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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고소고발 반려 권한 사라지나…'인력난' 일선서 비명 커질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찰이 고소·고발 사건을 반려하지 못하고 무조건 접수하도록 관련 규정이 수정 될 전망이다. 기존에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고소·고발을 반려할 수 있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업무 과중과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는 일선 경찰서 입장에선 처리해야 할 사건 수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어 향후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10일 중앙일보가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법무부의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이하 수사준칙) 개정안 초안에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고소 또는 고발을 받은 때에는 이를 수리해야 한다”(16조의2 1항)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찰청 스스로도 지난 1월 27일 대통령실 업무보고 때 “고소·고발 전(全)건 접수 등 절차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적이 있다.

경찰은 고소고발 전건 접수를 의무화한 수사준칙 개정이 이뤄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찰청 범죄수사규칙을 손본다는 계획이다. 사진은 지난달 9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의 모습. 뉴스1

경찰은 고소고발 전건 접수를 의무화한 수사준칙 개정이 이뤄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찰청 범죄수사규칙을 손본다는 계획이다. 사진은 지난달 9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의 모습. 뉴스1

현행 경찰청 범죄수사규칙(경찰청훈령) 50조에는 경찰관이 접수한 고소·고발 사실이 범죄를 구성하지 않을 경우 고소인 또는 고발인의 동의를 받아 수리하지 않고 반려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런데 수사권 조정 이후 과거 검찰이 수사하던 사건까지 경찰이 떠맡게 되면서 일선 경찰 수사관이 처리해야 할 사건 수가 크게 증가했고, 경찰이 고소·고발을 반려하는 경우도 함께 늘었다. 경찰에 접수되는 고소·고발 건수는 연간 약 40만건, 이중 반려되는 사건은 약 10만건에 이른다.

이에 법조계에선 경찰이 ‘범죄를 구성하지 않을 경우’라는 모호한 훈령 규정을 이용해 자의적으로 사건을 반려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자 경찰은 2021년 9월부터 고소·고발 전건 접수를 원칙으로 하되 고소·고발인의 서면동의를 받을 때에만 사건을 반려할 수 있도록 요건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경찰이 요구하는 서면동의를 거부할 민원인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법무부 수사준칙이 개정돼 고소·고발 수리가 의무화 되면 경찰청 범죄수사규칙 50조(고소·고발의 반려)의 폐지 또는 개정이 불가피하다. 다만, 경찰은 예외 없는 고소·고발 수사가 현실화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도 검토한 뒤 후속 대책을 마련한단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모든 고소·고발 사건을 수리하며 예외 없는 수사가 이뤄지는 동안 피고소·피고발인은 신분상 불안정한 지위에 놓여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경찰 입장에서도 한정된 수사 인력이 모든 고소·고발 사건에 분산되면 정작 중요한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할 수 없어 수사가 지연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사적인 분쟁도 형사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민사의 형사화 현상 ▶상대 진영을 향한 정치권의 고소·고발 남발 문화는 수사력 낭비를 초래하는 고질적 병폐로 꼽힌다. 게다가 일선 경찰서에서는 업무 과중에 따른 수사 기피 현상과 의경 폐지에 따른 경찰관의 기동대 차출 등으로 인력난이 심화하고 있다. 실제 최근 서울의 한 경찰서의 경우 서 내에 경감이 40명 있지만 공석이 된 수사과 팀장 자리에 지원하는 인원은 한 명도 없어, 겨우 한 명을 설득해 자리를 채우기도 했다. 한 경찰 간부는 “세상 만사를 다 고소·고발로 해결하려는 분위기인데, 최소한의 반려 권한마저 원천적으로 사라지면 업무 과중으로 수사 질이 더 떨어지진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은 경미한 범죄의 경우 신속한 사건 처리를 위해 인지사건에 대한 입건을 유예할 수 있는 권한을 사법경찰관에 부여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검찰은 “입건유예는 기소편의주의에 따른 형사소송법상 기소유예에서 파생된 것으로, 기소권이 없는 사법경찰관의 경우 법적 근거가 없어 불가하다”는 입장이라 향후 추진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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