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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도, 유지 관리도 총체적 부실"…중대시민재해 1호 가능성 커진 정자교 붕괴

중앙일보

입력

올해 40세가 된 여성 미용사의 목숨을 앗아가고 20대 남성에게 흉추(가슴 부위에 해당하는 척추) 골절 등 중상을 입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 붕괴 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상 중대시민재해로 다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해당조항이 적용되면 첫 사례다.

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 난간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소방 대원 등 관계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이 사고로 교각 가드레일과 이정표 등이 산책로로 쏟아져 30대 여성 1명이 숨지고 30대 남성 1명은 중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뉴시스

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 난간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소방 대원 등 관계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이 사고로 교각 가드레일과 이정표 등이 산책로로 쏟아져 30대 여성 1명이 숨지고 30대 남성 1명은 중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뉴시스

경기남부경찰청에 꾸려진 수사전담팀은 분당구청 교량관리팀 공무원 2명, 안전점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조사했다고 6일 밝혔다. 경찰은 사고 발생 당일인 지난 5일부터 중처법상 중대시민재해를 적용할지에 대한 법률 검토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1월27일 시행된 중처법은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 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불특정 시민이 피해자가 됐을 경우’를 ‘중대시민재해’라고 정의한다. 사망자가 1명 이상이거나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등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데 정자교 사고처럼 사망자가 1명이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은 여기서 경영책임자에 해당하고 정자교는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하는 게 명확하다.

문제는 책임을 질만한 의무 위반 행위가 지방자치단체장 등에게 있느냐다. 중처법은 처벌 요건으로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위반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 확보에 필요한 계획을 마련하지 않았거나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지 않아 계획을 따를 수 없었거나, 타 기관 등에 의해 보수 또는 시정 필요성이 제기됐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이 입증돼야 한다.

연장 108m의 정자교는 1993년 3년 6월 준공된 30년 된 교량이다. 그간 적잖은 결함들이 발견되기도 했었다. 2012년 5월28일 정기안전점검에서 교량 교대(양 끝에 설치돼 다리 상부구조를 떠받치는 구조물)와 교각에 균열이 발견됐다. 보강공사를 거친 정자교는 지난해 11월 정기안전점검에선 ‘양호’, 지난 2021년 5월 정밀안전점검에선 C등급(광범위한 결함이 있지만 시설안전에는 지장이 없음)을 받았다. 마지막 보수는 2020년 진행한 내진 성능 보강공사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서류상에 드러나지 않은 더 심각한 관리부실을 의심하고 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공학박사)는 “무너진 단면을 보면 철근이 콘크리트에 꼭 물려 있어야 하는데도 삐쭉삐쭉 나와있다. 설계부터 시공, 감리, 유지관리 과정 전반에 총체적 부실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 등의 관리 소홀이 입증되고 그것이 사고 발생으로 연결됐다는 인과관계까지 확인되면 지방자치단체장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전망이다.

법무법인 세종의 중대재해센터 현장대응팀장인 강정석 변호사는 “사고 원인이 되는 ‘결함’에는 도로를 설계하거나 설치할 때 뿐만 아니라 관리 과정에서 발생한 결함도 포함하기 때문에 관리 주체인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라며 “이 경우 안전 관리 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운용해 왔는지가 재판의 최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관구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중대재해대응팀 대표변호사도 “교량을 관리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정확히 따져 봐야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관리에 관여하고 보고를 받았다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신상진 성남시장이 6일 오전 교량 긴급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는 탄천변 수내교, 불정교, 금곡교를 차례로 방문했다. 신 시장은 ″여러 교량들을 동시에 안전진단 해 위험 요소를 최대한 신속하게 파악하고 즉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성남시

신상진 성남시장이 6일 오전 교량 긴급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는 탄천변 수내교, 불정교, 금곡교를 차례로 방문했다. 신 시장은 ″여러 교량들을 동시에 안전진단 해 위험 요소를 최대한 신속하게 파악하고 즉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성남시

불명확한 법률이 걸림돌

이번 사건에 중처법 적용된다면 중대산업재해 수사 때와 마찬가지로 중처법 규정을 둘러싼 위헌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 특히 중처법상 지자체장의 의무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한 게 문제다.

김희진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연구위원은 “중앙행정기관, 지자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 조치를 해야 한다는 중처법이 정한 의무 규정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며 “지난해 서울시는 불명확한 규정으로 인한 혼란을 이유로 정부에 중처법의 모호한 부분을 구체화해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고 했다.

홍명호 법무법인 도원 대표변호사는 “중대시민재해는 사례가 많지 않지만, 최근 하급심 판례가 나오기 시작한 중대산업재해의 경우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사업주가 자신이 뭘 잘못해서 처벌을 받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중처법이 죄형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는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2018년 7월30일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야탑10교 교량 인도부 침하 발생 사고 현장. 은수미 전 성남시장은 당시 현장을 찾아 ″염려하는 시민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하라″고 공무원들에게 당부했다. 성남시

2018년 7월30일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야탑10교 교량 인도부 침하 발생 사고 현장. 은수미 전 성남시장은 당시 현장을 찾아 ″염려하는 시민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하라″고 공무원들에게 당부했다. 성남시

“2018년 7월 야탑10교 균열이 경고”

한편 5년 전(2018년 7월30일) 발생한 야탑 10교 균열 사고가 다시 환기되고 있다. 정자교 붕괴 사고와 유사한 점이 많아서다. 이때도 원인은 상수배관 파열이었다. 배관 파열의 원인이 폭염이라는 점만 달랐다. 더위에 아스콘과 콘크리트가 팽창하면서 상수배관을 압박해 생긴 일이라고 진단됐다. 당시 은수미 전 성남시장은 “성남시 전체 150개 교량 중에서 야탑10교와 유사한 교량에 대해 안전진단을 확대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수사 방향에 따라 불똥이 은수미 전 성남시장에게도 튈 수 있다. ‘사고 발생을 예측할 수 있었느냐’‘알았다면 막을 수 있었느냐’ 등을 따져 과실이 드러난다면 중처법 위반이 아니더라도 업무상과실치사상의 책임을 묻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자교 붕괴 사고 이후 성남시는 1993~1994년 준공돼 노후·균열 신고가 접수된 탄천변 수내교와 불정교, 금곡교에 대한 통행을 제한하고 긴급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성남시 내 교량 211개소 모두에 대한 안전 점검을 철저히 해 위험 요소를 최대한 신속하게 파악하고 즉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안양 평촌·고양 일산·군포 산본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지자체들도 일부 노후 교량 통행을 통제하는 등 긴급 점검을 벌이고 있다.

성남시 분당구 탄천 교량 현황. 붕괴된 정자교를 비롯해 총 17개 차도교가 있으며, 황새울보도교 등 3곳은 보도교로 대부분 1993~1994년 준공된 교량이다.

성남시 분당구 탄천 교량 현황. 붕괴된 정자교를 비롯해 총 17개 차도교가 있으며, 황새울보도교 등 3곳은 보도교로 대부분 1993~1994년 준공된 교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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