. 박진호 기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초속 30m 강풍에 불 순식간에 번져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해안가 방향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이번 강풍은 순간 최대풍속 초속 30m에 달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현재 산불은 경포해변 쪽으로 번져 경포호수를 지나 백사장까지 뒤덮어 시야를 가리고 있다. 불은 경포해변 중앙통로 인근 소나무 숲까지 번져 그을음을 내뿜고 있다.

산림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산불은 발생 지점에서 2㎞가량 떨어진 해안가로 번진 데 이어 북쪽으로 확산하고 있다. 산림당국은 축구장 면적(0.714㏊) 144배에 이르는 103㏊의 산림이 불에 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설 피해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강원도는 주택 28채, 펜션 12채가 전소 또는 부분 소실됐다고 밝혔다. 또 기타 1채와 호텔 4동도 피해를 보는 등 총 40채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11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안현동의 한 펜션 마을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불에 탄 모습. 박진호 기자

11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안현동의 한 펜션 마을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불에 탄 모습. 박진호 기자

주민과 관광객 1000여명 긴급 대피 

경포동과 산대월리와 산포리 일대에는 주민 대피령이 내려진 가운데 현재까지 대피 인원은 아이스아레나에 131가구 278명, 사천중학교 16가구 25명 등 총 147가구 303명이다. 인근 리조트와 호텔 등에 투숙했던 708명도 산불이 확산하자 긴급 대피한 것으로 파악됐다.

강원교육청에 따르면 이날 산불에 사천중학교는 단축 수업을 했다. 이어 경포대초등학교 학생들은 화재 발생지와 거리가 먼 초당초교로 에듀버스를 이용해 대피한 뒤 귀가했다.

산림청은 이날 오전 10시 30분을 기해 대응 수위를 ‘산불 3단계’로 한 단계 올렸다. 산림 당국은 소방 당국과 함께 진화 장비 107대와 진화대원 1410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중이다. 산림청은 대형헬기 2대를 띄웠으나 공중에서 느낀 순간풍속이 초속 60m에 달해 현장 진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헬기를 모두 철수시킨 상황이다.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주택 인근으로 번지자 주민들이 화재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주택 인근으로 번지자 주민들이 화재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안현동의 한 펜션 마을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불에 탄 모습. 박진호 기자

11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안현동의 한 펜션 마을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불에 탄 모습. 박진호 기자

'산불 3단계' 강원도지사가 산불 진화 지휘 

산불 3단계가 발령되면 진화 지휘권이 도지사에게 이양된다. 현장에서 지휘에 나선 김진태 강원지사는 “강풍으로 인해 헬기가 뜰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해 총력 대응하고, 민가 소실 피해를 최소화하라”며 “진화 과정에서 대원과 주민 등 인명사고가 없도록 완벽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소방청도 최고 대응 수위인 소방 대응 3단계, 전국 소방동원령 2호를 발령했다. 올해 들어 산불로 소방 대응 3단계가 발령된 것은 처음이다. 이와 함께 강원경찰청도 강릉경찰서 전 직원을 비상소집하고 기동대를 투입하는 등 400여 명을 투입해 안전 확보에 나선 한편 7번 국도 즈무구름다리∼경포 방향 5㎞ 구간 교통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한편 강릉시는 이번 산불이 이날 오전 8시 22분쯤 소나무가 부러지는 과정에서 전깃줄을 건드려 불씨가 산불로 번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1일 오전 8시30분쯤 강릉시 난곡동 4번지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확산하고 있다. [사진 강원도산불방지센터]

11일 오전 8시30분쯤 강릉시 난곡동 4번지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확산하고 있다. [사진 강원도산불방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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