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사에서 보니 스티브 잡스가 ‘하고 싶은 건 일단 해보라’는 말을 했답니다. 저는 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가진 것도 없지만, 저 스스로에게 ‘거리의 작가’라는 정체성을 줬죠. 집 없이 떠돌던 젊은 날에도 미술에 대한 간절함을 늘 마음에 품었거든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살면서 힘닿는 대로 하고 싶은 걸 해본 거예요.”
지난 16일 홍대입구역 인근 전시공간 ‘예술의 전당포’에서 만난 임상철(57)씨는 이렇게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18년간 홈리스로 지냈던 그는 지난해 11월에 이어 지난달 28일 이곳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어릴 적 눈에 돌을 맞아 한쪽 시력을 잃었다는 그의 눈은 허공을 응시했지만, 작품을 설명하는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학교에 가고 싶은 소년, 공원에 누워 있는 남성, 슬픈 표정을 한 어머니 곁에 있는 아기 등 그가 살아온 삶이 소재가 돼 펜화와 유화, 조각에 고스란히 스며있었다.
그가 미술 활동을 시작한 건 2019년 노숙 생활을 정리한 뒤였다. 그는 주거 취약계층의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를 약 7년 동안 판매했다. 그 사이 번 돈으로 서울 강서구에 임대 주택을 얻었다. 처음 2호선 신림역에서 잡지를 팔았던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A4지 두 장 분량의 글로 써서 복사해 함께 건넸다. “어릴 적 보육원에서 지내을 때에도 도서관에 있는 책을 거의 다 읽었다”던 그는 밤새 글을 쓰는 게 힘들면서도 즐거웠다고 했다. 그러다 2019년 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제안했고, 글 52편을 모아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을 출간했다. 홈리스 생활도 끝냈다.
“지하철역에서 잡지를 들고 있다 보면 스스로를 배가 끊어진 섬처럼 느끼곤 했어요.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제 이야기를 썼는지도 모르겠어요.”
제주도에서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임씨는 8세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폐병을 앓았던 어머니는 “너는 나를 평생 원망하며 살아갈 거다”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떠났다. 그는 “가난하게 살게 해서 미안하다는 뜻일 거라고 지금은 이해한다”고 했다. 이후 아버지는 여관에 자식들을 두고 떠났고 그와 형은 보육원으로, 여동생은 먼 친척에게 보내졌다. 형은 20대에 마지막으로 본 뒤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여동생과는 연락만 하고 지낸다.
평탄치 않은 유년시절에도 미술은 그의 희망이었다. 보육원에서 후원자에게 보내는 카드엔 항상 그의 그림이 담겼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해 경기도에 있는 한 조형물 공장에 취직했다. 기숙 생활을 하며 조수 겸 작업자로 일한 4~5년간을 “언젠가 조각가가 될 거란 꿈을 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1997년 이른바 ‘IMF 사태’로 불린 외환위기가 터지며 그는 공장을 나와야 했다. 호텔 주방 청소원 등으로 일했지만, 근근이 모은 돈으론 집 한 칸을 구할 수 없었다. 다쳤을 때를 빼고는 매일 인력 사무소에 나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자산이라곤 배낭과 안전화, 작업복이 전부였다. 이후 18년 동안 고시원, 일용직 숙소, PC방, 공원, 노숙인 쉼터를 전전하며 한뎃잠을 잤다. 그는 스스로를 “생존을 위해 도시를 떠도는 들개 같기도 하고, 껍데기도 없는 민달팽이 같았다”고 표현했다. 집 없이 살았지만, 염치는 잃지 않았다. 일용직 동료의 원룸에 얹혀살면서도 생활비 절반을 꼭 부담하고, 고시원을 얻기 위해 가불 받은 돈도 제때에 꼭 갚았다. 그는 무료 급식소에서 주는 밥 먹는 것도 싫어했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내가 일한 대가로 하루하루 살았죠. 저는 자립이란 말도 싫어합니다. 동냥하든, 길에서 나물을 팔든, 자신의 시간을 써서 먹고 살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자립이라고 생각해요. 전 늘 자립한 상태였어요.”
임씨의 임대 주택은 집이자 미술 작업실이다. 그는 구청 등에서 진행하는 자활 근로 사업에 참여해 번 돈으로 점토·물감·붓 등을 구입한다. 인터넷에서 공모전 소식을 직접 찾아 지원하고, 전시를 열 공간도 찾는다. 안병훈 빅이슈 본부장은 “첫 개인전도 임 작가의 작품을 본 큐레이터가 먼저 연락해 열렸다”며 “미술계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다음달 17일부터 5월 4일까지 서울 서초구 ‘갤러리 활’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연다. 12월 부산에서도 전시가 예정돼있다.
“배부른 자가 되는 걸 경계하려고 노력해요. 홈리스로 살 때에 비하면 많은 걸 갖췄죠. 하지만 그만큼 미술에 대한 열정이 줄까봐 걱정되거든요. 아직 배울 게 많으니 하나하나 배우며 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