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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만남 때와는 딴판, 눈 녹았다" 日언론의 정상회담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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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 대해 일본 정부와 여야 정치인들은 한 목소리로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며 환영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양국 간 현안이 한꺼번에 해결됐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일본 측의 호응 부족을 지적하며 앞으로 한국 여론의 동향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17일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의 방일일과 정상회담은 한일 관계 정상화에 있어 큰 한걸음"이라고 말했다. 또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개인적 관계를 심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하며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 셔틀외교 재개에도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상은 이날 회견에서 "회담에서 양 정상은 일한(한일) 양국이 함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협력을 계속하고,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정부 간 소통을 활성화하기로 했다"며 "그 일환으로 일한(한일)안전보장 대화. 차관전략대화를 빠른 시일 내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일 이틀째인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은 일본 여야 대표 정치인들과 연이어 만났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는 윤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한국이 제시한 해결책과 한일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정상회담 결과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이 자리에서 스가 전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제휴해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고 윤 대통령은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겐타(泉健太) 대표도 윤 대통령과의 면담 후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한일 정상회담을 "관계 개선의 의미에서 큰 발걸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에 "경의를 표했다"면서 "(일본의) 야당과도 이렇게 의견을 교환하는 윤 대통령의 자세에 다시금 진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이즈미 대표는 면담에서 "레이더 조사라는 과제와 이른바 '위안부상(위안부 소녀상)', 그리고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며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종 해결책 되려면 한국 여론 지지 필요" 

일본 주요 언론들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양국 관계가 정상화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었다고 평가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한(한일) 정상회담, 폭 넓은 교류를 심화하는 계기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징용공 소송(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문제 등으로 전후 최악으로 평가되던 관계를 타개한 것은 윤 대통령의 정치 결단이 틀림없다"면서 "이번 방일을 계기로 정치·경제·안보·문화 등 폭 넓은 분야의 교류를 심화시켜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본 주요 언론은 17일 발행한 조간신문 1면 기사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전날 개최한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 정상화와 협력 강화에 뜻을 모았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일본 주요 언론은 17일 발행한 조간신문 1면 기사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전날 개최한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 정상화와 협력 강화에 뜻을 모았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아사히신문은 17일 한일 관계를 '설해(雪解·눈이 녹음)'에 비유하며 "기시다 총리와 윤 대통령이 쌓인 현안을 일소하듯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단숨에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총리 관저 입구에 윤 대통령이 탄 차량이 도착하자, 총리는 윤 대통령을 영접하며 웃으며 말을 주고받았고 몇 초간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만났을 때의 뾰로통한 표정과는 딴판이었다"고 두 정상의 만남을 묘사했다.

일본 언론들은 양국이 관계 개선에 나선 계기를 엄중한 동북아시아 안보 환경에서 찾았다. 마이니치신문은 북한이 전날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사실을 언급하고 "양국은 북한 미사일 탐지 등에 함께 대처하고, 한일·한미일 협력을 추진해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높여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가 이번에도 '사죄'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음을 거론하며 강제징용 해법에 대한 한국 내 부정적 여론이 커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아사히는 "일본 기업의 기부금 출연 외에도 식민 지배를 반성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원고(징용 피해자)들의 마음도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가 한국에 있지만, 기시다 총리는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견해를 되풀이했다"며 "한국 측 기대와 일본 측 호응이 크게 엇갈리면 앞으로 한일 관계의 불안정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일본 내에서는 한국의 정권 교체로 이 문제가 다시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뿌리 깊다"며 "최종 해결책으로 삼기 위해서는 한국 여론의 지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윤 대통령이 강제징용 피고 기업에 대한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데 대해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측의) 의심을 풀고, 징용 문제는 자신의 리더십으로 관리하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보수파를 대변하는 산케이신문은 "징용 문제의 불가역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었다"며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구상권 포기에 대한 확약을 받지 않고 관계 개선을 우선시한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기시다 지역구 대표 술 '가모쓰루'도 대접

윤 대통령의 이번 방일은 '국빈 방문'이 아니라 '실무 방문'이었음에도 일본 정부가 대접에 상당한 정성을 기울였다고 일본 언론들은 평가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전날 저녁 도쿄 긴자에 있는 스키야키 전문점 '요시자와'(吉澤)와 경양식집 '렌가테이'(煉瓦亭)에서 약 2시간 30분에 걸친 식사를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닛케이는 "1차에선 맥주와 사케를 마시며 스키야키와 이나니와 우동을, 2차에선 오므라이스, 하이라이스, 돈까스 등을 먹었다"면서 "도중에 겉옷을 벗고 넥타이를 푸는 등 편안한 분위기에서 깊은 친교를 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반주로는 기시다 총리의 지역구인 히로시마(広島)현의 고급 사케인 '가모쓰루(賀茂鶴)'가 나왔다.

아사히도 "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의 공식 방문 중에는 대우가 가장 간소한 '실무 방문'이었지만 기시다 총리가 이례적으로 2차를 하며 환대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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