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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60+ 대학 만들자…강의 중 농담도 언제 할지 시나리오 짜야” [김동원 고려대 새 총장 인터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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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4호 16면

김동원 고려대 신임 총장

지난달 30일 만난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강한 고대’를 만들기 위해 재정이 강한 고대, 인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강한 고대를 내걸었다. 박상문 기자

지난달 30일 만난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강한 고대’를 만들기 위해 재정이 강한 고대, 인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강한 고대를 내걸었다. 박상문 기자

2020년 1월 북한산 백운대. 유학생 가스파로프(27·미국)가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있었다. 지난해 4월에는 또 다른 유학생 카밀라(30·호주)를 백운대에서 만났다. 유학생과 백운대. 그 외에도 이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고려대학교에서 각각 미술학·응용언어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 지난 2월 28일 취임한 김동원 고려대 총장을 만난 뒤 이들을 떠올린 건, 김 총장의 글로벌 전략 의지 때문이다. 그는 “끈끈하고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강한 고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세종캠퍼스에도 바이오벨트, 시너지 기대

취임 한 달여인 지난달 30일 김 총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된 고려대 본관 앞 중앙광장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앗, 우리 교수님이다.” 경영학과 제자가 지나가자 김 총장은 가볍게 손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 손 너머, 그의 어깨에는 무거운 짐이 누르고 있었다. 그는 “서울 주요 사립대라고 위기가 비껴가지는 않는다”라며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은 모두 ‘현실’에 있다”고 꼬집었다.

대학과 현실의 문제는 뭔가.
“올린공대·벱슨칼리지 등 혁신을 주도한 대학의 사례를 들여다봤다. 대학이 현실에서 멀어질수록 침체는 가속화됐다. 상아탑에 갇혀 고담준론과 지적인 유희를 추구하면 현실과, 사회와 동떨어진다.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이 15년째 묶여있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제를 제기해도 국민이 동조할까. ‘1000원의 아침’에는 정부가 5600만원, 우리 학교가 4억원을 부담한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왜 정부 지원금을 쓰냐고 한다. 안타깝지만 대학이 사회와 멀어진 단면이다. 우리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사회에서 필요한 대학의 역할은 뭔지 고민해야 한다. 대학 자신의 논리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현실에 가까워지는 방법은.
“기업과 사회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전문인을 키워야 한다. 나아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미래사회에 대한 공헌, 그게 우리 학교의 역할이다.”

김 총장은 ‘고려대’보다 ‘우리 학교’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그는 1982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에서 노사관계학 박사학위를 받고 뉴욕주립대 경영대 교수를 역임했다. 1997년부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경영대학장·경영전문대학원장 등을 맡았다.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회장,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취임사에서 ‘강한 고대’를 선언했다.
“강한 고대는 크게 두 가지다. 위기를 이겨낼 재정이 강한 고대가 하나고, 앞서 말한 인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강한 고대다. 재정이 강한 고대를 위해 생애주기별 교육, 비대면 교육, 글로벌 캠퍼스 등 세 가지를 강화, 확대하면서 내실을 다질 것이다. 그러면 수익은 따라오게 돼 있다.”
‘글로벌 고대’가 교육 플랫폼이다. 유학생을 많이 받는 것도 글로벌 전략인데.
“우리 학교 국제대학에 외국인 전용 학부를 만들고 있다. 이미 교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외국학생들도 사실 한국 사람들과 섞여서 공부하고 싶다. 외국인 전용 학부는 외국 학생들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1년 혹은 2년 과정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국제하계대학(ISC)과 국제동계대학(IWC)도 글로벌 전략의 일환이다. 우리 학교의 큰 장점은 해외 네트워크가 탄탄하고 끈끈하다는 거다. 전 세계, 알래스카든, 뉴질랜드든 교우회가 가장 잘돼 있다. 외국 유학생도 우리 교우다.”

실제 바이오의공학부에 다니는 나시리(22·이란)와 응용언어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카밀라는 “귀국해서 고려대 교우를 만나면 가족처럼 반가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의 국적은 코로나19 ‘악재’ 속에서도 30여 개국에서 70여 개국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고려대는 해외 99개 국가의 1000개 이상의 대학 및 기관과 교류를 맺고 있다. ISC와 IWC에서는 세계 석학을 초빙해 영어강의를 하는데, 방학 때마다 전 세계 300여 개 대학에서 2600여 명의 학생이 학점을 취득한다. 하지만 김 총장은 해외 캠퍼스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해외 대학의 브랜치(분교)도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우리 학교 우수 강사진이 나가서 강의하기도 어렵다. 양적인 확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우리 학교로 오도록 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다”라고 밝혔다. 김 총장은 또 다른 ‘선택과 집중’을 추진한다. 메타버스 온라인 교육과 챗GPT 활용이다.

메타버스 온라인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앞으로 1~2년 이내에 실행될 것으로 보인다. 기술적으로는 완성이 된 상태다. 교육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미세한 조정과 융합이 남아있다. 교수와 학습자 간 활발한 소통이 기대된다.”
챗GPT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우리나라 대학 최초의 가이드라인일 것이다. 기술 발전은 막을 수 없다. 과거 계산기를 못 쓰게 했는데도 계속 쓰게 되지 않았나. 챗GPT도 그렇다. 통제가 아닌 활용에 중점을 두자는 생각이다. 챗GPT를 이용해 더 좋은 논문과 프로젝트를 만들자는 게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다. 구글 번역기든, 챗GPT든 본인의 실력과 수준이 좋으면 우수한 결과물이 나오게 돼 있다. 챗GPT에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한다.”

등록금 월 65만원인데 유치원은 100만원

나시리는 고국 이란에서 경영학을 배우다 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에서 2학기째를 보내고 있다. 그는 “고려대 바이오 분야가 강해서 지원했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서울캠퍼스에 이어 세종캠퍼스에도 바이오벨트를 구축할 계획이다.

세종캠퍼스에 치과대학·수의과대학·의학연구소를 설립한다고 했는데.
“세종 신도시는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세종캠퍼스도 서울캠퍼스와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지역균형 정책에 따라 정원을 늘릴 수 없는 서울캠퍼스와 달리 세종캠퍼스는 운신 폭이 넓다. 인가받기가 수월하다. 치과대학·수의과대학·의학연구소는 세종에 있는 과학기술대·약학대와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인터뷰 말미, 김 총장이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우리 학교 1년 등록금이 평균 얼마인지 알아요?” 그러면서 그는 “800만원. 월 65만인데, 유치원은 100만원, 특목고 200만원, 재수학원 200만원이다. 교육의 질에 비해 대학 등록금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다시 ‘대학의 위기’로 화제가 넘어갔다. 김 총장이 인터뷰 내내 언급한 계획과 전략, 가이드라인 등은 이 ‘위기’를 넘기 위한 고려대의 기회다.

인터뷰 뒤, 고려대 본관 앞 중앙광장의 학생들이 늘었다. 김 총장이 말하는 ‘우리 학교’ 고려대의 ‘중짜데이(만우절에 중앙광장에서 짜장면 먹는 날)’가 앞당겨 펼쳐진 날이었다.

창업·기술이전 등 수익구조 다변화…“강의도 시나리오 짜듯 연구해야”

2월 20일 고려대에서 열린 오리엔테이션에서 손하트를 만드는 외국인 유학생들. [뉴스1]

2월 20일 고려대에서 열린 오리엔테이션에서 손하트를 만드는 외국인 유학생들. [뉴스1]

김동원 고려대학교 총장은 경영학과 교수다. 대학 위기 속 그는 2027년 2월까지 4년간 고려대 ‘경영’을 맡게 됐다.

위기는 얽히고설켰다. 우리나라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은 2021년 기준 53.5%. 미국 대학의 두 배 가까이 된다. 그런데 올해 고3 학생 수는 39만8271명으로 지난해 43만1118명보다 7.6%(3만2847명) 떨어졌다. 2019년 50만1616명에서 4년 만에 약 21% 급감한 것. 학령인구 수 추락은 등록금 감소로 이어졌다. 그마저 15년째 동결이다. 이런 위기 속에 김 총장은 ‘강한 고대’의 기조 아래 ‘재정이 강한 고대’를 내세웠다. 세부 지침은 수익구조 다변화다.

“40+ 대학, 60+ 대학을 만들겠다.” 김 총장은 4차 산업혁명의 물결로 지식 반감기가 극도로 짧아지면서 5~10년마다 직업을 바꿔야 할 상황이라고 전했다. 20대에 배운 학부 지식으로는 급변하는 사회의 요구에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세운 게 ‘생애주기별 교육’이다. 40대, 60대 등 연령대에 맞는 특화된 교육이다. 김 총장은 “야간 MBA, 특수대학원 등의 역할이 커졌다”며 “강의도 드라마 시나리오 짜듯, 언제 농담을 건넬지도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생애주기별 교육은 ‘비대면 교육 강화’로 이어진다. 곧 시범 운영할 메타버스 온라인 교육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 서비스다. 메타버스 교육 플랫폼을 이용해 30대 이상에게 사례와 문제 해결 위주의 생애주기별 교육에 나선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질 좋고 실용성 높은 교육 프로그램은 자동적으로 대학 수익을 창출한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또 “글로벌 캠퍼스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국제대학 내 외국인 전용 학부 신설안은 이미 교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외국인 전용 학부는 외국 학생들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1년 혹은 2년 과정을 지원한다. 그 뒤 한국 학생과 섞여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한다. 외국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와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대학 재정도 탄탄해진다는 것이다.

고려대는 또 창업과 기술이전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고려대는 한 해 1000여 건의 국내 특허와 400건 이상의 해외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 김 총장은 “앞으로 출원될 국내 특허에 대해서는 시장 맞춤형 설계를 진행하고 이전이 가능한 기술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교원창업기업에 대한 지원도 늘린다. 자본시장에 상장되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커진 기업의 가치만큼 수익을 공유할 수 있게 기술이전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렇게 해서 확보된 수익을 다시 기술사업화에 재투자해 기술혁신의 선순환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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