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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국민 1000만원 대출"…총선앞 또 '포퓰리즘 끝판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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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출금리 부담완화 입법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출금리 부담완화 입법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국회의원 총선거를 1년 앞두고 벌써 정치권에서 ‘퍼주기’ 정책과 입법이 쏟아지고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전국민 1000만원 대출’ 등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고, 여당인 국민의힘도 2분기 전기ㆍ가스요금 인상에 사실상 제동을 걸고 있다. 지난해 국가 채무가 1000조원을 돌파한데다 불경기에 세수는 급감하는 등 나라 살림은 악화하는데,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이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기본 대출’ 제도를 추진하고 나섰다. 전국민에 최대 1000만원을 최대 20년간 저금리로 빌려주고,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에 대해선 정부가 보증을 서겠다는 거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도 “포퓰리즘 끝판왕”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하지만 최근 금리 인상 여파로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자 여론을 등에 업고 재추진하려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지난 4일 민주당 기본사회위원회의 첫 토론회에 참석해 “금융은 국민들의 주권으로부터 온 국가 정책의 소산이기 때문에 그 혜택은 모든 사람이 일정 부분을 함께 누릴 필요가 있다”며 “그런데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돈을 빌릴 기회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조차 50만 원 빌려주면서 15.9%의 고리 이자를 부과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서라도 금융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취지다.

민주당은 청년층 등 일부 계층이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해주면 전체 가계부채(지난해 9월말 1870조6000억원) 규모도 줄어들 거라고 보고 있다. 민주당 기본사회위원회 정책단장인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가난한 사람에게 고금리로 대출을 해주면 상환을 하지 못해 가계부채가 더 늘어난다”며 “이자를 낮춰서 상환을 유도하면 결국 부채가 줄고 경제가 안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성인 인구수가 4000만명이라면 대출원금만 400조인데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않다. 정치적인 입장을 고려해 정책을 펼치는 것 같다”고 짚었다. 안 교수는 이어 “정부가 보증을 섰는데 디폴트가 발생하면 그 손해를 메우느라 재정이 투입될 것”이라며 “취약차주를 대상으로 한 정책 상품을 더 다양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별개로 민주당은 ‘은행 부당이득 환수법’ 등도 추진하고 있다. 민병덕 의원은 5일 국회에서 열린 ‘대출금리 부담완화 입법 간담회’에서 은행이 최근 5년 이내 예금보험료와 지급준비금 등 법적 비용을 대출 이자에 포함시켜 거둔 부당 이득을 대출자에게 되돌려 주도록 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민 의원은 금리 인상기에 ‘이자 장사’로 수익을 낸 은행에게 일종의 ‘횡재세’를 거두는 법안(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발의했다. 기준금리가 연 1%포인트 이상 상승하는 금리 급상승기에 한해 은행 이자 순수익이 직전 5년 평균 120%를 초과하면 초과금의 10%를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하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이미 예대마진 공시 등을 통해 은행 간 경쟁을 유도하고 있는데 금융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금리에 늘어난 대출 수요가 금리 인상기를 거치면서 은행의 이자 이익이 커진 건데, 이를 환수한다면 은행의 수익성이 나빠졌을 때 거꾸로 보전해줘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표(票)심 살피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최근 당ㆍ정 협의에서 2분기 전기ㆍ가스요금 인상 방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정을 미룬 게 대표적이다.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가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지만, 높은 물가 수준과 서민 부담, 국제 에너지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2분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당분간 1분기 요금이 그대로 적용되고, 요금 조정안이 발표돼도 소급 적용은 안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논의가 지연되는 동안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는 계속 쌓인다는 얘기다. 국민의힘은 야당 시절 문재인 정부의 늑장 인상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고도 같은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국회 앞에서 열린 '대통령 거부권 반대 및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국회 앞에서 열린 '대통령 거부권 반대 및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최근 정치권이 앞다퉈 발의한 법안 중에는 수십조원 규모의 재정 지원을 못박는 내용이 적잖다. 미래 세대에 수십조원의 ‘세금 청구서’를 날리고 있는 셈이다. 여야 대치 국면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이끈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그중 하나다. 개정안은 정부가 쌀 과잉 생산량을 사들이도록 의무화하는 취지다.

문제는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사준다면 농민은 쌀 재배를 줄일 이유가 없어지고, 구조적인 쌀 초과 공급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매해 쌀을 사들이는 데만 1조원 이상을 써야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 청년농 등 기존에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다른 농업 분야에 투자하기 어려워진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지역에 인프라를 구축하는 법안은 여야가 의외로(?) 합심해 추진한다. 지난달 국민의힘이 주도한 ‘대구ㆍ경북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여야 합의에 따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쌍둥이 법안’이라고 불리는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의 통과 가능성도 크다. 정부는 대구ㆍ경북 신공항은 12조8000억원, 광주 군공항 이전에는 6조7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방 공항의 이용 수요 부족으로 적자를 낼 경우 추가적인 세금 투입이 불가피하다.

정치권은 기초연금을 현행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고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기초연금 증액은 민주당의 중점 법안이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기도 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기초연금을 10만원 인상하면 2030년에는 52조원, 2040년에는 102조원(현행 약 40조원)이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대로 미래 세대를 위해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법안은 외면하고 있다. 정부의 지난해 결산에 따르면 작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는 -5.4%를 기록했다. 앞서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3% 안으로 관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재정준칙의 법제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재정준칙이 담긴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여타 법안에 밀려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선거를 앞두고 확대 재정에 대한 정치권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며 “재정준칙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국회의 재정 팽창주의를 견제하는 기능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미래 세대의 조세 부담과도 직결된다”며 “정치권이 예산권을 쥐고 흔드는 최근 상황에는 준칙 도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연구원 등 주요 재계 단체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나 ‘청년수당’ 등을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형태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꼽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 쟁의 행위에 대해 민사상 책임을 면해주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도 선거를 의식한 입법 추진 사례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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