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일 주요 유통 대기업 홍보 담당자들은 진땀깨나 뺐다. 세계 1위 부호이자 ‘명품 대통령’으로 불리는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총괄회장의 방한 때문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가 직접 출동해 아르노 회장을 안내했다. ‘특급 의전’을 펼쳤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일부 기업은 “제목에서 우리 사장 이름은 빼달라” 읍소하거나 “오너 일가 인사가 아르노 회장이 오기 1시간 전부터 현장에 나와 있었던 건 맞지만 직접 동선을 체크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며 부인하느라 바빴다. 아마 ‘폼이 안 나서’ 였으리라.
어쨌든 명품 대통령은 떠났고 특급 의전 성적표는 신규 매장 유치 여부로 돌아올 전망이다. 신규 매장은 고물가·고금리에도 명품은 줄 서서라도 사는 소비자들에겐 기쁜 소식이다.
그럼에도 뒷맛이 씁쓸한 건 유통 대기업 수장들이 명품 대통령 앞에서 작아지는 근본적 이유 때문이다. 주요 백화점은 매출의 30% 가까이 명품에 의존하고 있다. 명품 비중이 매출의 40%에 육박하는 백화점도 있다. 2017년엔 주요 백화점 명품 매출 비중이 15%였는데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그러니 아르노 회장이 다른 일정을 이유로 10여 분만 머무르다 떠나도 웃고, 50분간 매장 10여 곳 벽 소재까지 챙기는 ‘점검’을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명품 없는 백화점은 성공할 수 없나 의문이 생긴다.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없이 MZ세대를 겨냥한 공간 등이 호응을 얻어 1조원 가까운 연 매출을 낸 모 백화점도 명품 브랜드 입점에 열을 올린다. 1인당 명품 소비액(325달러·약 42만원)이 세계 최대(지난해 기준)인 한국이니 어쩔 수 없는 걸까.
유통 기업 수장이 ‘영업을 뛰는’ 것 자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도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지 않나. 진정 아쉬운 건 매출을 주도적으로 일으키기보다 일부 명품 브랜드에 의존하는 구조다. 명품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매장을 빼기라도 하면 직격탄을 맞는다. 기업들은 신생 브랜드면서 명품 못지않은 품질을 갖춘 ‘신명품’도 발굴하지만 역시 대다수가 해외 수입 브랜드라 주도권을 뺏길 여지가 있다.
한때 업계에선 한 국내 온라인 패션 스토어가 지난해 연간 거래액 3조원을 돌파, 백화점 업계 1등을 추월한 게 화제였다. ‘백(百)화점을 넘은 만(萬)화점’ 정도로 7000여 개 다양한 브랜드를 전문적으로 소개한 게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한국 유통 대기업도 될성부른 브랜드에 유통 판로를 더 열어 명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K 명품으로 키웠으면 한다. 그래야 K 유통이 당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