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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모든 초등교과서 "독도는 고유 영토"…조선인 동원 '강제성'도 희석

중앙일보

입력

일본 초등학생들이 내년부터 사용하게 될 사회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병에 관한 기술이 '강제성'을 희석하고 '자발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경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한국 땅인 독도에 대해서는 모든 교과서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표현했다.

28일 검정을 통과한 일본 초등학교 사회교과서들. 김현예 특파원

28일 검정을 통과한 일본 초등학교 사회교과서들. 김현예 특파원

초등학교 교과서에조차 징용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역사수정주의적 입장이 반영되면서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판결 해결책 발표 후 이어지고 있는 양국 관계 개선 분위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 젊은이들" 

일본 문부과학성은 이날 오후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열고 2024년도부터 초등학교에서 쓰일 교과서 149종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초등학교 3~6학년이 사용할 사회 교과서 12종과 3~6학년이 함께 배우는 지도 교과서 2종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병 관련 기술이 강제성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수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점유율 1위인 도쿄서적은 기존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조선인 남성은 일본군의 병사로서 징병됐다"는 표현을 써 왔다. 그러나 새 교과서에선 "조선인 남성은 일본군에 병사로 참가하게 되고, 후에 징병제가 취해졌다"로 변경됐다. 국가가 병사를 강제로 동원한다는 뜻인 '징병'이 일부 시기에만 이뤄졌다는 식으로 축소된 셈이다.

또 해당 문구가 담긴 칼럼 옆 사진 설명은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에서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바뀌었다. '지원'이라는 표현을 넣어 자발적으로 참전했다는 의미를 추가했다.

점유율 2위인 교육출판의 6학년 사회 교과서는 "일본군 병사로 징병해 전쟁터에 내보냈다"는 기술에서 '징병해'를 삭제해 "일본군 병사로서 전쟁터에 내보냈다"로 단순화했다.

'끌려왔다'는 '동원됐다'로..'강제' 표현은 남겨   

도쿄서적 교과서에선 일본 정부 지침에 따라 '연행'을 연상시키는 표현도 수정됐다. 기존에는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적으로 끌려와 광산 등에서 가혹한 조건 하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는 문장이 있었으나 새 교과서에선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적으로 동원되어 (이하 내용 동일)"로 바뀌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21년 4월 각의(국무회의) 답변서를 통해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동원에 있어 '강제연행' 또는 '연행'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교과서에서도 연행과 비슷한 의미의 '끌려오다'가 '동원되다'라는 중립적 표현으로 바뀐 것으로 해석된다.

단 '강제적으로'라는 표현은 유지됐다. 도쿄서적 외 2종은 2019년 판부터 '강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모든 교과서가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

독도가 일본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주장은 새로운 사회·지도 교과서에서 더욱 강화됐다. 독도와 관련한 기술이 있는 초등 4∼6학년 사회 9종과 지도 2종 등 총 11종 교과서에서 모두 독도를 일본 영토 '다케시마(竹島)'로 표현했다.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표현하고 있는 일본 초등학교 사회교과서. 김현예 특파원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표현하고 있는 일본 초등학교 사회교과서. 김현예 특파원

기존에는 일부 교과서가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표기했으나 이번 개정을 통해 "일본 고유 영토"로 모두 바뀌었다. 일본은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 번도 다른 나라의 영토가 된 적이 없다'는 뜻에서 모든 교과서에서 '고유'라는 표현을 강조하도록 하고 있다.

도쿄서적은 또 지도 교과서 독도 관련 기술 중 "한국에 점거돼 일본은 항의를 하고 있다"를 "한국에 불법으로 점거돼 일본은 항의를 하고 있다"로 교체했다.

일본문교출판은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올해 100주년이 되는 간토(關東)대지진과 관련한 칼럼을 삭제했다. 이에 따라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의 헛소문이 유포돼 많은 조선인이 살해됐다"는 내용이 사라지고, 관련 내용도 대폭 줄었다. 또 고대사에서 한국이 일본에 미친 영향을 축소하고,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피해와 관련된 내용을 없앤 교과서도 있었다.

한국 정부, "깊은 유감"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온 무리한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구마가이 나오키(熊谷直樹) 주한일본대사관 대사대리(총괄공사)를 초치해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구마가이 나오키(熊谷直樹)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로 초치되고 있다. 뉴스

구마가이 나오키(熊谷直樹)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로 초치되고 있다. 뉴스

외교부는 성명에서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이 담긴 교과서를 또다시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어떠한 주장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제동원 관련 표현 및 서술이 강제성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변경된 것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일본 정부가 스스로 밝혀온 과거사 관련 사죄와 반성의 정신을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 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구소도 이날 일본 교과서 개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역사 부정 정책이 소학교(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같은 서술 기조와 정부의 개입이 일본의 어린 학생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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