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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펀드 성적표 초라하다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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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효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안효성 증권부 기자

안효성 증권부 기자

올 초 자본시장을 달궜던 행동주의 펀드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았던 BYC, KISCO홀딩스, KT&G 등의 주주총회는 사측의 일방적 승리로 마무리됐다. 앞으로도 태광산업·남양유업 등의 주총이 남아있지만, 행동주의 펀드의 승산은 높지 않다.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데다, 의결권 자문사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제안이 속출하는 등 주주의 표심을 제대로 모으지 못한 결과이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를 막아낸 사측은 방어 논리가 먹혀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달 31일 주총이 열리는 남양유업이 지난 14일 행동주의 펀드인 차파트너스 자산운용의 공세에 맞서 낸 의견표명서의 문구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주주제안자(차파트너스)는 당사의 현재 경영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는 눈앞에 단기적 이익에만 치중하는듯하다. 많은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가가 오르자마자 팔고 떠나는 일명 ‘먹튀’ 행보를 보여 자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28일 대전시 KT&G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KT&G 정기 주주총회. [연합뉴스]

28일 대전시 KT&G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KT&G 정기 주주총회. [연합뉴스]

그런데 행동주의의 공세를 단기 차익을 노린 ‘먹튀’ 자본의 공세로 치부하기엔 한국의 지배구조가 더 후진적인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는 대표적인 주주환원책인 자사주 매입은 유독 한국에서는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주주의 권익을 살필 의무가 없는 이사회는 회사 대주주, 경영진과 한배에 탄 채 견제 의무를 망각한 경우도 많다. 별다른 투자계획도 없고 주주환원에 대한 생각이 없어 돈만 쌓아둬 자본 효율성에서 낙제점을 받은 기업도 수두룩하다.

소수 지분으로 회사를 흔든다는 주장에도 함정이 숨어있다. 지분이 많든 적든 주주는 배당확대와 사외이사 선임 등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 KT&G를 상대로 행동주의를 한 이상현 플래쉬라이트캐피탈 대표가 “주식은 주인에 대한 증표이다. 사측 입장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가 아니라 주주의 목소리를 듣는 건데 행동주의를 주어로 여론을 호도한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다.

공세에 나선 행동주의 펀드의 지분율은 5%를 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주주를 설득해 우군을 확보하지 못하면 행동주의의 공세는 성공할 수 없다. 방만한 경영, 후진적 지배구조, 대주주의 사익을 위한 내부거래, 인색한 주주환원 등을 해 온 기업들이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되는 이유다. 평소 시장과 꾸준히 소통하고 주주환원과 신규 투자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잘 맞춰온 기업이라면 1% 안 되는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에 흔들릴 일이 없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에 “못 살겠다”고만 할 게 아니라 기업 스스로 그동안 ‘상장의 무게감’을 얼마나 느껴왔는지 돌아봐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