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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내 탓? 과거 파지말라" 분석 멈추라는 정신과 전문의 조언

중앙일보

입력

전미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달 발간한 책『당신은 생각보다 강하다』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생각의 고리를 끊으라"고 조언했다. 김현동 기자

전미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달 발간한 책『당신은 생각보다 강하다』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생각의 고리를 끊으라"고 조언했다. 김현동 기자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 중엔 자신의 과거나 상처를 끊임없이 곱씹고, 마음이 힘든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내게 이런 상처가 있구나', '타인 때문에 내 삶이 이렇구나' 같은 분석 만으론 나아지는 게 없습니다. 생각의 스위치를 끄고 지금 잘 사는 방법을 찾는 데에 에너지를 모아야 해요. 현재를 잘 살면 과거는 무력해집니다."

정신과 전문의 전미경(48)의 메시지는 최근 수년간 유행한 자기 분석, 위로, 공감 등을 키워드로 한 서적들과는 결이 달랐다. 그는 이달 발간한 책 『당신은 생각보다 강하다』에서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자책·후회·자기연민 같은 나쁜 심리 습관부터 끊으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숨겨진 자신의 심리적 역량과 주도력을 발견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북돋는다. 자신도 환자들처럼 우울하고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다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책을 썼다는 그를 지난 23일 만났다.

스스로에 대한 분석이나 생각을 멈춰야 하는 이유가 뭐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모릅니다. 문제가 생겨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도 모르죠. MBTI 성격유형 검사나 내면 아이(유아기의 경험이 성인이 된 뒤에도 남아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상담학 개념) 같은 콘셉트가 유행하는 이유입니다. 과거의 일이나 자신의 성격 때문에 현재가 이런 것이라고 분석하고는 무릎을 탁 치는 거예요. 근데 거기서 끝이에요. 삶이 나아지는 건 별로 없어요."
왜 자책·후회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끊기 어려울까요.
"문제의 원인을 과거, 자기 자신, 남에게 돌리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죠. 힘든 상황을 해결하기보다 내면만 계속 들여다보게 하죠."

그는 과거에 천착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나 내면 아이 등의 이론이 현재 사회에선 한계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무의식 속 기억을 찾아 심리 문제를 치유한다는 개념이다. 그는 "프로이트는 교육·인권 수준이 낮고 정신과 약물도 없던 시대를 살았다"며 "개인의 노력으로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없으니 과거를 파는 방식이 통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문제를 해결할 힘은 내면이 강한 이들에게 있지 않을까요.
"물론 감당하기 힘든 일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분들에겐 전문적인 트라우마 치료와 따듯한 공감이 먼저 필요합니다. 하지만 내면이 약한 정도라 해도 상황을 바꿀 힘이 있습니다. 심지어 우울증, 공황장애를 앓더라도요. 힘든 성장 배경을 거쳤지만, 현실에서 구르고 뛰면서 좋아지는 사례를 저는 많이 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도 있지만, 외상 후 성장으로 나아가는 분들도 많아요."
전씨는 "지금 그대로의 삶이 괜찮다"는 위로보다 주도적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전씨는 "지금 그대로의 삶이 괜찮다"는 위로보다 주도적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전씨는 경제력이 부족한 청춘에게 "지금 그대로의 삶이 괜찮다"라거나 유리 멘탈을 가진 사람에게 "주변 시선은 개의치 말라"고 말하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대신 공무원 시험 7번 낙방한 환자에게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라거나 외도를 일삼는 배우자를 바꿔보겠다는 환자에겐 "기대를 말라"고 조언한다. 손쉬운 회피가 아닌 용감한 포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씨는 지난해 부모님을 차례로 여의었다. 자책과 후회에 빠져 밤낮을 눈물로 보내면서 자신이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책을 썼다.

"인간이 강한 마음 하나로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인식하면 다시 일어날 용기가 생깁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그런 용기가 전달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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