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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원배의 시선

SM 경영권 분쟁과 ESG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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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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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올해 1월 1일 유튜브를 통해 중계된 SM 지속 가능 포럼에서 “지구 자체를 살리고 우리의 터전을 보존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껴야 한다. 사막화를 막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 방법으로 나무 심기를 제안하며 “K팝과 한류가 시발점이자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논란만 커진 이수만의 나무심기 #지배구조 잘 갖춰야 지속성 확보 #다른 K팝 기업에도 반면교사

K팝의 영향력을 활용해 ESG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겠다는 내용이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환경 보호와 사회적 기여도를 고려하고, 법과 윤리를 준수하며,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주요 기업들도 너도나도 ESG 경영 실적을 내세운다. 글로벌 영향력이 커진 K팝 기업도 참여한다니 그럴듯하다.

SM 지속 가능 포럼에서 연설하는 이수만 SM 총괄 프로듀서.  [유튜브 캡처]

SM 지속 가능 포럼에서 연설하는 이수만 SM 총괄 프로듀서. [유튜브 캡처]

지배구조 흔들리면 환경과 사회적 기여도 한계 

하지만 지배구조(G)가 흔들리는 기업에서 환경(E)과 사회적 기여(S)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는 이번 SM 경영권 분쟁 사태가 잘 보여준다. 이수만의 처조카인 이성수 SM 공동대표는 최근 유튜브에서 “(이수만이) 나무 심기와 ESG 관련 메시지를 노래 가사에 투영하라고 했다. 그 이면에는 부동산 사업권 관련 욕망이 있다”라고 저격하고 나섰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나무 심기'의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다. 이수만은 지난해 말로 라이크기획을 통한 SM과의 프로듀싱 계약이 조기 종료됐는데, 무슨 자격으로 SM의 ESG를 추진하려 한 것인가. 최대주주라고 해도 회사 일에 직접 관여할 권한은 없다.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외쳤지만 정작 자신이 설립하고 키운 SM의 지속성은 확보하지 못했다. 급기야 처조카를 포함한 SM 경영진이 자신을 배제한 미래 청사진을 만들고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이수만은 경쟁사인 하이브에 급하게 지분 대부분을 넘겼는데, 경영권 다툼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기업이 지속성을 확보하려면 일단 적자를 내지 말아야 하고 안정된 지배구조를 갖춰야 한다. 이수만이 지분을 매각하기보다 SM의 전통을 존중하는 전략적 투자자를 미리 확보하는 게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강단 있는 전직 최고경영자(CEO) 출신을 대표이사나 이사회 의장으로 영입할 수는 없었을까.

기존 SM 경영진도 문제다. 이수만 체제에서 중용된 인물들이 갑자기 이수만 없는 SM 3.0을 외치고 나왔다. 이수만이 라이크기획으로 받아간 돈이 문제라면 이 계약을 체결하고 승인한 이사진도 법적 책임이 있다.

카카오 판교아지트. 연합뉴스

카카오 판교아지트. 연합뉴스

이수만은 창업자인 데다 18%의 지분을 가진 1대 주주였다. 이를 무시하고 이사회가 독자 경영을 하기는 어렵다. 카카오라는 전략적 투자자를 우군으로 두고 독자 생존한다는 전략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SM은 누군가 새 주인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

하이브-카카오 대결 장기화하면 SM 역량 타격 

이수만의 보유 지분 14.8%를 사들인 하이브는 지분을 더 늘려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고, 카카오도 여기에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카카오가 승리하면 SM의 전략적 투자자가 아닌 주인이 된다. 어떤 경우든 SM의 독립성은 줄어든다. 만일 하이브와 카카오의 싸움이 장기화하면 SM의 창의적 역량은 그만큼 떨어질 것이다.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이 2022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지스타2022에서 자회사 하이브IM의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하이브]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이 2022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지스타2022에서 자회사 하이브IM의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하이브]

크게 보면 이번 SM 경영권 분쟁은 다른 K팝 기업에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 겸 최대주주인 박진영 창의성총괄책임자(CCO)의 지분율은 15.2%다. YG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 겸 최대주주인 양현석 총괄프로듀서의 지분율도 16.9%다. YG엔 네이버가 2대 주주(8.9%)로 참여하고 있다. 하이브의 경우 창업자 겸 최대 주주인 방시혁 이사회 의장의 지분율이 30%를 넘는다.

세 사람 모두 50대지만 회사는 언젠가 창업자 이후의 시대를 맞이한다. 과거의 재벌처럼 다른 계열사를 통해 순환 출자 구조를 만들 수는 없다. 미국 등과 달리 '복수(차등) 의결권'도 한국에선 허용되지 않는다.

양현석·박진영·방시혁 모두 음악적 성과가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누가 이어갈지 알 수 없다. 이수만도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았다. 창업과 성공도 어렵지만 수성과 승계는 더 힘든 일이다.

K팝 성공 이어가려면 기업 지배구조 다져야 

세계 각국에 진출한 K팝 경쟁력의 핵심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있다. 선투자를 통해 연습생을 뽑아 훈련하고, 세계 각국의 작곡가에게 좋은 곡을 받아와 마케팅하는 일을 몇 사람이 할 수는 없다. K팝이 성공을 이어가려면 무엇보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건강하고 탄탄한 지배구조를 갖춰야 한다.