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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민망한 과거, 졸렬한 이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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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일본 측: 피해자 개인에 대해 보상해 달라는 말인가?
한국 측: 우리는 나라로서 청구한다. 개인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조치하겠다.
일본 측: 한국인 피해자에 대해 가능한 한 조치하고자 하는데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조사를 할 용의가 있는가?
한국 측: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우리 국내에서 조치할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측: 일본 원호법을 원용해 개인 베이스로 지급하면 확실해진다고 생각한다.
한국 측: 그것을 우리는 국내 조치로서 우리 손으로 지급하겠다.
일본 측: 피징용자 중에는 부상자도 있고 사망자도 있으며, 또 부상자 중에도 그 정도가 다를 텐데 그런 것을 모르고 덮어놓고 돈을 지급할 수는 없지 않은가? 두 나라 국민의 이해를 촉진하고 국민감정을 유화하기 위해서는 개인별로 지급하는 게 좋다고 본다.
한국 측: 보상금 지급 방법의 문제인데, 인원과 금액의 문제가 있다. 여하튼 그 지급은 우리 정부 손으로 하겠다.

청구권협정 뒤 사망자에 30만원 #한국 기업 무심했고, 일본은 회피 #윤 정부 "미래로", 일본이 답할 때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말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말하고 있다. 뉴스1

2004년에 공개된 한·일회담 예비회담 기록의 일부다. 1961년 5월 10일 일본 외무성 회의실에서 한국 측 7명, 일본 측 11명이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를 협의했다. 일본 측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개별 지급을 주장했다. 한국 측은 돈을 주면 ‘국내 문제로서 조치’하겠다고 했다. 결국 일본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3억 달러에 일괄해 넣는 것으로 타결됐다. 그리고 1965년에 맺은 한일청구권협정 2조 ‘양국은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로 정리됐다.

일본 정부가 개별 지급을 주장한 것은 건넬 돈을 줄이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였을 수 있다. 경제 개발이라는 과제를 안은 한국 정부는 목돈이 절실했다. 정부는 한일기본협약 체결에서 10년이 지난 75년부터 77년까지 강제 동원 사망 피해자 8552명의 유족에게 30만원을 지급했다. 약 26억원이 쓰였다.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그 3억 달러를 포함해 총 8억 달러(공공 차관 2억 달러, 상업 차관 3억 달러)가 일본에서 왔다. 그 돈으로 포항제철(현 포스코) 등의 기업을 일궜고, 도로 등의 인프라를 깔았다. 포스코 외에 한국전력·한국도로공사·코레일·한국수자원공사·KT·KT&G·외환은행(하나은행으로 합병)이 대표적 수혜자다.

‘청구권협정은 청구권 항목별 금액 결정이 아니라 정치 협상을 통해 총액 결정 방식으로 타결됐기 때문에 항목별 수령 금액을 추정하기 곤란하지만, 정부는 수령한 무상 자금 중 상당 금액을 강제 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해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된다. (중략) 1975년 우리 정부의 보상 당시 강제 동원 부상자를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도의적 차원에서 볼 때 피해자 보상이 불충분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5년에 ‘한·일회담 문서 공개 후속 대책 관련 민관 공동위원회’가 낸 결론이다. 그 뒤 특별법이 만들어져 강제 동원으로 인한 사망자 유족에게 2000만원(70년대에 30만원을 받은 경우 234만원 공제), 중상자에게 최대 2000만원이 지급됐다. 대다수 부상자가 사망한 때였다.

‘포스코의 설립 경위와 기업의 사회 윤리적 책임을 고려하면 강제 동원 피해자들과 유족에게 상당한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9년 서울고법 민사5부 판결문의 한 대목이다. 일제 피해자 단체 회원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포스코의 법적 책임은 없다고 판결하면서 자발적 피해자 지원을 권유했다. 다른 수혜 기업, 나아가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민망한 과거, 잘못 인정과 그에 따른 책임을 어떻게든 피하려 드는 졸렬한 이웃 국가, 정략적 계산에 급급했던 양국의 정치 때문에 강제 동원 문제가 꼬일 대로 꼬였다. 그제 한국 정부가 국내의 비난을 감수하며 미래로 가는 문을 열었다. 이제 일본이 달라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