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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집단폐사, 응애 탓 말라" 양봉 농민들 분노의 삭발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양봉농가 생존권사수 대정부투쟁위원회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꿀벌폐사 농업재해 인정 및 보상금지급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봉농가 생존권사수 대정부투쟁위원회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꿀벌폐사 농업재해 인정 및 보상금지급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0년 넘게 양봉을 한 동네 어르신도 평생 꿀벌이 이렇게 사라진 경우는 처음이라더라. 이런데도 정부는 농가 탓인가."

경남 산청군에서 양봉업을 하는 강대우(61)씨는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 설치된 무대에 올라 울분을 토했다. 빨간 머리띠를 두른 그는 "지금 농가는 한창 꿀벌을 키워야 할 때인데, 어르신들이 몇 시간씩 버스를 타고 이 자리까지 왔다"며 "벌이 70%가 죽었는데 어떻게 자연재해가 아니란 말인가"라고 외쳤다.

이날 농식품부 앞에는 전국 각지에서 양봉업계 관계자 5000여명(한국양봉협회 추산)이 모였다. 농민들은 "꿀벌 집단폐사! 정부가 책임져라"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었고, 꿀벌 영정사진을 붙인 벌통을 상여처럼 메고 행진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꿀벌 집단 폐사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인정할 것과 양봉직불금을 도입하라고 주장했다.

농민들이 화난 이유는 지난달 22일 농식품부가 발표한 꿀벌 피해 상황 진단과 대책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지난 겨울 꿀벌 사육 피해 규모 조사 결과 벌통 감소율은 전년 대비 8.2% 수준이라며 꿀벌 피해는 방제제에 내성을 가진 응애(꿀벌 전염병을 일으키는 진드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발표했다. 방제제 사용법을 준수하지 않은 농가의 피해가 컸고, 기후변화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밝혔다.

양봉농가 생존권사수 대정부투쟁위원회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꿀벌폐사 농업재해 인정 및 보상금지급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양봉농가 생존권사수 대정부투쟁위원회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꿀벌폐사 농업재해 인정 및 보상금지급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삭발식을 치른 윤화현(68) 양봉협회장은 "농식품부의 조사는 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저도 45년째 양봉 중이고 농가는 매년 똑같이 일을 하고 있는데 최근 벌들이 이유없이 죽어 발만 동동 구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응애 문제로 국한해 이 상황을 바라보면 3년 안에 한국에서 꿀벌이 다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양봉협회가 전국 회원(30벌통 이상 규모 농가)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0일 기준 전국 벌통 153만9522개 가운데 꿀벌이 폐사하거나 사라져버린 벌통 수는 87만9722개(57.1%)에 달했다. 벌통 하나 당 꿀벌을 2~3만마리로 계산하면 적어도 176억~264억 마리 꿀벌이 죽거나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윤 회장은 "아직 집계는 되지 않았지만, 겨울 전에 남은 벌통의 50%~100%가 죽었다는 농가가 많다"며 "올해 피해는 지난해보다 클 것"이라고 했다.

농민들은 최근 3년 사이 흉작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2020년 벌꿀 대흉작에 이어 2021년에는 남부지방 꿀벌 집단 폐사 현상이 시작돼 지난해 여름부터 전국으로 확산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봉군 소멸 피해도 전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봉군 소멸이란 떼를 지어 나간 꿀벌이 벌통으로 회귀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강원도 양구에서 온 김귀만(65)씨는 "최근 3년 사이 기후변화를 크게 체감하고 있지 않나, 식물들은 기후변화에 적응해 식생이 변화했는데 벌들이 여기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며 "아카시아 꽃에서 향기가 나지 않아 벌이 꽃을 못 찾기도 한다"고 했다.

양봉농가 생존권사수 대정부투쟁위원회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꿀벌폐사 농업재해 인정 및 보상금지급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봉농가 생존권사수 대정부투쟁위원회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꿀벌폐사 농업재해 인정 및 보상금지급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린피스는 응애 피해도 기후변화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태영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지난해 남부 지방은 역대 최장의 가뭄에 연평균 기온은 12.9도로 평년보다 0.4도 높아 응애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겨울의 기온 변동폭이 클 때 꿀벌의 월동을 방해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농촌진흥회 양봉생태과 최용수 박사는 2021년 겨울 해남지역에서 꿀벌 수백만 마리가 한꺼번에 사라진 원인을 이상기후로 지목했다. 해남의 겨울 낮 최고기온이 평년보다 훨씬 높아지면서 동면에 들어갔어야 할 꿀벌이 채집 활동에 나섰다가 저녁에 얼어 죽었다는 것이다. 최 박사는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겨울에도 기온 변동폭이 컸기 때문에 같은 원인의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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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는 기후변화가 꿀벌에 미칠 영향 등에 대비해 향후 8년간 484억원을 투입해 환경부, 산림청, 기상청, 농촌진흥청과 함께 꿀벌 보호와 생태계 보전을 위한 연구에 착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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