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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의 밀리터리 차이나] 수십 년 공들인 친중화… 전쟁없이 오커스 무력화한다(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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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上)편 내용과 이어집니다

미국이 오커스 파트너십을 통해 호주에 제공하려는 핵잠수함 기술은 엄밀히 따지면 핵확산방지조약(NPT : Non-Proliferation Treaty) 위반이다. NPT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 그리고 핵무기 보유국이 비핵국가에 핵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약으로, 미국과 호주 모두 가입해 있다. 오커스 파트너십에 가입한 미국·영국 모두 원자력 잠수함용 핵연료로 90% 이상의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호주에 제공하는 것은 명백한 NPT 위반이다. 이 때문에 오커스 출범 당시 중국은 이를 맹렬히 비난하며 호주가 핵 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당시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은 G20 정상 회의 연설에서 “인위적으로 소그룹을 만들거나 이념으로 선을 긋는 것은 간격을 만들고 장애를 늘릴 뿐이며 과학기술 혁신에 백해무익하다"며 오커스를 비판했고 얼마 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에서 중국 측 대표단은 오커스 문제를 IAEA에서 다뤄야 한다며 국제사회가 의견 합치를 보기 전까지는 오커스 파트너십 가동을 유보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그만큼 중국은 오커스에 대해 큰 우려와 공포를 가지고 있었지만, 2022년 5월 호주 정부가 ‘친중’으로 바뀌면서 모든 고민이 해소됐다. 노동당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호주 국기. [사진 istockphoto]

중국과 호주 국기. [사진 istockphoto]

지난 3월 13일, 앨버니지 총리는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 해군기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오커스 정상회담을 갖고 원자력 잠수함 도입을 앞당길 것이라며 오커스 사업 구상을 발표했다. 당시 발표에서 호주는 3680억 호주달러, 한화 약 322조원의 예산을 들여 최대 13척의 공격원잠을 확보할 것이며 핵잠수함 조기 전력화를 위해 미국에서 최대 5척의 버지니아급을 도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발표 내용만 놓고 보면 호주가 지금 당장에라도 핵잠수함을 도입해 중국을 위협할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호주 정부가 발표한 총사업비 3680억 달러는 2024년부터 2060년까지 36년간 투입되는 총예산이다. 호주는 2030년대 초반까지 버지니아급 공격원잠 3척을 직도입하고, 2척을 옵션 물량으로 행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호주가 구매한다는 버지니아급 블록 V 버전은 1척에 미화 35억 달러이며, 5척을 구매할 경우 전체 비용은 최대 175억 달러, 한화 약 23조 원이다.

322조 원 가운데 최대 23조 원이 버지니아급 직도입 비용이고 나머지 299조 원은 36년간 호주 독자 모델의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해 최대 8척을 순차적으로 건조하는 비용이다. 이 호주 독자 모델 잠수함은 아무리 빨라도 2042년에 1번함이 진수될 예정이다. 앞으로 19년 뒤의 일이다.

호주는 미국에서 버지니아급을 구매하고 영국과 차세대 공격원잠을 공동 개발하는 형태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노동당 정부는 이 과정에 교묘한 장치를 넣어 잠수함 전력화 시기를 크게 늦추는 데 성공했다. 현재 아스튜트급(Astute class) 공격원잠을 배치 중인 영국이 2030년대 후반까지 차세대 공격원잠을 개발하면 이 공격원잠에 미국이 개발하는 차세대 공격원잠용 전투체계를 통합하는 과정을 또 한 번 거쳐 호주 독자 모델의 잠수함을 개발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호주 퍼스. 아스튜트급(Astute class) 잠수함. [사진 British High Commission Australia]

호주 퍼스. 아스튜트급(Astute class) 잠수함. [사진 British High Commission Australia]

호주는 강성노조의 천국이다. 외국산 군함을 호주에서 건조하면 성능과 신뢰성은 추락하는데 비용과 납기는 몇 배로 부풀려지는 것이 호주 조선 산업의 현주소다. 호주 해군의 차세대 호위함인 ‘헌터급(Hunter class)’은 원형인 영국 26형 호위함이 1척당 10억 파운드, 한화 약 1조 6천억 원인 것과 비교해 가격이 2배 이상 폭등했다. 현재 1척당 3조 5천억 원가량을 예상하는데, 일부 보고서에서는 척당 4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호주 강성 노조는 해외 기술도입 형태로 개발한 콜린스급(Collins class) 잠수함도 동급 잠수함의 2배 가격을 주고 납기도 10년 늦춘 바 있으며, 1척에 6000억 원으로 구매할 예정이었던 스페인 원형의 이지스 구축함도 당초 계획된 예산의 4배가 넘는 2조 5000억 원의 가격에 납품한 바 있다.

이 문제를 지적했던 데이비드 존스턴(David Johnston) 전 국방장관은 “그들이 잠수함은 고사하고 카누를 만든다고 해도 안 믿는다”며 강성노조를 비난했다가 노조와 노동당의 집중포화를 맞고 정계에서 쫓겨났다. 노조가 정치권에 압력을 가해 과도한 국산화를 요구해 왔고 노조 중심의 방만 경영으로 납기 지연·비용 폭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호주 안보와 국익에 막대한 해를 끼치는 강성 노조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쓴 호주국가감사국(Australian National Audit Office) 담당자들 역시 자리에서 쫓겨나야 했다.

미국과 영국의 현용 공격원잠은 1척에 3~5조 원 정도의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 호주는 무려 299조 원을 들여 최대 8척의 공격원잠을 획득하겠다고 밝혔다. 1척에 37조 원꼴로 동급 미·영 공격원잠의 7~8배에 달하는 가격이며 호주가 최대 5척을 직도입하겠다고 밝힌 버지니아급 5척 직도입 비용의 1.6배가 넘는 가격이다. 호주의 국방예산은 GDP 대비 2% 미만이며 올해 기준 487억 호주달러, 한화 약 42조 6500억 원 수준으로 우리나라에 크게 못 미치는 규모다.

호주가 당장 내년 예산부터 오커스 잠수함 사업비를 편성해 사업을 추진할 경우 호주는 오커스 잠수함 예산으로만 매년 8조 3천억 원을 지출해야 한다. 잠수함 단일 항목에만 매년 호주 국방비의 20% 가까운 예산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조 바이든(무대 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리시 수낙(무대 오른쪽) 영국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무대 왼쪽) 호주 총리가 13일 샌디에이고에서 회담 후 공동회견하고 있다. 뒤에 버지니아급 핵 잠수함이 보인다. [로이터=뉴스1]

조 바이든(무대 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리시 수낙(무대 오른쪽) 영국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무대 왼쪽) 호주 총리가 13일 샌디에이고에서 회담 후 공동회견하고 있다. 뒤에 버지니아급 핵 잠수함이 보인다. [로이터=뉴스1]

미국에 약속한 버지니아급 잠수함 최대 5척 구매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미국에서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가 가능한 조선소는 2개뿐이다. 지난 3월 13일 오커스 정상회담 직후 제너럴 다이내믹스 일렉트릭 보트 측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32년까지 미 해군 물량으로만 17척의 버지니아급 공격원잠 인도 계약이 걸려 있고, 여기에 차세대 전략원잠인 컬럼비아급(Columbia class) 사업과 노후 잠수함 정비 계약이 추가돼 2개 조선소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도 연평균 최대 2.24척의 잠수함 건조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 공급용 잠수함 물량을 충당하려면 미 해군 납품용 물량을 빼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노후화가 심각한 미 해군 LA급 대체 잠수함 공급 일정이 늦춰져 미 해군 전력 운용에 치명적인 공백이 생기게 된다.

당연히 미 국방부와 해군은 미 해군 물량을 양보할 생각이 없다. 애초에 오커스 구상은 미국의 공격원잠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는데, 미 해군 공격원잠을 호주에 양보하면 미국의 잠수함 부족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가 오커스 정상회담 직후 발표한 2024회계연도 예산안에 무려 6척의 버지니아급 블록 V 일괄 발주 예산이 들어 있던 것도 호주에 잠수함 물량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미 국방부의 속내를 말해준다.

다시 말해 앨버지니 총리가 203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버지니아급 최대 5척을 직도입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미국의 조선 인프라 현실을 감안했을 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사진 The Sydney Morning Herald]

[사진 The Sydney Morning Herald]

이런 상황을 무려 18개월 동안 오커스 시행 방안을 연구했던 호주 정부가 몰랐을까?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조기 도입이 불가능한 잠수함을 조기 도입하겠다고 밝혀 국민들에게 반중 정책을 펴는 것과 같은 착시 효과를 보여주고, 잠수함 조기 도입 구상을 보여주며 ‘본 사업’ 착수는 20년 후로 미뤄 버린 앨버니지 내각의 이번 오커스 구상 발표는 그야말로 중국과 친중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미·중 패권 경쟁 구도하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제안된 ‘오커스 잠수함’은 적어도 미·중 패권 경쟁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등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중국을 위한 ‘확인사살’까지 해 주었다. 그는 3월 20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의 공격원잠을 획득하는 대가로 대만 유사시 등 중국과의 분쟁에서 미국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면서 “그런 것은 당연하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호주가 미국의 핵잠수함을 도입한다고 해서 그런 의무가 생긴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니다”라고 밝히며 호주가 만에 하나 핵잠수함을 도입하게 되더라도 중국을 겨냥해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호주 보도전문채널 스카이뉴스는 “말레스 부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올해 초부터 중국 방문을 희망해 온 앨버니지 총리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면서 “노동당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달 초 돈 파렐 통상장관의 발언처럼 호주와 중국 관계는 해빙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친중화 공작에 오염된 정치인들이 호주를 전통적인 미·영의 동맹 진영에서 빼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지난 수십 년간 호주를 상대로 진행해 온 친중화 공작에는 뇌물과 각종 행사 비용으로 기껏해야 수억 달러 정도의 자금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 공작의 결과로 중국은 수백억 달러 규모의 핵잠수함 함대를 추가로 건설해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됐고, 미·중 패권 경쟁에서도 미국을 더욱 강하게 압박할 수 있게 됐다.

일찍이 손자는 “백 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은 최선책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 중의 최선이다(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고 했다. 지금 중국은 싸우지 않고도 최대 13척의 핵잠수함을 물리친 것과 같은 효과를 보고 있다.

중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지저분한 공작’에 대해 비난하기 전에 그에 대한 대응책을 찾고, ‘실리’를 생각해 그들의 이러한 전략을 보고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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