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위원/민정계 모아 대권후보 “꿈”(뉴스단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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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전념”… 청와대와도 교감있은 듯/반YS세력 결집 최소한 경선겨냥
민자당의 민정계를 대표하는 최고위원이면서도 그동안 위탁관리인 정도로 인식돼온 박태준 최고위원이 최근 민정계 중진들을 중심으로 은밀한 결속을 다지면서 민정계의 지도자로 본격적인 활동을 사실상 선언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고 있다.
「포철왕국」을 세워 철강신화를 만들었던 박 최고위원은 자신의 기반이자 정치인으로서 「한계」였던 포철회장직을 3년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3월초 내놓기로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최고위원의 포철 회장직 사임결심이 실행에 옮겨지려면 노태우 대통령의 사전 허락이나 교감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미 이런 암시가 있었던 것으로 일부 민정계 중진들은 감을 잡고 있다.
지금은 포철 경영상태가 좋지 못하고 노 대통령으로부터 경영정상화와 진보적 노조침투 방지 등 확실한 안정을 강구하라는 지침이 내려가 있는 상태여서 그가 회장직을 떠나는 것은 정치 쪽으로 전념해야 할 불가피한 사정들이 생긴 때문인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박 최고위원이 민정계 보스로서 역할과 책임을 떠맡기로 한 직접적 계기는 내각제개헌합의 각서파동. 내각제가 물건너가고 김영삼 대표가 노골적으로 대권 공략에 나서자 민정계나 다른 계파에서 경계심을 갖고 대안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해바라기 체질로 숫자만 많지,응집력이 약한 민정계 의원들은 김영삼 대표와 민주계 의원들의 공격적 행동에 위기의식을 느끼게 됐고 김 대표 쪽에서 잠식해 들어오는 것이 피부로 실감되자 울타리를 칠 중심이 필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종찬·이춘구·이한동·심명보·이자헌·오유방·이치호·이현욱·신상식·장경우·김종위·손주환 의원 등이 박 최고위원 방에 수시로 모였으며 박 최고위원이 2∼3차례 모임을 주도하기도 했다. 박 최고위원은 이들 중간보스들을 매개로 민주계와의 전면전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이에 따른 검토결과 △민정계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다수는 민정·공화계 중심의 리더가 나오길 바라고 관망중이며 △반김영삼 감정은 상당히 폭넓게 형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박 최고위원측은 이처럼 나서게 된 배경에는 지난 내각제합의 각서파동 와중에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김종필·박 최고위원이 회동했을 때 앞으로의 정국운영에 대한 상당히 폭넓은 공감이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공감중에는 김영삼 대표가 끝까지 대권에 집착할 경우에 대비한 방안도 포함돼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박 최고위원은 이런 상황들을 바탕에 깔고 민정계 의원들을 상당히 넓게 접촉했고 그 중 가까운 사람들에겐 『이제 다시 철강계로 되돌아 갈 수 있겠느냐』며 정치 전념을 천명했다는 것이다.
박 최고위원이 민정계 의원들에게 한 얘기는 △우선 민정계의 결속을 꾀하고 △민정계에서 새로운 지도인사가 떠오르면 그를 적극 지원하고 △이 경우 현 최고위원들은 모두 물러서도록 하며 △민정계에서 적절한 대체인사가 없다면 자신이 그 역할을 맡겠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최고위원은 지난달 하순 박철언 의원과 단독으로 만났는데 박 의원측에서는 협조를 구한 것이라고 하고 있지만 박 최고위원측에서는 이런 상황설명을 「통보」했다는 주장이다.
박 최고위원측은 공화계와도 상당한 교감이 있는 것처럼 전하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는 아직도 내각제 시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어서 이것을 꼭 대권 레이스에 뛰어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현재 김 대표가 노리는 대권공략에 제동을 걸고 민정·공화계가 대세를 주도하겠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며 내각제 시도가 거의 어려운 상태에 빠지면 저절로 대권후보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최고위원측이 이런 결과를 모를 리 없다. 다만 너무 급작스럽게 부상함으로써 김 대표 쪽이나 야당 또는 여론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해 신중을 기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포철에서 떠나는 방법도 내년 2월 주주총회에서 후임 회장을 뽑으면서 자연스럽게 교체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김 대표 쪽에서는 박 최고위원의 이같은 정치적 행동반경 확대조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민주계 쪽에서는 박 최고위원의 사생활,포철 경영시절의 문제점 등을 흘리고 있으며 이에 대해 박 최고위원 쪽에서 화를 냈다는 말도 있다.
민정계내에서는 차기의 민정계 리더 또는 대권주자를 겨냥한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새로운 정치를 추구하는 이종찬 의원,TK세력의 중심인 김윤환 총무,그밖에 이한동 의원 등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는데 이들은 어쨌든 「자유경선을 통한 후보선출」을 내걸고 민주계의 도전에 대처하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자유경선이면 김 대표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민정­공화 추축이 대권후보의 향방을 가름하게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박 최고위원의 정치전념 결심은 민자당의 당권 경쟁이나 대권후보 레이스에 가장 커다란 변수로 등장했으며 그가 포철을 떠나면 누가 그 후임이 되느냐에 따라 경제계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여 정계·재계가 모두 관심을 쏟고 있다.<박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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