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황에 ‘세수 펑크’ 위기…유류세·종부세 다시 올리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올해 국세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가 이달 말 종료를 앞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정상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0일 서울 시내 한 셀프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올해 국세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가 이달 말 종료를 앞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정상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0일 서울 시내 한 셀프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올해 거둬들일 세금이 처음으로 400조원을 돌파할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국세 수입(세수) 실적이 정부 기대에 한참 못 미쳐서다. ‘세수 펑크’ 위기에 직면하면서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감세정책과 건전재정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 축소와 단계적 폐지,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을 검토하고 나섰다.

10일 기획재정부 재정정보 공개시스템(열린재정)에 따르면 정부가 예상한 올해 국세 수입은 400조5000억원이다. 부동산·반도체 호황으로 세금이 유례없이 넘치게 들어왔던 지난해보다 세수 전망을 오히려 높여 잡았다. 정부가 예측한 올해 세수 증가율은 지난해 결산(395조9000억원) 대비로는 1.2%, 본예산(343조4000억원) 대비로는 16.6%에 이른다. 세목별로는 올해 소득세 131조9000억원, 법인세 105조원, 부가가치세 83조2000억원이 각각 걷힐 것으로 전망했다. ‘역대급’이었던 지난해 수준을 뛰어넘는 액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해 8월 이 같은 세입 전망이 나오자 전문가들 사이에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고금리·고물가 여파로 경기가 빠르게 위축되기 시작한 상황에서 연간 13조원에 이르는 감세정책 영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우려였다. 이런 지적에도 당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경상성장률을 기준으로 평균적인 (세수) 증가 수준을 담았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2%대 실질 경제성장에, 3%대 물가상승 영향까지 더하면 지난해(추가경정예산 기준) 대비 1%대 세입 증가율은 무난히 달성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정부 예측은 빗나갔다. 10일 기재부에 따르면 1~2월 국세수입 진도율은 13.5%다. 최근 5년 평균 진도율(16.9%)보다 3.4%포인트 낮다. 진도율은 연간 목표 세수 대비 징수 실적으로 올해 400조5000억원의 국세 수입 목표를 2개월간 13.5% 달성했다는 뜻이다. 매달 똑같은 액수의 세금이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이 추세가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연말 진도율은 81%에 불과하다. 3월부터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세금이 들어온다고 해도 올해 예산안 반영 세수보다 20조원 이상 부족하다.

기재부 ‘국세 수입 현황’ 통계를 보면 올 1~2월 국세 수입은 1년 전과 견줘 22.5% 급감했다. 소득세(-19.7%), 법인세(-17.1%), 부가세(-30%) 등 주요 세목 모두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올 2월까지 국세 수입은 54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조7000억원 줄었다. 3월에 신고가 이뤄져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은 법인세가 희망이었지만, 지난해 4분기부터 부진한 기업 실적에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정부 기대와 달리 올 하반기 경기가 반등하지 않으면 400조원 세수 달성은 물 건너간다.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는 기업 실적과 얼어붙은 수출·내수 경기 탓에 2020년 이후 처음으로 세수가 전년 대비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연중 구멍 난 세수는 보통 한국은행 일시차입금, 재정증권 발행 등 ‘급전’을 당겨 막는다. 또는 줄어든 세입에 맞춰 올해 지출 예산을 줄여서 다시 짜는(세입경정) 방안도 있다. 세수가 모자란 만큼 나랏빚을 늘릴 수도 있다.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온 감세정책과 더불어 건전재정 기조도 위태롭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해부터 2026년까지 5년 동안 국세 수입이 연평균 7.6% 늘어난다는 가정 아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50%대 중반 이내로 관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올해 고꾸라진 세입 증가율이 내년 이후 크게 반등하지 않는 한 지켜내기 어려운 목표다.

기재부는 세수 감소 속도를 늦추기 위한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올해로 3년째를 맞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단계적으로 축소·폐기하고, 종합부동산세 공정가액비율을 현행 60%에서 80%로 환원하는 내용 등이다. 기재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신중한 입장을 냈지만 이들 조치를 실행한다고 해도 세수 부족분을 다 메우긴 쉽지 않다.

전체 세수에서 종부세와 유류세(교통·환경·에너지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합쳐 4% 남짓(올해 본예산 기준)에 불과하다. 3대 세목인 소득세·법인세·부가세 수입이 회복세를 타야 ‘세수 펑크’를 막을 수 있는데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올해 GDP 성장률 예측치가 1%대로 내려앉은 데다 자산시장과 기업 실적, 내수 경기 모두 빠르게 얼어붙고 있어서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대대적인 감세정책 축소, 증세 전환 같은 ‘경기 역행적’ 수단은 현 경제 상황 때문에 정부가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신 김 교수는 “결국 재정 건전성을 생각한다면 이중 지출이 없는지, 누수가 없는지를 점검하는 등 지출의 효율성 높이는 방향으로 좀 더 강력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