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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레미제라블’ OST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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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심새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심새롬 중앙홀딩스 커뮤니케이션팀 기자

심새롬 중앙홀딩스 커뮤니케이션팀 기자

“야, 이 노래 참 좋다. 한번 들어봐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후배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영화 OST 동영상을 틀어준 적이 있다고 한다. ‘민중의 노래가 들리나/ 분노한 자들의 노래가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민중의 음악이네.’ 뮤지컬 ‘레미제라블(Les Mizerables)’ 삽입곡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다. 상급자의 음악 취향에 누군가는 영화를 봤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집에 돌아가 ‘레미제라블 OST’를 검색해봤을 것이다.

유혈을 암시하는 이 혁명가는 근 10년간 세계 주요 시위 현장의 단골 음악이었다. 부당한 지배에의 저항, 핍박받는 민중의 분노가 듣는 이의 심장을 두드린다. 2012년 전 세계적 영화 흥행 직후 터키·미얀마·대만(2013), 홍콩(2014) 민주화 시위에서 각국어로 번역된 노래가 거리의 열기를 달궜다. 지난해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공산당 퇴진 시위에도 쓰였다.

국내에서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운동 때 서울·대구 등지에서 이 곡을 반복 재생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으로 일한 윤 대통령이 정확히 언제, 왜 이 곡에 처음 매료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프랑스혁명 정신 중 하나인 ‘자유’를 강조하는 그가 검사 시절부터 즐겨 들은 건 분명하다. 대선 후보 때는 방송사 스튜디오 출연 입장곡으로 틀고 “영화와 뮤지컬을 여러 번 봤다. 1832년 자유와 민주의 외침이라는 주제, OST 음악 자체를 좋아해 자주 듣는다”고 직접 설명했다.

지난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통령 입장곡 선정은 이런 취향의 반영으로 보인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대통령 입장 음악으로 이걸 고른 사람은 윤리위 가야 할 듯”이라지만, 정작 행사 관계자들 사이에선 “대통령이 직접 고른 노래” “당연한 곡 선정”이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역대급 흥행을 기록한 이번 전대는 친윤계의 전폭적 지지를 업은 김기현 대표의 과반 득표 승리로 끝났다. 내년 총선을 앞둔 윤 대통령과 김 대표 앞에 ‘체제 전복’ 대신 ‘민생 회복’ 목표가 뚜렷하다. 심장 박동 소리가/북소리와 공명할 때/내일이 오면 시작될/새로운 삶이 있네! 190년 전이나 지금이나 더 나은 삶에 목마른 민초의 목소리가 역사의 동력임을 다시 새겨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