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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주도하고 日 주저하는 엇박자…잃어버린 10년 회복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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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한·일 관계 관련 국내 전문가 6인에게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미, 한계와 과제 등 측면에서 평가를 요청했다. 정상 간 셔틀외교 재개, 수출규제 해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복원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호응이 여전히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점과 강제징용 배상 해법과 관련한 국내적 갈등을 봉합하는 문제는 향후 풀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다음은 전문가들의 총평. (가나다순)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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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문제는 하나의 긴 프로세스로 봐야하고 이번 정상회담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5월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개최되고,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해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강제징용 문제의 진전을 위한 의미 있는 성과가 도출될 수 있다. 또 기시다 후미오 총리(岸田文雄)가 한국을 방문해 한 발 더 진전을 이루는 식으로 한·일 양국이 공 들여 탑을 쌓아나가야 한다.

기시다 총리가 공동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한·일 양국이 연계해서 하나씩 구체적인 결과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말한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 정상회담 결과는 다소 추상적인 총론에 해당하고, 각론인 주요 현안에 대해선 앞으로 하나씩 풀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메시지다. 일본의 지방선거와 G7 정상회의 이후엔 기시다 총리 역시 국내 정치적 부담이 줄어들 테니 강제징용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현안에 있어 일본이 호응해 올 것으로 기대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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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잃어버린 10년의 한·일관계를 회복의 길로 이끄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평가한다. 한·일 양측이 과거사와 양국 협력을 함께 추진하는 '투트랙'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절반의 출발을 한 강제동원 문제 해법을 완성하기 위한 일본의 호응을 적절히 언급하지 못 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국민들에 대한 소통과 지지가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강제징용 문제의 복잡성을 감안해서 한국이 먼저 조치를 취했으니,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를 통해 잘 마무리되길 기대한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일본이 다음 달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있어서 전향적인 입장을 내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겠지만, 어느 정도 한국의 움직임에 스텝을 맞춰줘야 '탱고'가 되는데 완전히 엇박자가 나는 형국으로 이 분야에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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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강제징용 해법 발표 이후 빠른 속도로 정치, 경제, 안보, 문화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양국 간 소통이 이뤄졌다. 셔틀외교 재개, 수출규제 해제, 화이트리스트 복귀 협의 등 상당수 현안이 원상복구됐거나 회복 수순에 접어든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다만 한국 입장에선 전반적으로 굉장히 미흡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은 정상회담이었다. 일본의 '외교적 승리'라고도 볼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면서도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한다'는 내용 등을 직접 이야기 하지 않았다. 과거를 직시하는 게 아니라 과거를 덮고 나아가자는 건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ㆍ일 경제계가 조성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 대해선 강제징용과 무관한 기금으로 여론을 호도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 기금에 일본 피고 기업이 참여한다는 보장도 여전히 없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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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상회담이 종착점이 아니며 한ㆍ일이 이제 막 관계 개선의 과정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의 보다 적극적인 호응 조치를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다. 미ㆍ중 신냉전 상황에서 한ㆍ일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협력을 가속화한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국내적으로는 일본의 호응이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이 또한 향후 일본의 호응을 이끌어낼 압박 유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일본의 다음달 지방선거 등을 고려해 기시다 총리가 전향적인 입장을 내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 셔틀 외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니 조만간 일본 총리가 한국에 답방했을 때 역사 문제와 관련해 보다 진전된 입장을 낼 가능성이 있다. 공이 일본에 넘어갔으니 일본이 이제 화답할 차례다. "구상권 문제는 상정하지 않는다"는 양국 정상의 입장과 별개로 법리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본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책임교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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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해법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리더십에 의한 결단이었다. 국내에서 정치적 비판이 거세진다 해도 지도자로써 이를 감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물론 일본의 호응 조치라는 부분에서 우리가 원했던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기시다 총리가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겠다며 간접적인 사과를 표명함으로써 최소한의 허들은 넘겼다고 평가한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은 수출규제를 해제했고, 우리는 지소미아를 정상화했다. 일종의 주고받기였는데, 북한의 핵 위협을 비롯해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불투명한 상황에서 양국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다. 특히 지소미아 정상화는 향후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해 한·일 양국이 미사일 궤적 정보를 공유하고, 한·미·일 공조를 강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가 연대해 국제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집단 안보’ 차원에서 한·일 양국은 최적의 파트너일 수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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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상회담은 한·일 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처하기 위한 안보 협력과 경제 안보 협력,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협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점을 명확하게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엿보였다. 윤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개선하고 협력 파트너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기시다 총리는 12년 만에 셔틀외교 재개란 점에 큰 의미 부여를 하면서 양국 관계의 '정상화'에 의미를 부여했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선 향후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강력한 의지로 정치적 결단을 내린 데 대한 국내의 갈등과 과제들을 봉합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게 됐다. 우선 제3자 변제안에 반대하는 피해자와 유족을 설득해야 하고, 대일(對日) 저자세 외교라며 공세를 높이는 야당의 공세를 견뎌내야 한다. 한·일 관계 개선만큼이나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어려운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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