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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안보실장 전격 교체…외교 전열 재정비 전력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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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미 정상회담 목전에 느닷없는 사퇴…의문 증폭

신속하게 조직 가다듬어 대통령 순방 만전 기해야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를 총괄해 온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9일 전격 사퇴했다.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외교·안보 사령탑이 물러나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앞서 윤 대통령의 방일 엿새 전인 10일 김일범 의전비서관이 물러난 데 이어 27일엔 이문희 외교비서관도 교체됐다. 대통령의 핵심 외교 이벤트 와중에 외교·안보라인 수장과 참모진이 줄이어 사퇴한 건 전례를 찾기도 어렵다. 김 실장은 자진사퇴 의사를 표명하고 윤 대통령이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사실상 경질로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안보 환경이 엄중한 마당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실장 등의 경질 이유는 일단 윤 대통령 방미 조율 과정에서 불거진 혼선 때문으로 전해졌다. 미국 측이 가수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의 합동 공연을 제안했지만 윤 대통령에게 제때 전달되지 않았고, 워싱턴에 답신도 늦어 무산 위기를 겪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심각한 소통 부재요 기강 해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문제일 뿐 진짜 이유는 김 실장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과 사사건건 충돌하는 등 안보실 지휘 라인의 불협화음 때문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실장 경질의 진짜 원인이 뭐든 나라의 안위를 책임진 국가안보실이 한·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인사 파동으로 업무에 차질을 빚는다면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실은 김 실장 교체를 외교·안보 라인의 잡음 해소와 기강 회복의 계기로 삼아 윤 대통령의 외교 일정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김 실장 사퇴를 놓고 억측이 난무하는 만큼 그 경위를 투명하게 설명하고, 인사 난맥을 막을 근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앞으로 한 달 반이 우리 외교엔 중대한 시간이다. 다음 달 26일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5월 19~21일엔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  회의와 한·미·일 정상회담이 추진된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북한은  전술핵 탄두 사진을 공개하고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며 위협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또 미·중 갈등이 날로 격화하면서 양국은 서로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발 금융 불안까지 겹쳐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이럴 때 우리의 외교·안보 라인이 흔들린다면 나라의 안위와 경제가 위기에 처할 우려가 크다.

그나마 정부가 김 실장 사퇴 당일 조태용 주미대사를 후임에 기용하고 주미대사엔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을 임명해 업무 공백을 막은 것은 평가할 만하다. 둘 다 대미·북핵 외교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인 만큼 신속히 조직을 정비해 윤 대통령의 방미·방일에 한 치의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