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컴컴한 구석」 없애라/송진혁(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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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각국회가 뒤늦게 종종걸음을 치고 있지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이번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국회 내부의 창피한 요소를 자정하는 일이다. 온국민이 지켜야 할 법을 만들고 온국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국정을 논의하는 곳이 국회인데 지금 국회는 스스로가 이런 거룩한 일을 하기에 알맞은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자문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명색 국회의원이 전과가 11범이나 된다는 폭력배 두목의 석방운동에 관련되고 사기꾼·깡패까지 회원이 되고 있는 단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최근 국회의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천 폭력배사건과 수원 사기사건은 우리 정치의 아랫도리가 어떤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당사자인 의원들이 자기들과의 관련성을 아무리 부인해도,또 그 부인이 다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 두 사건은 국민들이 그 동안 짐작으로 알고 있던 우리 정치의 컴컴한 요소를 밖으로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선거 때마다 폭력이 난무하고 마침내 조직폭력이 오늘날 대통령에 의해 전쟁선포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 까닭이 다 어디에 있는지를 이번 사건들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사건은,말하자면 우리 정치가 그 내부에 깡패성·사기성을 안고 있으며 들키지 않으면 불법도 폭력도 자행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고,세력확대를 위해서는 깡패나 사기꾼을 가리지 않고 한패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두 사건을 보고 이런 일이 인천과 수원뿐인가,다른 지역 다른 의원들은 이런 일과 정말 전혀 무관한 것인가 하는 불길한 의혹을 갖지 않을 사람은 적을 것이다.
겉으로는 점잖게 넥타이를 매고 입으로는 거룩하게 애국과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국민에겐 법을 지키라,도덕을 지키라고 하는 사람들이 내막적으로는 깡패와도 연대하고 사기꾼과도 어울린다는 의혹을 국민이 갖게 된다면 그 사회가 어찌될 것인가.
결국 인천과 수원사건은 우리 정치의 추악한 하반신을 전모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 사건이다. 만일 이번 사건이 터지지 않았던들 그 폭력배나 사기꾼이 다시 92년 선거에서 청년당원·외곽조직·경호원 등의 이름으로 또 판을 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일은 이런 사건이 터졌는데도 허겁지겁 문제를 수습하고 국민의 의혹을 풀어야 할 사람들이 한마디로 태평이라는 점이다. 인천에서는 재야단체들이 관련의원 제명을 위한 시민서명운동을 벌이고 수원에서는 문제의 사기꾼과 몇몇 의원이 함께 찍은 사진이 증거물로 속속 나오고 있는데도 국회는 앉아만 있고 소속정당은 보고만 있다.
이 두 사건의 관련의원들이 실제 무슨 불법을 저질렀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두 사건은 동료의원들을 창피하게 만들었고 국회권위를 손상시켰으며 소속정당에도 적잖은 이미지 손실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한 도의적·정치적 조치가 나와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잖아도 13대 국회에는 문제의원들이 많다. 비록 상급법원에 사건이 계류중이라고 하더라도 하급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의원이 여럿 있다. 유죄가 확정되면 자동적으로 의원직이 상실되지만 확정되기 전까지는 의원자격이 유지된다. 그러나 의원직이 유지된다고 하여 엄연히 유죄판결을 받은 의원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입법과 국정심의에 버젓이 참여해도 그뿐인가.
그리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의원,폭력배·사기꾼과 관련하여 구설에 오르내리는 의원,명패를 집어던져 남의 입술을 찢은 의원,교통순경 따귀를 때린 의원… 이런 의원들까지 끼여앉아 국회가 국사를 논의하면 그 국회의 꼴은 무엇이며 그런 국회의 결정에 국민은 얼마만큼 존경과 신뢰를 보낼 것인가.
무슨 조치가 시급히 나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국회는 스스로의 위신을 회복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의원에게는 품위유지의 의무라는 것이 있다. 국회법의 「의원은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조항은 두어서 어디에 쓸 것인가.
이 기회에 내부의 창피한 요소는 스스로 정리하고 억제할 방도를 강구해야 옳다. 평소 만든다고 말만 하고 실제 만들지는 않고 있는 윤리위원회같은 것도 만들고 필요하면 법도 고쳐 징계할 사람은 징계하고 근신할 사람은 근신을 시켜야 한다. 설마 유죄판결까지 받은 사안을 놓고 「품위」를 지켰다고는 못 할 것이다.
그리고 법원은 왜 그렇게 늑장인가. 임기가 다 끝나도록 확정판결을 안 내릴 작정인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각 정치세력이 내부의 컴컴한 요소를 정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당선과 세력확대와 집권을 위해서라면 내막적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 컴컴한 속을 언제까지 그대로 안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일 것이다.
국민은 이제 자기들의 상투끝에 올라 앉아 있다고 생각해야 옳다. 안 들키면 폭력과도 사기꾼과도 연결되는 그 컴컴한 요소를 정리하는 방법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첫걸음은 우선 드러난 것부터,들킨 것만이라도 하나씩 상식에 맞게 처리하는 것이다. 오랜 기간 그런 노력이 쌓여가야 정치가 그나마 다소라도 맑아지지 않겠는가.<편집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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