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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딸 디올 휘감을때…北주민엔 "풀뿌리 연명 투쟁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풀뿌리를 씹어 먹어도 혁명만 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3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당 선전·선동분야 담당 간부들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확성기'가 되라"며 주문한 말이다. 본격적인 춘궁기(春窮期)를 앞두고 식량난을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는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향해 김정은 정권 체제 유지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24일 "남포시의 일꾼들과 근로자들이 밭의 관개체계를 완비하기 위한 투쟁을 강력히 전개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북한 내 식량난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온 나라가 떨쳐냐 농업생산에서 근본적 변혁을 일으키자!"는 팻말도 보인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24일 "남포시의 일꾼들과 근로자들이 밭의 관개체계를 완비하기 위한 투쟁을 강력히 전개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북한 내 식량난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온 나라가 떨쳐냐 농업생산에서 근본적 변혁을 일으키자!"는 팻말도 보인다. 노동신문. 뉴스1.

"확성기 역할 다하자" 

이날 노동신문은 1면에 '당중앙의 크나큰 믿음대로 당 선전일군(간부)들은 출력 높은 확성기, 잡음 없는 증폭기의 역할을 다하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자기 수령의 사상과 권위를 옹위하기 위함이라면 목숨도 기꺼이 바치는 열혈의 충신, 풀뿌리를 씹어 먹어도 혁명만 할 수 있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투철한 혁명가가 바로 우리 당이 바라는 참된 선전일군"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무리 조건과 환경이 어렵고 간고하여도 당의 사상과 노선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당 정책 관철을 제일 생명으로 간직한 인민은 그 어떤 방대한 과업도 능히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풀뿌리를 씹어먹는다", "어렵고 간고한 조건과 환경" 등은 최근 가중되는 북한의 식량난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대목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7일 "북한 내 아사자 발생으로 인해 체제가 위협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양곡 정책, 유통 과정, 코로나19로 인해 연간 80만t 정도의 쌀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국회에 보고했다.

3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면에 '당중앙의 크나큰 믿음대로 당 선전일군(간부)들은 출력 높은 확성기, 잡음 없는 증폭기의 역할을 다하자'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노동신문. 뉴스1.

3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면에 '당중앙의 크나큰 믿음대로 당 선전일군(간부)들은 출력 높은 확성기, 잡음 없는 증폭기의 역할을 다하자'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노동신문. 뉴스1.

식량난 때마다 "견디라" 

실제로 북한 당국의 선전·선동은 '배고픈 시기'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북한은 지난 2월 말 당 전원회의에서 '올해 알곡 생산량을 반드시 완수하라'는 지침을 내린 뒤 지난달 5일 노동신문을 통해 "대중의 정신력만 발동되면 만사가 다 풀린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특히 이번 달에는 김일성 주석의 생일(태양절·4월 1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군 기념일(4월 25일) 등 주요 기념일이 예정돼 있어 내부 결속이 더욱 절실할 수 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최근 북·중 국경을 통해서 농자재, 식량 등을 소규모로 들이기 위한 준비 작업이 이뤄진다는 첩보가 있지만, 당장 춘궁기를 앞두고 식량난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며 "장마당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가운데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는 식의 해묵은 선전·선동으로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북한 수뇌부의 의식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은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에 최고지도자의 여동생인 김여정을 앉혀 대남·대미 스피커 뿐 아니라 내부 결속과 체제 유지를 위한 핵심 역할을 하도록 했다. 김 부부장은 2019년 말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에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옮겼다가, 2021년 3월 다시 선전선동부로 복귀한 것으로 담화 등을 통해 확인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광명성절을 기념해서 진행한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 사이의 체육경기를 딸 김주애와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함께 관람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광명성절을 기념해서 진행한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 사이의 체육경기를 딸 김주애와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함께 관람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장기화한 경제 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속에 식량난을 획기적으로 타개할 방법이 없다 보니 간부들을 다그치거나 주민 결속만 강화하는 행태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김 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는 처음으로 언급했던 1990년대의 '고난의 행군' 구호와 관련해서도 인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이 있다. 국가 배급제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주석의 항일 활동 정신을 끌어와 내부 기강 잡기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 소식통은 "1997년 남측으로 귀순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비공개 강연 등에서 '식량난과 관련해 소비를 줄이라고 인민을 다그칠 게 아니라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하면 늘 묵살당했고, 그러다 보니 수뇌부도 주민 선전·선동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곤 했다"며 "정신력으로 식량난을 버틸 수 있다고 강요하는 행태는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하다"고 전했다.

지난달 김정은 국방위원장 딸 김주애가 미사일 발사 참관 당시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디올 외투가 쇼핑몰에서 1900달러에 팔리고 있다. 사진 디올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김정은 국방위원장 딸 김주애가 미사일 발사 참관 당시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디올 외투가 쇼핑몰에서 1900달러에 팔리고 있다. 사진 디올 홈페이지 캡처.

호화 치장에 "밸 난다" 

주민들에게 고통 감내를 강요하는 가운데 김 위원장 딸 김주애를 비롯해 김 씨 일가가 해외 명품 의류 등을 걸치고 공개 석상에 나타나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일각에선 북한 주민들의 민심 이반을 부추기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난달 17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을 아버지 김 위원장과 함께 참관한 김주애는 약 240만원에 달하는 명품 '디올' 제품의 옷을 입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약 1500만원짜리 스위스 명품 브랜드의 시계를 차고 공식 석상에 등장했고, 부인 이설주 여사는 샤넬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2월 "지금 주민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얼굴에 광대뼈만 남고 말이 아닌데, (김주애가) 잘 먹고 잘사는 귀족의 얼굴에다 화려한 옷차림이 텔레비전으로 자주 방영되니 밸이(화가) 나서 참기 힘들다"는 평안북도 한 주민 소식통의 전언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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