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은 17일 전날(16일)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훈련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딸 김주애와 함께 훈련을 지켜본 뒤 "그 어떤 무력충돌과 전쟁에도 임할 수 있도록 전략무력의 신속대응태세를 엄격히 유지하라"라고 지시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6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발사 현장에서 "대규모 군사연습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남조선에 그 무모성을 계속 인식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이번 ICBM 발사가 기본적으로 지난 13일부터 상반기 연합 군사훈련인 '프리덤실드'(FS·자유의 방패)를 시작한 한·미를 견제하기 위한 것임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은 이번에도 '화성-17형' 발사현장에 딸 김주애를 대동했으며, 한·미를 상대로 한 "강대강 정면승부", "대적투쟁" 등 기존 강경기조를 재확인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7일 김여정 부부장 담화, 11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결정 등에서 시사한 '압도적 행동준비', '중대조치' 등을 실제 가시화하며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쥐고 가려 할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한·미 연합훈련 직접 겨냥한 北
북한 노동신문은 17일 김정은이 전날 '화성-17형' 발사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미국과 남조선 괴뢰 역도들의 도발적이며 침략적인 대규모 전쟁연습 소동으로 인해 조선반도에 가장 불안정한 안전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엄중한 형세 하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3월 16일 화성포-17형의 발사 훈련을 단행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이는 북한의 이번 ICBM 발사가 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대응 차원임을 직접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은 17일 전날(16일)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훈련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화성-17형 발사장면을 지켜보는 모습. 뉴스1
북한의 이런 정세 인식은 이날 노동신문 1면에 실린 논평에서도 드러난다. 신문은 '폭발전야에 이른 조선반도정세의 근원을 논함'이란 글에서 "조선반도 정세가 오늘의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은 미국이 우리 국가가 취한 긍정적 조치에 호응하기를 거절하고 오히려 대조선 압박과 무력에 의한 위협을 계속 강화한 데 있다"며 "우리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무모한 군사적 도발 책동을 계속 압도적인 힘으로 제압해나갈 것"이라고 강변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과 한·일 정상회담 일정을 고려해 ICBM을 발사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은 한·미·일이 아니라 북한 자신에게 있다는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실전 대응 훈련 과정에서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인 한·일 정상회담 날짜를 택해 ICBM을 발사한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이를 직접 지도한 것은 한반도 정세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성사진 공개하며 ICBM 안정성 부각
북한은 이번 ICBM 발사를 '시험 발사'가 아닌 '전략무기 발사훈련'이라고 밝히면서 '화성-17형' 개발이 완성되어 이미 양산·실전배치 단계에 진입했음을 부각했다. 노동신문은 "발사훈련은 핵전쟁억제력의 가동성과 신뢰성을 확인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됐다"며 "(이를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부대의 임전태세와 공화국 전략무력의전투성이 확인되고 신뢰성이 엄격히 검증됐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17일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구사진. 뉴스1
김정은도 발사훈련을 참관한 뒤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며 "더더욱 고도화되고 있는 우리의 핵전략무력의 가동 체계들에 대한 확신과 담보를 다시 한번 뚜렷이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발사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은 최대 정점고도 6045㎞까지 상승하며 거리 1000.2㎞를 4151초(1시간 9분 11초)간 비행하여 조선동해 공해상 목표수역에 탄착되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발사훈련은 주변국가들의 안전에 그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은 관영 매체를 통해 ICBM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선명한 지구사진과 '화성-17형'의 단분리 장면을 공개하며 자신들의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과시하기도 했다.
조선중앙TV는 지난 16일 평양 국제공항에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실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7형 발사 영상을 17일 공개했다. 사진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1단 추진체가 분리되는 장면.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조선중앙TV는 이날 오후 보도에서 화성-17형 상단부에 장착된 카메라가 공중에서 포착한 1단 추진체가 떨어져 나가는 장면을 공개했다. 북한이 화성-17형의 단분리 장면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탄두부에 계측장비 이외에 카메라를 장착해 촬영사진을 실시간으로 전송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은 이번 ICBM 발사를 활용해 오는 4월에 예고한 정찰위성 발사에 요구되는 여러 가지 데이터나 기구장치 등을 시험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핵엔 핵으로 답할 것"
김정은은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답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대미·대남 강경기조를 재차 강조했다. 이어 "반공화국 군사적 준동이 지속되고 확대될수록 저들에게 다가오는 돌이킬 수 없는 위협이 엄중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만들 것"이라고 밝히며 한·미 군사훈련에 대응한 자신들의 군사 조치가 계속 이어질 것임을 암시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실제 북한은 지난 12일부터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등을 이틀에 한 번꼴로 쏘며 무력도발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이번에도 화성-17형 발사를 통해 한·미·일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발신했지만, 오히려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한·일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완전 정상화를 선언했으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도 이날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의 ICBM 발사는 명백한 도발 행위"라며 "한·일, 한·미·일 공조를 더욱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북한의 ICBM 도발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며 "미국의 한·일에 대한 방위 약속은 절대적으로 굳건하며, 3국 관계를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명분과 주도권을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김정은 정권의 속성을 고려하면 향후 상당시간 강대강 기조를 견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다만 한·미 군사훈련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새로운 전략·전술무기를 개발하고 연속 시험발사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갈수록 가중될 것이라는 점도 주목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